‘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라고 쓰인 펼침막이 얼마 전 마을 어귀에 걸렸다. 농촌에서 총각은 ‘희귀동물’에 속하니 이걸 보고 눈이 번쩍 뜨일 사람들은 결혼 기회를 잡기 위해 도시 언저리에 나가 살고 있는 혼기 놓친 아들을 둔 늙은 부모들일 터이다. 내 둘레에는 베트남댁은 없어도 중국댁, 필리핀댁은 이미 드물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 물 많이 먹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던 국제결혼이 오히려 궁벽한 농촌에 흔한 것이 되었다.

30대 조선족 출신 여성 A. 택시를 모는 남편과 어린 딸 하나 두고 있다. A가 없는 자리에서 “조선족 주제에…” 라며 깔보는 듯한 이웃 아낙의 말에 비로소 A의 남다른 말투와 아이 소풍에 무엇을 싸주어야 하냐고 묻던 까닭이 이해되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비좁은 집에 대해 내게 이야기했다. A가 집을 나갔다는 말을 듣고 어린 딸을 볼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었는데 몇 달 만에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왔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다행스럽다.

또 다른 조선족 여성 B. 작은 몸집에 영리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그녀는 중국에서 의대를 졸업했다는 재원이다. 도시의 주유소에서 밥벌이를 하던 남편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농촌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살기 싫으니 이혼해 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렸다고 한다. 어느 날 부부싸움 끝에 젖먹이를 들쳐 업고 나왔으나 갈 데가 없어 밤거리를 헤매다 제 발로 들어가고 말았다. 농삿일은 해본 적도 없는 그녀가 한국까지 시집와 시부모 모시고 호미질하며 산다.

필리핀 여성 C.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남성과 결혼해 아들 딸 넷을 낳고 살다 남편이 병으로 먼저 떠나갔다. 중학생부터 학교 안 들어간 아이까지 아이들 넷을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만으로 키우기 버겁다. 건강은 좋지 않아도 공장에라도 나갔으면 좋겠는데 취직을 하면 보조금이 끊어진다고 고민하던 그녀가 요새 밤에 일을 한다. 아이들 모두 밝고 착하게 자라주고 있어 “힘들어도 희망이 있지 않냐” 고 위로했더니 지친 목소리로 C가 한 말. “포기하고 싶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땅일까. 그리고 2세들에게는 어떤 앞날이 펼쳐질 것인가. 아잇적에야 차별 없이 귀염 받고 자라겠지만 순혈주의에 대한 유별난 집착, 제3세계에 대한 멸시, 아시아권 신부를 맞은 가정들의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따져볼 때 솔직히 나는 불안한 생각이 앞선다.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옛말처럼 급할 때는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지만 나중에 나 몰라라 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나만의 기우라면 얼마나 좋을까. 세계화, 힘세고 잘 사는 나라들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성큼 다가와 어느새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린 작고 가녀린 것들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품어 안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싶다.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2006/08/01 00:00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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