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
2006/2006년 09월 :
2006/09/01 00:00
성찰속에 정진하며 세상과 소통하자
박상증 공동대표가 술친구인 김중배 전 공동대표의 설득으로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되었다. 박 대표에 관해 처음 들은 귀 솔깃한 ‘소문’은 간사들이 그의 집에 찾아가면 맛난 포도주를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사람들이 누구든지 언제든지 와요. 내가 없어도 자기네들끼리 와서 놀고, 먹고 치우고. 열려있는 공간이죠. 주로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의 젊은 친구들이 오죠.”
세대가 다른 상근자들에게 그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뻘이지만, 그들을 대문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아마 그의 젊은 마음일 게다. 그런 그가 요즘 참여연대에 대해 애정 어린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일까?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박 대표의 이력에서 눈에 뜨이는 점은 사학과 출신이라는 사실. 그가 대학을 다닌 시절은 해방정국의 격동기였다. 목회자인 아버지의 길을 따르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사학과를 택했지만, 그는 좌파 세상인 대학에서 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곤경을 겪다 결국 2년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어 한국전쟁이 터지고 아버지는 납북되었다. 그 생사를 지금도 모른다. 이쯤이면 통상 투철한 우익 반공주의자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대학 시절 분위기가 그랬어요. 우선 미군이 들어온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죠. 그 사람들이 식민정치를 계속 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고. 미군정 반대라는 것이 민족해방운동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경계가 그 당시엔 불투명했지요.”
박 대표는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산하 치안대 일원으로 서울중학교 자리(현 서울시립박물관)에 있던 파출소를 지켰다. 집에서는 당시 좌파신문으로 통하던 독립신문을 읽었고, 그 후에도 사회주의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
“내가 교회개혁운동을 한 것도 그런 영향이지 않을까 싶어요. 신학공부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8년 만에 돌아온 그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2년 만에 병역미필이라는 부당한 사유로 파면당하면서 학자의 길은 포기해야 했다. 그 때부터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인연을 맺고 에큐메니컬 운동(교파나 교단의 차이를 초월하여 그리스도교 신도의 결속을 도모하는 세계교회 일치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게 된다. 그것이 WCC(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활동으로 이어져 유럽에 머물 때 해외민주화운동에 관여했다. 이후로도 CCA(아시아기독교협의회)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등에서 활동하면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관심이 깊은 에큐메니컬 운동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그리고 1997년부터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는 나한테 에큐메니컬 운동가에서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고 얘기하는데, 난 조금도 달라진 거 없어요.”
선한 사마리아인 운동
박 대표가 참여연대 최장수 공동대표직을 역임하면서 또 하나의 시민운동 영역을 개척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선한 사마리아인 운동이 그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운동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길거리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현실에서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병원 응급실 자원봉사와 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2005년에 발족한 시민운동이다.
“내 동창(김정규 전 동남은행장)의 동생이 아리랑치기를 당해 행인 신고로 병원에 갔는데 8시간 동안 아무 치료도 안 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죽고 말았어요. 친구는 너무 억울한데 병원은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니까 참여연대에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참여연대가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누군가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엔 선한사마리아인 법이 있어요. 길 가다가 위급한 사람 있을 땐 꼭 신고해야 한대요. 그냥 지나치면 위법이죠. 응급처치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치료해야 하구요. 또, 병원에선 환자를 거부해선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박 대표의 도움으로 참여연대가 아닌 다른 관련 시민단체들을 찾아다니던 끝에 김정규 씨는 사재를 털고 기독교인들의 후원을 받아 ‘선한 사마리아인 운동’을 시작했다.
오해와 타성, 소통으로 해결하라
숨가쁘게 달려온 13살의 참여연대,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일반인들이 참여연대를 악의적으로 미워하지는 않지만, 대개 참여연대가 정부 지원금을 받는 단체로 오해하고 있어요.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정부 돈 받고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참여연대는 정부 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면 놀라죠.”
급변하는 세상에 참여연대는 창의적으로 대처하고 있는가.
“시민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참여연대 보도자료와 성명서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많아요. 사소한 것이지만 회원, 시민 간 벽을 쌓는 요인들이 되는 거죠.”
시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타성적인 시민운동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홍보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상대가 질문하고 내가 답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됐을 때 이뤄지는 것이지 거리에서 선전물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죠. 상대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우리 주장만 실린 신문이나 자료를 나눠주는, 다소 일방적인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할까요?”
그는 시민운동의 위기를 강하게 의식하는 듯 했고, 시민과의 대화를 갈망했다.
“요즘 많이들 얘기하죠. 시민운동 하는 사람이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그런데 과연 시민운동이 국민 전체의 공감을 받고 있느냐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 오히려 참여정부 들어 시민운동의 공신력은 떨어지고 있다고 봐요. 진정으로 시민과의 대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시민운동은 약화됩니다.”
상식을 바탕으로 쏟아내는 쓴 소리
참여연대에 대해서는 걱정이 더 크다.
“참여연대 활동가, 임원 그리고 회원들은 아마도 한번쯤은 이런 생각 해봤을 겁니다. 참여연대가 하는 건 항상 옳다, 참여연대가 실수를 저지를 일은 없다는 생각.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참여연대도 자아비판과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기성찰과 함께 시민운동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생성하는 창조자가 될 것을 주문한다.
“시민사회단체끼리 연대한다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서로 걱정해주고 염려하는 공동체 의식은 부족하죠. 안타깝지만 참여연대에도 그런 의식이 부족한 듯 하고요. 앞으로는 시민운동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길 기대해봐야겠습니다만…….”
참여연대 회원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상근자들의 안이함을 질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참여연대에서 회원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단순히 시민단체 후원해주시는 고마운 회원이 아니라, 회원이란 어떤 위상과 역할을 갖는 것이고 나아가 회원들과 다른 시민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참여연대 회원이 되어 함께 응원도 하고 운동을 고민하고 싶지만 형편상 회비를 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죠.”
최근 박 대표가 참여연대를 향해 쓴 소리를 도맡아 하는 데에는 그 자신 전문성은 없지만 ‘세련된 상식’은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버티고 있다. 10년을 참여연대와 함께 동고동락한 그가 참여연대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을 곰곰이 되짚어볼 때 들이대는 잣대는 다름 아닌 상식이라는 얘기다. 그의 해맑은 미소, 꿋꿋한 인생행로도 상식의 힘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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