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심주의를 넘어 미국주의와 대화를
2006/2006년 09월 :
2006/09/01 00:00
새로운 제국의 등장
지금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유일초강대국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다른 국가들을 월등히 압도한다. 미국을 대신할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은커녕 다른 여러 국가들이 모여도 미국을 견제할 만큼의 세력조차 규합할 수 없다. 과거의 국제정치나 세계경제 인식 틀로는 현재의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을 과거 제국주의의 연속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독특해서, ‘새로운 유형의 제국’이라 할 만 하다.
먼저 미제국은 영토에 관심이 없다. 다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면 된다. 둘째, 미제국에 가입해서 일원이 되는 선택은 전적으로 자발적이다. 셋째, 미제국에 가입한 국가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혜택을 누린다. 따라서 미제국에 가입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줄을 섰지만, 이에 맞서려고 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이후 대한민국도 미제국의 일부다. 미제국의 내부이다. 출구는 없다. 따라서 탈출은 대안이 아니다. 무조건 충성이냐 시시비비냐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미국주의와 미국중심주의
한국사회 일부는 미제국에 무조건 충성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일부는 미국을 싫어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했으면 한다. 미국주도의 세계경제질서에 깊이 편입되는데 반대한다.
양쪽 의견 모두 근거가 있다. 전자를 친미, 후자를 반미라 흔히 부른다. 그렇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전자는 ‘미국’중심주의이고, 후자는 ‘민족’중심주의이다. 미국중심주의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또 미국은 전능하고 무오류라고 전제한다. 따라서 옳건 그르건, 싫건 좋건 무조건 미국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민족중심주의는 ‘우리’라는 범주를 몰역사적으로 사고한다. 미국은 사악하고 우리민족에게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양자 모두 미제국과 한국의 역사적 관계를 망각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 사고할 필요도 없지만, 미국을 떠나서 사고할 수도 없다.
미제국의 작동원리인 미국주의는 무조건 추종하거나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미국주의는 미국인이 공유한 정치적 이상 예컨대, 자치, 공평한 기회, 언론과 결사의 자유, 진보에 대한 신념, 그리고 사회적 평등과 같은 공유된 가치에 바탕을 둔다. 미국주의는 미국이 미국 국내외에서 저질렀고 또 저지르고 있는 모든 행위를 미국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게 아니다. 미국 국가나 미국 주류사회가 다른 나라나 자국내 소수인종 또는 소수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미국의 건국정신이나 미국인이 추구해온 목표, 미국인이 공유하고자 애써온 도덕적 가치에 비추어 성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런데 미국중심주의는 한국내부의 문제이지 미국문제가 아니다.
미국중심주의의 산실, 대학
한국의 대학교육이 제도수립, 학자양성 과정에서 미국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역사과정을 거쳐 경로의존적으로 한국대학교육이 미국에 포섭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45년 9월 38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은 먼저 군정을 설치했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국립대학을 만들었다. 한국의 사회제도 중에 가장 탈민족화되고 미국화된 기관을 들라면 아마 대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대학의 미국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미국 대학과 세계 다른 국가 대학의 격차는 실로 엄청나다. 미국 대학은 독일 대학제도를 수입하고 유럽의 지적 자본을 유치한 후, 2차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미국 대학은 운영, 교수진과 학생 선발과 관리, 조직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제도적 이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영어로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며 학위를 취득한 후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전 세계 우수학생의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 대학에 우수한 한국 학생들이 유학하는 일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해방과 전쟁, 근대화를 거치면서 미국유학생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공헌한 점은 평가할만하다. 오히려 과거에는 학위 취득 후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눌러앉는 ‘두뇌유출’이 국가적 문제였다. 이제 미제국이 통치하는 지구화 시대에 미국 유학은 대학 수준에서 중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수준까지 내려와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미국중심주의는 대학을 중심으로 제도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미국에 유학하며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미국이 건설한 세계질서를 자연스러운 질서인양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누가 ‘우리’인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미국중심주의이지 미국주의가 아니다. 미국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변해야 할 것은 우리이지 미국이 아니다. 미국도 대내외정책에서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에는 남한이나 북한, 한반도 전체나 아시아 전체와 관련된 사안도 있다. 미국중심주의의 문제점은 ‘우리’를 미국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그들의 입장에 고정시킨다는 점이다. 무릇 국익을 지키기 이전에 국익을 정의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을 ‘그들’과 동일시한다면 ‘우리’ 국익이란 애초부터 사고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미국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미국주의와 대화해야 한다. 미제국의 외부는 없다. 따라서 미국 내부의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다양성과 권력의 다층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미국이 우리 내부로 접어든 것처럼 우리도 미국 내부로 스며들어야겠다. 그래서 바깥에서 외치는 고성이 아니라, 내부에서 외치는 함성으로 미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미국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먼저 ‘우리’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미국과의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간 관계에서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장점을 따라 배우고 그들의 수법으로 그들과 맞서고자 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금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유일초강대국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다른 국가들을 월등히 압도한다. 미국을 대신할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은커녕 다른 여러 국가들이 모여도 미국을 견제할 만큼의 세력조차 규합할 수 없다. 과거의 국제정치나 세계경제 인식 틀로는 현재의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을 과거 제국주의의 연속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독특해서, ‘새로운 유형의 제국’이라 할 만 하다.
먼저 미제국은 영토에 관심이 없다. 다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면 된다. 둘째, 미제국에 가입해서 일원이 되는 선택은 전적으로 자발적이다. 셋째, 미제국에 가입한 국가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혜택을 누린다. 따라서 미제국에 가입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줄을 섰지만, 이에 맞서려고 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이후 대한민국도 미제국의 일부다. 미제국의 내부이다. 출구는 없다. 따라서 탈출은 대안이 아니다. 무조건 충성이냐 시시비비냐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미국주의와 미국중심주의
한국사회 일부는 미제국에 무조건 충성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일부는 미국을 싫어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했으면 한다. 미국주도의 세계경제질서에 깊이 편입되는데 반대한다.
양쪽 의견 모두 근거가 있다. 전자를 친미, 후자를 반미라 흔히 부른다. 그렇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전자는 ‘미국’중심주의이고, 후자는 ‘민족’중심주의이다. 미국중심주의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또 미국은 전능하고 무오류라고 전제한다. 따라서 옳건 그르건, 싫건 좋건 무조건 미국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민족중심주의는 ‘우리’라는 범주를 몰역사적으로 사고한다. 미국은 사악하고 우리민족에게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양자 모두 미제국과 한국의 역사적 관계를 망각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 사고할 필요도 없지만, 미국을 떠나서 사고할 수도 없다.
미제국의 작동원리인 미국주의는 무조건 추종하거나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미국주의는 미국인이 공유한 정치적 이상 예컨대, 자치, 공평한 기회, 언론과 결사의 자유, 진보에 대한 신념, 그리고 사회적 평등과 같은 공유된 가치에 바탕을 둔다. 미국주의는 미국이 미국 국내외에서 저질렀고 또 저지르고 있는 모든 행위를 미국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게 아니다. 미국 국가나 미국 주류사회가 다른 나라나 자국내 소수인종 또는 소수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미국의 건국정신이나 미국인이 추구해온 목표, 미국인이 공유하고자 애써온 도덕적 가치에 비추어 성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런데 미국중심주의는 한국내부의 문제이지 미국문제가 아니다.
미국중심주의의 산실, 대학
한국의 대학교육이 제도수립, 학자양성 과정에서 미국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역사과정을 거쳐 경로의존적으로 한국대학교육이 미국에 포섭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45년 9월 38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은 먼저 군정을 설치했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국립대학을 만들었다. 한국의 사회제도 중에 가장 탈민족화되고 미국화된 기관을 들라면 아마 대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대학의 미국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미국 대학과 세계 다른 국가 대학의 격차는 실로 엄청나다. 미국 대학은 독일 대학제도를 수입하고 유럽의 지적 자본을 유치한 후, 2차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미국 대학은 운영, 교수진과 학생 선발과 관리, 조직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제도적 이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영어로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며 학위를 취득한 후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전 세계 우수학생의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 대학에 우수한 한국 학생들이 유학하는 일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해방과 전쟁, 근대화를 거치면서 미국유학생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공헌한 점은 평가할만하다. 오히려 과거에는 학위 취득 후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눌러앉는 ‘두뇌유출’이 국가적 문제였다. 이제 미제국이 통치하는 지구화 시대에 미국 유학은 대학 수준에서 중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수준까지 내려와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미국중심주의는 대학을 중심으로 제도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미국에 유학하며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미국이 건설한 세계질서를 자연스러운 질서인양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누가 ‘우리’인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미국중심주의이지 미국주의가 아니다. 미국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변해야 할 것은 우리이지 미국이 아니다. 미국도 대내외정책에서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에는 남한이나 북한, 한반도 전체나 아시아 전체와 관련된 사안도 있다. 미국중심주의의 문제점은 ‘우리’를 미국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그들의 입장에 고정시킨다는 점이다. 무릇 국익을 지키기 이전에 국익을 정의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을 ‘그들’과 동일시한다면 ‘우리’ 국익이란 애초부터 사고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미국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미국주의와 대화해야 한다. 미제국의 외부는 없다. 따라서 미국 내부의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다양성과 권력의 다층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미국이 우리 내부로 접어든 것처럼 우리도 미국 내부로 스며들어야겠다. 그래서 바깥에서 외치는 고성이 아니라, 내부에서 외치는 함성으로 미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미국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먼저 ‘우리’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미국과의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간 관계에서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장점을 따라 배우고 그들의 수법으로 그들과 맞서고자 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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