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은영 국제연대 팀장
2006/2006년 09월 :
2006/09/01 00:00
미혼 여성 간사의 대표주자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그이는 빨간 미니 남방에 하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름에 가장 빛나는 색인 빨강과 눈부신 백색으로 한껏 멋을 부린 것이다. 남방과 바지 사이의 중요한 부분은 하얀 쫄티로 가리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한때는 그저 일하기 편하게 진바지에 티셔츠 정도였지만, 요즈음은 우리 사무실에도 미니스커트는 물론 부츠도 곧잘 등장하는데 소위 미혼 여성 상근자의 대표주자로서 무심할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바야흐로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시민운동가는 당연히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사회를 선도해나가는 참여연대의 정신이 좋아서 참여연대에 들어왔다. 창립멤버이니 참여연대에 몸담은 지도 자그마치 13년에 접어든다. 학창시절에 가톨릭학생운동 동아리에 참여하였고, 그 활동의 연장으로 인권사랑방 운동에 동조하였다. 거기에서 참여연대가 창립되었고 나중에 인권사랑방이 분리되었지만 그대로 남아 자연스레 참여연대의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초창기의 열악한 환경이나 어려움을 겪던 1995~6년 무렵, 20대 중반으로 전문가도 없이 국제연대 일을 하는 게 너무 힘이 들어 무단결근을 하였단다. 혼자서 거리를 배회하며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퇴근 시간 즈음에 사무실에 나갔는데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그가 결근한 줄 모르더란다. 그래서 슬그머니 방황하는 마음을 접고 심기일전하여 첫 번째 퇴사의 위기를 넘겼다. 아마도 젊음만큼 열정이 대단했던 것 같다고 회상하면서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운동사회에서의 책임감을 느껴 그만두려고 하였지만, 주변에서는 그냥 해 보는 소리로 치부하고 있어 아직 사무실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멋쩍어 했다. 하지만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남달랐다.
병따개로 무장한 야근의 기억
참여연대의 13년을 회고해 보면 야근밖에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야근을 밥 먹듯 하였단다.
어느 날엔 새벽까지 혼자 일하는데 웬 아저씨가 벌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얼마나 무섭고 놀랐는지 옆에 놓였던 병따개를 무기로 사용하려고 움켜쥐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고. 그 이후로는 사무실 뿐 아니라 어두컴컴한 새벽길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호신용으로 겨자냄새가 나는 스프레이 깡통을 핸드백 속에 넣고 다녔으며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 안심이 되었단다.
그렇게 일에 파묻히다보니 집에는 잠시 다녀오는 곳일 뿐, 일이 없어도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맨 나중에 사무실을 나오면서 전등을 다 끄고 창문을 단속하면서 그곳이 그리 아늑하게 여겨졌단다(이때 이래선 안된다며 위기감을 느꼈다고). 공간에 대한 공사(公私)의 구별은 고사하고 잠을 자도 참여연대 꿈을 꾸었다. 일이 밀려 허둥대던 일, 진척이 없어 괴로워하던 일 등이 사무실을 배경으로 펼쳐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스트레스인지 몸은 계속 아파서 드디어 10년째에 안식년을 가졌다.
오감을 키운 안식년
일단 실컷 쉬면서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려고 노력하였단다. 학창시절 성우나 작가가 되고 싶던, 맑고 통통 튀는 목소리의 불문학도는 시민운동을 하던 10년 세월에 그 따뜻하고 다정했던 감수성을 다 잃어버린 것이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자 그는 불란서로 날아갔다. 자신의 꿈이었던 소르본느 대학에 가서 교정을 돌아보고 강의실에 들어가 앉은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던 그의 꿈과 함께 사진 속에 고스란히 가두고 돌아오면서,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좀 더 진지하게 즐기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하였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감성적이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그는 성공회대학에서 좋은 강의를 듣고 토플공부를 하였으며 운전면허를 따고 재즈댄스도 배웠단다. 사무실과 집의 의미를 분리하기 위해 부모님으로부터 분가도 하였다. 청소하고 밥하며 빨래하느라 힘이 들어도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안락함이 느껴져서 서둘러 집에 가게 되었다고.
국경을 넘는 활동
그 동안 몰두했던 국제연대운동을 접고 국내운동을 알고자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했을 때는 치밀하게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장하성교수, 김상조소장의 열정에 묻혀서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우고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단다. 사무실에 존경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친구의 느닷없는 물음에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자신도 놀랐다고 하였다.
최근에는 국제연대위원회의 일을 주로 하면서 한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대외원조(ODA)를 감시하고 버마의 민주화와 인권 확보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대중적 공감을 얻기 위한 캠페인도 중요하므로 무엇보다 창의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젊은 멤버들에게서 신선함을 배우고 싶다는 그녀에게 끝까지 참으려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독신주의자에요?” 아니란다. 착하고 자신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OK란다. 밝고 명랑하며 꼼꼼하면서도 곰실곰실 이야기를 잘 하는, 커다란 검은 눈동자의 이 귀여운 여인과 평생 한편이 되실 분, 어디 안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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