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노동자 문제 바로 보기
2006/2006년 09월 :
2006/09/01 00:00
비정규직 노동자란 한마디로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이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이 보장되지 않아서 원하지 않지만 단기간에 회사를 그만둬야 하거나 회사에 직접 고용돼 있지 않고 다른 회사에 한 다리 건너 고용돼 있는 사람들이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같은 회사에 소속돼 일하고 있으면서도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종류와 그 호칭이 얼마나 다양한지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크게 직접고용 비정규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특수고용 비정규직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계약직, 일용직, 촉탁직, 임시직, 수습직, 인턴사원,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정규직보다 근무기간이 짧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나마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고용계약을 체결한 회사와 일하는(노동력을 제공하는) 회사가 다른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서 이중 계약이다. ‘이중 계약’은 ‘이중인격’만큼이나 나쁘다. 인력 공급업체가 중간에서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의 상당 부분을 편취한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력 착취다. 파견, 용역, 노무도급, 사내하청, 외주, 판촉 사원 등으로 불린다. 가장 중요한 노동 현안의 하나인 KTX 여승무원들도 대표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에 가거나 우리 연구소로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을 때, 촬영장에서 조명기구를 들고 다니거나 출연자 몸에 무선 마이크를 설치해주는 사람에게 “정규직이세요?”라고 거의 매번 물어본다. 어떤 이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계약직만 돼도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용역회사 소속으로 방송사에 파견된 간접고용 노동자였던 것이다. 계약직이라도 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파견 노동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그 짧은 대답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
특수고용 비정규직은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휴일과 휴가, 퇴직금, 연장근로수당 등의 혜택은 물론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기사, 방송사 구성작가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통계는 가지가지다. 발표하는 단체와 기관의 입장에 따라 수치가 들쭉날쭉한다. 자칭 ‘노동문제 전문가’인 여당 국회의원이 노동계 주장을 감안해 890만 명 정도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1,500만 노동자의 59%나 된다. 비정상적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훨씬 더 많으니 정상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치 부당한 특혜를 받는 것처럼 오해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통계에 불과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 숫자가 곧 고통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예의 부족
작년 여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사회에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다 준 것이 미국식 극단적 개인주의의 폐해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미국은 우리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나라다. ‘부자들의 천국’이라는 미국에도 시민사회에는 기부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더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인권단체에 기부금도 내며 사는 것이 상식적인 삶이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저급한 인간 취급을 당하는 정서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행여 미국이 ‘참 좋은 나라’라고 오해할까봐 걱정되는데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가 그 정도이니 다른 유럽 선진국들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다.
우리 연구소에서 노동 상담을 오랜 세월 해온 공인노무사가 “요즘 노동 상담하러 찾아오는 직장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얼굴 표정이나 눈빛이 섬뜩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사회에 고용불안이 발생하고 비정규직이 많아지면서 ‘언제 비정규직으로 전락할지 모르니까 정규직으로 일하는 동안 회사에서 최대한 뽑아내자’ 는 식의 가치관이 직장인들 사이에 자리 잡아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나 태도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인데도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 열심히 추구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동기생들보다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됐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아무 잘못도 없이 밥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때문에 잠 못 이루며 가슴 아파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노동운동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당연한 관심이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면서 20년 동안 일했어요.” “어제가 아버님 제삿날인데 가 뵙지 못했어요. 휴가를 하루라도 신청하면 내년에 재계약 안 될까봐. 지금까지 휴가 신청해서 사용한 사람들은 다음 해에 계약 갱신이 안 됐거든요.” “몇 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일하면서 정규직 승진 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정규직 승진제도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나는 이제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가슴 아파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철폐돼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이들의 불평등한 삶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노동유연성과 사회 전체 이익의 균형
경영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더 늘리고 싶어 한다. 방송에 출연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더니 다음날 한 은행 지점장이 전화를 했다. 해외 근무 경력이 10여 년 된다는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잖고 교양 있는 말투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규직들을 모두 비정규직화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연봉계약직이 된 지 오래다. 노동자들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업무 수행 능력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라고 충고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이 향상되는 ‘휴먼 캐피털’은 노동유연성의 중요한 화두다. 기업이 외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 업무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 선별해서 채용하고(기능 유연성), 필요한 만큼의 인원만 신축적으로 고용하고(수량 유연성), 다양한 임금체계에 맞춰 사람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임금 유연성)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직장인들을 1년 단위 연봉계약직, 즉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 경영자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고용 형태일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행태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고용계약 형태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정도에 이르렀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려면
비정규직 고용이 그 사회 경제 성장에 저해 요소가 되지 않으려면 기업이 노동자를 채용하고 해고하는 유연성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같이 높아져야만 한다. 선진국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특집으로 보도한 한 일간지는 기사의 제목을 “해고 쉽지만, 재취업 더 쉽다.”라고 뽑았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했다. 다른 나라의 비정규직과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그 처지가 달랐던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동시장 재정지출 비중은 대략 3~4%대인데 비해 한국은 0.36%(2004년)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과 일본도 우리의 두 배쯤 된다. 인력시장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우리처럼 방치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기업 단위에서 독자적으로 노동자들의 ‘패자부활전’ 시스템을 마련한 유한킴벌리의 경영방침이 아직도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에게는 ‘정신 나간 짓’ 정도로 치부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노동자 채용과 해고 권한만 높여주는 노동유연성은 노동자들의 구매력 저하와 소비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전체의 경제적 손실을 감당할 방법이 없고 양극화의 심화로 인한 사회의 퇴행 현상을 막을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은 사회 발전에 극히 해롭다. 그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철폐돼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직접고용’ ‘정규직’ 원칙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상의 고용계약 기본 원칙은 어디까지나 ‘직접 고용’ 그리고 ‘정규직’이다. 근로기준법 제 5조 [균등처우], 쪻근로기준법 제 8조 [중간착취의 배재] 쪻쪻조항들이 바로 그러한 원칙을 담고 있다. 노동자 파견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근로기준법의 이러한 원칙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중요하게 제기됐다. 파견 형태의 간접 고용은 처음부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라는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파견 기간이 2년을 초과할 수 없다거나 파견 기간이 끝나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파견법에 규정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비정상적 고용 형태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존속하게 되면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한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질병·출산·휴가 등 결원이 생겼을 때에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수 없도록 ‘사유 제한’을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OECD 가입국 중 11개 나라에 이른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오히려 고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남보다 불리하게 단기적으로 고용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독일은 건설업종을 제외한 전 업종에서 노동자 파견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나라지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지라도 특별한 불이익 없다. 전형적인 시장경제주의 체제인 미국도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대형화되어 교육과 사회복지 혜택이 정규직과 거의 동등하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고용 증대를 위해 파견 관련 규제를 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파견업종이나 비정규직의 확대가 순리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 바람이 급격하게 불던 90년대에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확대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2000년대에 들어선 뒤에는 그것이 국가경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확산이 우리 경제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것에 주목할 때가 됐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면서 사회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비정규직 고용은 한계기업이 노동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잠시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함으로써 선진기업으로 도약하는 데는 장애가 된다. 예전보다 더 적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면서, 더 적은 보수를 줌으로써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전락시킨 기업들의 경영이 대부분 개선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들에 주목하자. 기업의 이익이 언제나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가장 많은 구성원인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정책은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근로기준법
* 제5조(균등처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제 8조(중간착취의 배제)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종류와 그 호칭이 얼마나 다양한지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크게 직접고용 비정규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특수고용 비정규직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계약직, 일용직, 촉탁직, 임시직, 수습직, 인턴사원,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정규직보다 근무기간이 짧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나마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고용계약을 체결한 회사와 일하는(노동력을 제공하는) 회사가 다른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서 이중 계약이다. ‘이중 계약’은 ‘이중인격’만큼이나 나쁘다. 인력 공급업체가 중간에서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의 상당 부분을 편취한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력 착취다. 파견, 용역, 노무도급, 사내하청, 외주, 판촉 사원 등으로 불린다. 가장 중요한 노동 현안의 하나인 KTX 여승무원들도 대표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에 가거나 우리 연구소로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을 때, 촬영장에서 조명기구를 들고 다니거나 출연자 몸에 무선 마이크를 설치해주는 사람에게 “정규직이세요?”라고 거의 매번 물어본다. 어떤 이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계약직만 돼도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용역회사 소속으로 방송사에 파견된 간접고용 노동자였던 것이다. 계약직이라도 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파견 노동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그 짧은 대답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
특수고용 비정규직은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휴일과 휴가, 퇴직금, 연장근로수당 등의 혜택은 물론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기사, 방송사 구성작가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통계는 가지가지다. 발표하는 단체와 기관의 입장에 따라 수치가 들쭉날쭉한다. 자칭 ‘노동문제 전문가’인 여당 국회의원이 노동계 주장을 감안해 890만 명 정도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1,500만 노동자의 59%나 된다. 비정상적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훨씬 더 많으니 정상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치 부당한 특혜를 받는 것처럼 오해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통계에 불과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 숫자가 곧 고통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예의 부족
작년 여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사회에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다 준 것이 미국식 극단적 개인주의의 폐해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미국은 우리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나라다. ‘부자들의 천국’이라는 미국에도 시민사회에는 기부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더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인권단체에 기부금도 내며 사는 것이 상식적인 삶이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저급한 인간 취급을 당하는 정서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행여 미국이 ‘참 좋은 나라’라고 오해할까봐 걱정되는데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가 그 정도이니 다른 유럽 선진국들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다.
우리 연구소에서 노동 상담을 오랜 세월 해온 공인노무사가 “요즘 노동 상담하러 찾아오는 직장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얼굴 표정이나 눈빛이 섬뜩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사회에 고용불안이 발생하고 비정규직이 많아지면서 ‘언제 비정규직으로 전락할지 모르니까 정규직으로 일하는 동안 회사에서 최대한 뽑아내자’ 는 식의 가치관이 직장인들 사이에 자리 잡아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나 태도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인데도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 열심히 추구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동기생들보다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됐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아무 잘못도 없이 밥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때문에 잠 못 이루며 가슴 아파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노동운동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당연한 관심이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면서 20년 동안 일했어요.” “어제가 아버님 제삿날인데 가 뵙지 못했어요. 휴가를 하루라도 신청하면 내년에 재계약 안 될까봐. 지금까지 휴가 신청해서 사용한 사람들은 다음 해에 계약 갱신이 안 됐거든요.” “몇 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일하면서 정규직 승진 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정규직 승진제도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나는 이제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가슴 아파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철폐돼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이들의 불평등한 삶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노동유연성과 사회 전체 이익의 균형
경영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더 늘리고 싶어 한다. 방송에 출연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더니 다음날 한 은행 지점장이 전화를 했다. 해외 근무 경력이 10여 년 된다는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잖고 교양 있는 말투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규직들을 모두 비정규직화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연봉계약직이 된 지 오래다. 노동자들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업무 수행 능력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라고 충고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이 향상되는 ‘휴먼 캐피털’은 노동유연성의 중요한 화두다. 기업이 외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 업무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 선별해서 채용하고(기능 유연성), 필요한 만큼의 인원만 신축적으로 고용하고(수량 유연성), 다양한 임금체계에 맞춰 사람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임금 유연성)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직장인들을 1년 단위 연봉계약직, 즉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 경영자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고용 형태일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행태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고용계약 형태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정도에 이르렀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려면
비정규직 고용이 그 사회 경제 성장에 저해 요소가 되지 않으려면 기업이 노동자를 채용하고 해고하는 유연성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같이 높아져야만 한다. 선진국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특집으로 보도한 한 일간지는 기사의 제목을 “해고 쉽지만, 재취업 더 쉽다.”라고 뽑았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했다. 다른 나라의 비정규직과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그 처지가 달랐던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동시장 재정지출 비중은 대략 3~4%대인데 비해 한국은 0.36%(2004년)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과 일본도 우리의 두 배쯤 된다. 인력시장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우리처럼 방치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기업 단위에서 독자적으로 노동자들의 ‘패자부활전’ 시스템을 마련한 유한킴벌리의 경영방침이 아직도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에게는 ‘정신 나간 짓’ 정도로 치부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노동자 채용과 해고 권한만 높여주는 노동유연성은 노동자들의 구매력 저하와 소비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전체의 경제적 손실을 감당할 방법이 없고 양극화의 심화로 인한 사회의 퇴행 현상을 막을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은 사회 발전에 극히 해롭다. 그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철폐돼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직접고용’ ‘정규직’ 원칙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상의 고용계약 기본 원칙은 어디까지나 ‘직접 고용’ 그리고 ‘정규직’이다. 근로기준법 제 5조 [균등처우], 쪻근로기준법 제 8조 [중간착취의 배재] 쪻쪻조항들이 바로 그러한 원칙을 담고 있다. 노동자 파견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근로기준법의 이러한 원칙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중요하게 제기됐다. 파견 형태의 간접 고용은 처음부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라는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파견 기간이 2년을 초과할 수 없다거나 파견 기간이 끝나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파견법에 규정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비정상적 고용 형태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존속하게 되면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한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질병·출산·휴가 등 결원이 생겼을 때에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수 없도록 ‘사유 제한’을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OECD 가입국 중 11개 나라에 이른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오히려 고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남보다 불리하게 단기적으로 고용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독일은 건설업종을 제외한 전 업종에서 노동자 파견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나라지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지라도 특별한 불이익 없다. 전형적인 시장경제주의 체제인 미국도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대형화되어 교육과 사회복지 혜택이 정규직과 거의 동등하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고용 증대를 위해 파견 관련 규제를 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파견업종이나 비정규직의 확대가 순리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 바람이 급격하게 불던 90년대에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확대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2000년대에 들어선 뒤에는 그것이 국가경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확산이 우리 경제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것에 주목할 때가 됐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면서 사회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비정규직 고용은 한계기업이 노동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잠시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함으로써 선진기업으로 도약하는 데는 장애가 된다. 예전보다 더 적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면서, 더 적은 보수를 줌으로써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전락시킨 기업들의 경영이 대부분 개선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들에 주목하자. 기업의 이익이 언제나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가장 많은 구성원인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정책은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근로기준법
* 제5조(균등처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제 8조(중간착취의 배제)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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