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오프라인은 계속되는 찜통더위로 숨이 턱턱 막혔고 온라인은 뜬금없는 된장녀 논쟁으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사실 된장녀 이야기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이영애의 하루’란 유머가 유행했었는데, 이영애가 등장한 CF들을 일과순으로 나열하면 사치스러운 한 여성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유머였다. 된장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허영심과 사치심에 대한 풍자가 된장녀 논란 속에 있다. 그러나 과거 ‘이영애의 하루’가 한 순간 피식 웃고 지나가는 유머의 하나였다면 오늘의 된장녀는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다. 개념이 없다느니, 노란 피부에 하얀 가면을 쓴 존재라느니, 기타 등등의 혐오와 적대감이 된장녀에게 집중된다. 구체적으로 누가 된장녀인가란 마녀 사냥도 벌어지는 모양새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차이와 취향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획일성을 지적한다. 또한 소위 ‘무슨 무슨 녀’와 같은 명칭에서 확인되는, 손쉽게 여성을 사회적 악, 타락의 상징으로 위치시키는 남성들의 (무)의식적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이와 같은 된장녀 논란은 무척이나 생뚱맞아 보인다. 물론 스타벅스에서 밥보다 비싼 커피를 먹는 그네들이 안타깝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취향 아니겠는가. 나 역시도 이성적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자그마한 사치를 찾고 있지 않은가. 손쉽게 여성에게 나 혹은 남성의 치부를 투사시키는 방식 역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허나 그것이 된장녀에게만 국한되는 문제이겠는가.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모토에 동조하지만, 된장녀가 일상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된장녀 논란에서 중요해 보이는 것은 어떻게 된장녀가 이렇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FTA 문제도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평택 문제는 어느덧 망각의 영역에 다다른 것 같다. 이들 문제가 사회적 아젠다로 위치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로 언론의 책임 방기가 지적되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 약자에 대한 힘 실어주기에 언론은 몸을 사린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언론의 문턱은 된장녀에게는 턱없이 낮았다. 된장녀 기사를 처음으로 다룬 한 일간지는 설문조사까지 하며 친절하게 된장녀 논쟁의 핵심을 짚어준다. 이 기사는 다시 포털로 들어와 확대 재생산되며 된장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다시 일간지들은 포털을 참조하여 새로운 된장녀 논쟁을 쏟아내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겠다. 그 일간지에 나온 기사는 전형적으로 포털 맞춤형 기사였다. 시작부터 포털에 게재될 것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기사였던 셈이다. 이후 포털의 자극성과 말초성을 통해 된장녀가 화제가 되자 언론은 이를 근거로 된장녀가 마치 우리 사회의 대단히 중요한 문제처럼 되받아 적는다. 필자 역시도 그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이 소중한 공간을 된장녀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사회적 소통은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개방적이게 된다. 된장녀는 그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생산된 실재를 은폐하는 가상현실이다. 된장녀에 일희일비할 때, 정작 중요한 무언가가 우리의 소통망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작금의 된장녀 논란은 오늘날 한국 소통 영역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시하는 것이다.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2006/09/01 00:00 2006/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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