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무엇이냐
2006/2006년 09월 :
2006/09/06 00:00
일주일간 대추리에 다녀왔다. 도저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과 발바닥 가득 억을 남겨논 채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과 평택, 1시간 30분의 거리를 달리면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들과 공생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K-6 공군기지 철조망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논, 폐허가 되어버린 대추초교 잔해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잔잔한 걸음을 옮기는 어르신들까지 지금 대추리는 절망과 마주치기 직전의 ‘평화’로 허덕이고 있다.
그야말로 ‘평화’가 신음하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농사를 지을 권리, 평화적 생존권을 요구하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이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평택 투쟁의 끝이 무엇일까? 정부의 말처럼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황새울 들녘 285만 평의 결론일 수 있을까? 이 허황된 망상의 배후에 ‘전략적 유연성’이 있다. 복잡해보이지만 ‘전략적 유연성’이란 결국, 전 지구적 전쟁을 가능케 하기 위한 미국의 고민일 뿐이다. 단언하건데, 미국은 그 자체로 반평화적인 존재이다.
갑자기 이라크 생각이 난다. 또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철군에 관한 ‘논의’조차 일어나고 있지 않은 나라이다. 오히려 레바논에도 파병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자이툰 부대가 파병을 떠나던 날, 1박 2일의 처절한 투쟁을 깔아뭉개며 서울공항을 박차고 오르던 날렵한 비행기 뒤꽁무니를 마주하고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눈물을 토해냈던 기억이 난다. ‘평화유지군’을 떠나보내며 우린 얼마나 목청껏 ‘평화’를 외쳤던가.
이쯤되니 ‘평화’란 말을 떠올리면 반사적으로 ‘미국’을 떠올리게 된다. 원래 사전적 의미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최근 몇 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평화’의 요구는 미국을 향하는 것이었다.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 김선일 씨의 죽음, 대북 제재와 전쟁 발발의 위기 그리고 최근 평택미군기지확장까지 누군가의 죽음에 분노하고 사회 전체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이 됐던 사건에는 항상 미국이 겹쳐졌다.
누군가 말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뚜렷한 방법은 보이질 않는다. 평화로운 삶을 요구하는 싸움의 끝에서 모두 함께 평화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대추리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평화를 꿈꾸던 친구가 감옥에 갔다. 그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고 지난했던 재판을 거쳐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어디에서도 ‘평화’롭길 빈다.
그야말로 ‘평화’가 신음하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농사를 지을 권리, 평화적 생존권을 요구하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이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평택 투쟁의 끝이 무엇일까? 정부의 말처럼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황새울 들녘 285만 평의 결론일 수 있을까? 이 허황된 망상의 배후에 ‘전략적 유연성’이 있다. 복잡해보이지만 ‘전략적 유연성’이란 결국, 전 지구적 전쟁을 가능케 하기 위한 미국의 고민일 뿐이다. 단언하건데, 미국은 그 자체로 반평화적인 존재이다.
갑자기 이라크 생각이 난다. 또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철군에 관한 ‘논의’조차 일어나고 있지 않은 나라이다. 오히려 레바논에도 파병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자이툰 부대가 파병을 떠나던 날, 1박 2일의 처절한 투쟁을 깔아뭉개며 서울공항을 박차고 오르던 날렵한 비행기 뒤꽁무니를 마주하고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눈물을 토해냈던 기억이 난다. ‘평화유지군’을 떠나보내며 우린 얼마나 목청껏 ‘평화’를 외쳤던가.
이쯤되니 ‘평화’란 말을 떠올리면 반사적으로 ‘미국’을 떠올리게 된다. 원래 사전적 의미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최근 몇 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평화’의 요구는 미국을 향하는 것이었다.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 김선일 씨의 죽음, 대북 제재와 전쟁 발발의 위기 그리고 최근 평택미군기지확장까지 누군가의 죽음에 분노하고 사회 전체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이 됐던 사건에는 항상 미국이 겹쳐졌다.
누군가 말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뚜렷한 방법은 보이질 않는다. 평화로운 삶을 요구하는 싸움의 끝에서 모두 함께 평화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대추리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평화를 꿈꾸던 친구가 감옥에 갔다. 그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고 지난했던 재판을 거쳐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어디에서도 ‘평화’롭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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