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하고 강한 국군을 꿈꾸며
2006/2006년 10월 :
2006/10/01 00:00
휴가 나온 군인이 친구 두 명과 함께 걸어가는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저기 군인 하나와 사람 두 명이 간다”고 말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오래 전부터 널리 회자되며 군인이 처한 현실을 풍자하던 농담이다.
무력을 독점한 막강한 집단
기나긴 군사독재의 터널을 지나오며 우리 사회에서 군대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곳’이거나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두려운 곳’이었고, 언제든 시민사회의 혼란에 대해 회초리를 들겠다며 눈을 부라리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었다. 다양한 인적 구성과 막대한 예산으로 무력을 독점하고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은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많은 사람들을 고민케 하고 두려움에 떨게도 만들었던 글자 그대로 ‘막강한’ 곳이었다. 또 ‘애국’과 ‘국가안보’를 독점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 군내 사조직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칼을 빼든 이래 새로 들어서는 정부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튼튼한 군대를 만들겠다며 갖가지 정책들을 홍보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군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군인과 그 가족들은 자기들의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변화의 사각지대
솔직히 아무도 이 점에 대하여 천착하지 않았다. 보통사람들에게 군은 여전히 접근하기 싫은 위험한 곳이었고 뭔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구석이 많은 불투명한 곳이다. 군은 군대로 어떤 문제점과 잘못에 대하여도 시인하지 않고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눈과 귀를 막은 채 고립을 자초하고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어떤 집단이든 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일부러 드러내고 치부를 공개할 이유는 없다. 밖에서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고, 아니 궁금할망정 접근하여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아는 마당에 앞장서서 구질구질한 속사정을 공개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는다하여 모든 것이 감추어지고 변화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도 세상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더디고 느린 걸음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걸음이 두려운 이들이 뒤에서 발목을 잡느라 여념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자꾸 군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병사가 동료에게 총질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며, 오발이라는 불행 앞에 아까운 청춘을 잃기도 한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조차 의사의 오진과 실수로 목숨까지 잃는 일이다. 게다가 코앞에 민간병원을 두고도 군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는 고집 앞에 헬기를 기다리다 과다실혈로 속절없이 숨져간 젊은 죽음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군 간부들은 예전에 비해 몇십 배의 노력을 기울이고 정말 변하려고 노력하는데 불쑥 불쑥 불거지는 사건들 때문에 그간의 노력이 폄하된다면서 울상이고, 해명과 반론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군대 때리기에만 골몰한다며 언론에 눈을 흘기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언론계 안팎에서는 국방부 출입 기자들이 가장 퇴락한 집단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제대로 된 취재도 못하고 진정한 기자정신을 통한 예리한 분석과 전망을 전혀 내놓고 있지 못한 채 취재원과 밀착되어 있다고.
집안에 ‘힘이 없고 돈이 없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 군대 보낸 것도 억울한데 남의 자식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면 어머니는 가슴이 뛴다.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병사가 장군 숙소에서 종노릇하는 것도 황당한 일인데 멸치 보관을 잘못했다며 얻어맞았다니 말이다. 장군이야 하늘의 별을 땄다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며 참아보려 하지만, 장군 부인까지 나서서 병사들을 모욕했다는데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훈련받을 때는 똥을 먹이지 않나 걱정되고, 자대에 배치되면 선임병에게 얻어맞지 않나 불안하며, 고참병이 되면 후임병의 분노에 찬 총질에 희생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다 군에서 병을 얻어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건 아닌지도 염려해야 한다.
군대는 원래 그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할라치면 일부에서는 “군대가 원래 그런 거지, 사회랑 같다고 생각하는 정신상태가 문제다.”, “군인은 무조건 두들겨 패야 한다. 그래야 정신이 번쩍 들고 군기가 확립되어 사고가 나지 않는다. 민주, 인권 운운하며 오냐오냐 하니까 정신 나간 녀석들이 자꾸만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가정교육이 잘못되어 자기만 알고 규율을 무시하는 마마보이나 이기주의자들이 군에 오니 통제하기가 더 힘들다. 지휘관은 생살여탈권을 가진 신성한 존재이다. 지휘권을 훼손하고 제약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까라면 까는 게 군대고 그런 군대가 기강이 확립된 강한 군대이다.” “졸병이나 고참이나 다 같으면 군 생활하는 낙이 어디에 있나? 짬밥 수가 쌓이다보면 당연히 후임병에게 지시하고 가르쳐야 할 게 많은데 그러다보면 기합도 주고 꿀밤도 매겨야 되지 않나”, “이렇게 헛소리들을 해대니 여자도 모두 군에 보내야 한다. 그래야 군 가산점 폐지 운운하는 작태가 없어지지”와 같은 반론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대개 내리는 결론은 ‘할 수만 있다면 군대 가지 마라. 위험하기도 하지만 시간 낭비이다. 나더러 다시 군에 가라면 자살한다.’는 자조와 비아냥이다. 혹은 ‘용공세력이 정권을 잡으니 군을 홀대한다. 정중부가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생각해야 한다. 문민우위는 비극을 낳는다.’는 공공연한 협박이 횡행하고, 정권은 이를 알고도 모른척한다. 군을 ‘자극’하면 위험하다면서…….
직업군인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병사들의 인권은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어 가는데 직업군인들의 인권의식이나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탄식도 나온다. 병사들이야 의무복무하고 무사히 돌아가 군을 잊으면 된다지만 평생 직업으로 군을 택한 간부들의 인권은 방치되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반말을 듣기 일쑤이고 가족들 또한 아빠와 다름없는 군 생활을 한다. 가장의 계급과 직책에 따라 배정받은 격오지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언제든 전화가 오면 불려 나가는 아빠와 함께는 휴일과 주말이래도 맘 편히 여행을 할 수 없다. 근거도 없는 ‘위수지역 이탈 금지’라는 말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봉쇄하고 비상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한마디 말로 취침이나 휴가 중의 호출이 정당화되며, 보안의 중요성이라는 이유로 영장 없는 가택 수색 내지 사무실, 숙소의 수색도 감내하여야만 한다. 출근길에 벌어지는 가방검사, 소지품 검사 또한 1970년대 어느 고등학교의 풍경이 아닌 현재 우리 군의 풍경이다. 심지어 종교생활조차 군 생활의 연속이라며 예배 후에는 계급 높은 이의 지시에 따라 억지로 친교활동을 하고, 상급자가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 자신의 종교를 표변하는 웃지 못할 희극이 난무하고 있다.
막강한 권한 누리는 지휘관
지휘관직에 있는 장군의 지위는 분명 봉건영주에 비견될 만하다. 번쩍이는 계급장 외에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부관, 운전병이 딸린 고급 승용차가 배치되고, A공관 내지 1호 공관이라고 불리는 저택이 제공된다. 자동차 번호판 대신 별이 그려진 번쩍이는 성판을 달고 유료도로의 이용요금을 모두 면제받을 뿐 아니라 군이 갖고 있는 각종 휴양소와 콘도미니엄, 골프장의 최고급 시설을 최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제공된다. 스스로 한손에 3권을 모두 쥐고 있다고 할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부하들의 진급, 보직, 징계, 사법처리 등에 관해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며 군사법원의 판결에 대한 확인 감경권까지 행사할 수 있다.
각종 의전과 예우는 준장만 되어도 정부부처 1급 공무원을 능가하거나 이에 준하며, 봉급과 수당 외에도 PX 등의 수익금으로 구성된 복지기금 등을 지휘활동비에 포함하여 사용할 수 있다. 군에서 갖고 있는 각종 시설에는 장군 전용시설이 거의 마련되어 있고, 심지어 이발을 할 경우에도 문 앞에 성판을 붙여 주위에 사람이 얼씬거리지 못한다. 병원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장군이 도착하기 전 병원장을 포함한 전 의료진이 현관에 도열하여 그를 맞고, 아무리 사소한 질병이라도 전용병실에서 전문 의료진의 친절한 상담을 받아가며 진단,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것도 귀찮다면 물론 군의관을 호출하여 집무실에서 검진을 받고 나면 나중에 병원장이 잘 처방된 약을 들고 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부인 전용 승용차와 운전병이 있었고 전투화와 허리띠까지 차별화하였으나 최근 폐지되었다. 이렇듯 하늘의 별 내지 살아있는 신에 비견되는 장군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장교들은 목숨까지 건 충성경쟁을 하고 산간오지의 낡은 아파트에서 처자식마저 희생시키는 혹독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다.
부사관도 직업군인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처우는 장군과 비교될 수 없다. 물론 우리 사회의 다른 직업군의 노고및 보수와 비교할 때 박봉은 아니지만, 장군의 그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나이 어린 장교들에게 반말을 들어야 하는 수모도 가끔 견뎌내야 하고 초임 하사의 경우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병사들에게 무시당하는 일도 가끔 벌어진다. 장교(사관) 아래(下)라는 글자를 장교에 버금간다는 부(副)자로 바꾸고 처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지만 아직도 바깥에서는 하사관이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부대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아버지(지휘관)의 막강한 권위에 거의 도전하지 못하는 힘없는 어머니일 뿐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사관은 부사관일뿐, 요즘 취업난 덕에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쓸쓸함이 남는다. 군 시설 어디에도 부사관을 위한 전용시설이 없음은 물론이지만, 장교들처럼 치열하고 비인간적인 진급경쟁에 내몰리지 않고 자주 이사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한다.
헌법이 정한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병사
병사들의 생활은 앞서 말한 장교, 부사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분명히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러 군에 왔지만, 감옥 아닌 감옥생활을 감내하여야 한다. 수용소 비슷한 내무실에 수십 명씩 잠을 자며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군에 늦게 왔으면 한참 어린 선임병에게 반말과 수모를 당하기 일쑤이고, 가족을 떠난 불안감과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전화 한번 하기가 쉽지 않다. 빡빡 깎은 머리가 그렇고, 통일된 복장과 엄격한 규율이 그렇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먹어야 하는 것과 함부로 밖에 나가거나 바깥 사람을 만나면 처벌 받는 점, 노동에 비해 너무 적은 보수를 받는다는 점 등 많은 것이 재소자와 비슷하다.
하물며 지휘관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헌법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영창’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영장에 의하지 않은 신체의 자유의 박탈이라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계속되었지만 군은 요지부동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병사의 지위가 과거 봉건영주가 부리던 농노와 뭐가 다른지 한탄할 만하다. 물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에게 이는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자신이 군 복무를 하는 동안 경험하는 현실과 방송을 통해 홍보되는 현실이 일치되는 시점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원칙적으로 국방부의 복지정책은 직업군인을 염두에 두고 마련되는 것이다.
이런 군대는 결코 국민의 사랑을 받는 강력한 군대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자녀이자 형제자매들이 군대 안에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현대의 강군은 잘못한 자의 목을 그 자리에서 치는 것으로 유지되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러하지 않았다. ‘연저지인’의 고사에서 졸병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준 오기(吳起)장군은 탐욕스러운 호색한인데다 성품이 간악했지만, 장군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는 신분이 가장 낮은 사졸과 의식을 함께 하고 잘 때도 깔 것을 쓰지 않으며,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식량을 손수 짊어질 정도로 부하들과 동고동락한 결과 연전연승했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
군은 나라를 지킨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영토와 주권, 국민을 포함한 일체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군인은 마땅히 ‘제복을 입은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헌법이 부여한 모든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부하들에게 이유 없는 인내심과 굴종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권을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군내의 문제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건전한 의사소통 체계와 약자를 보호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군대가 만들어진다면, 더 이상 병역의 의무가 국적을 바꾸고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피하고 싶은 ‘어둠의 자식들’의 멍에로 남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장군들의 머리와 어깨에서 반짝이는 별은 국민이 준 것임을 알아야 한다. 꿈과 희망의 별이 모든 군인의 마음 속에 반짝이기를 소망하는 것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만이 진정으로 강한 국민의 군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무력을 독점한 막강한 집단
기나긴 군사독재의 터널을 지나오며 우리 사회에서 군대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곳’이거나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두려운 곳’이었고, 언제든 시민사회의 혼란에 대해 회초리를 들겠다며 눈을 부라리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었다. 다양한 인적 구성과 막대한 예산으로 무력을 독점하고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은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많은 사람들을 고민케 하고 두려움에 떨게도 만들었던 글자 그대로 ‘막강한’ 곳이었다. 또 ‘애국’과 ‘국가안보’를 독점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 군내 사조직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칼을 빼든 이래 새로 들어서는 정부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튼튼한 군대를 만들겠다며 갖가지 정책들을 홍보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군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군인과 그 가족들은 자기들의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변화의 사각지대
솔직히 아무도 이 점에 대하여 천착하지 않았다. 보통사람들에게 군은 여전히 접근하기 싫은 위험한 곳이었고 뭔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구석이 많은 불투명한 곳이다. 군은 군대로 어떤 문제점과 잘못에 대하여도 시인하지 않고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눈과 귀를 막은 채 고립을 자초하고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어떤 집단이든 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일부러 드러내고 치부를 공개할 이유는 없다. 밖에서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고, 아니 궁금할망정 접근하여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아는 마당에 앞장서서 구질구질한 속사정을 공개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는다하여 모든 것이 감추어지고 변화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도 세상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더디고 느린 걸음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걸음이 두려운 이들이 뒤에서 발목을 잡느라 여념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자꾸 군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병사가 동료에게 총질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며, 오발이라는 불행 앞에 아까운 청춘을 잃기도 한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조차 의사의 오진과 실수로 목숨까지 잃는 일이다. 게다가 코앞에 민간병원을 두고도 군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는 고집 앞에 헬기를 기다리다 과다실혈로 속절없이 숨져간 젊은 죽음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군 간부들은 예전에 비해 몇십 배의 노력을 기울이고 정말 변하려고 노력하는데 불쑥 불쑥 불거지는 사건들 때문에 그간의 노력이 폄하된다면서 울상이고, 해명과 반론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군대 때리기에만 골몰한다며 언론에 눈을 흘기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언론계 안팎에서는 국방부 출입 기자들이 가장 퇴락한 집단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제대로 된 취재도 못하고 진정한 기자정신을 통한 예리한 분석과 전망을 전혀 내놓고 있지 못한 채 취재원과 밀착되어 있다고.
집안에 ‘힘이 없고 돈이 없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 군대 보낸 것도 억울한데 남의 자식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면 어머니는 가슴이 뛴다.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병사가 장군 숙소에서 종노릇하는 것도 황당한 일인데 멸치 보관을 잘못했다며 얻어맞았다니 말이다. 장군이야 하늘의 별을 땄다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며 참아보려 하지만, 장군 부인까지 나서서 병사들을 모욕했다는데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훈련받을 때는 똥을 먹이지 않나 걱정되고, 자대에 배치되면 선임병에게 얻어맞지 않나 불안하며, 고참병이 되면 후임병의 분노에 찬 총질에 희생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다 군에서 병을 얻어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건 아닌지도 염려해야 한다.
군대는 원래 그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할라치면 일부에서는 “군대가 원래 그런 거지, 사회랑 같다고 생각하는 정신상태가 문제다.”, “군인은 무조건 두들겨 패야 한다. 그래야 정신이 번쩍 들고 군기가 확립되어 사고가 나지 않는다. 민주, 인권 운운하며 오냐오냐 하니까 정신 나간 녀석들이 자꾸만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가정교육이 잘못되어 자기만 알고 규율을 무시하는 마마보이나 이기주의자들이 군에 오니 통제하기가 더 힘들다. 지휘관은 생살여탈권을 가진 신성한 존재이다. 지휘권을 훼손하고 제약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까라면 까는 게 군대고 그런 군대가 기강이 확립된 강한 군대이다.” “졸병이나 고참이나 다 같으면 군 생활하는 낙이 어디에 있나? 짬밥 수가 쌓이다보면 당연히 후임병에게 지시하고 가르쳐야 할 게 많은데 그러다보면 기합도 주고 꿀밤도 매겨야 되지 않나”, “이렇게 헛소리들을 해대니 여자도 모두 군에 보내야 한다. 그래야 군 가산점 폐지 운운하는 작태가 없어지지”와 같은 반론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대개 내리는 결론은 ‘할 수만 있다면 군대 가지 마라. 위험하기도 하지만 시간 낭비이다. 나더러 다시 군에 가라면 자살한다.’는 자조와 비아냥이다. 혹은 ‘용공세력이 정권을 잡으니 군을 홀대한다. 정중부가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생각해야 한다. 문민우위는 비극을 낳는다.’는 공공연한 협박이 횡행하고, 정권은 이를 알고도 모른척한다. 군을 ‘자극’하면 위험하다면서…….
직업군인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병사들의 인권은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어 가는데 직업군인들의 인권의식이나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탄식도 나온다. 병사들이야 의무복무하고 무사히 돌아가 군을 잊으면 된다지만 평생 직업으로 군을 택한 간부들의 인권은 방치되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반말을 듣기 일쑤이고 가족들 또한 아빠와 다름없는 군 생활을 한다. 가장의 계급과 직책에 따라 배정받은 격오지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언제든 전화가 오면 불려 나가는 아빠와 함께는 휴일과 주말이래도 맘 편히 여행을 할 수 없다. 근거도 없는 ‘위수지역 이탈 금지’라는 말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봉쇄하고 비상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한마디 말로 취침이나 휴가 중의 호출이 정당화되며, 보안의 중요성이라는 이유로 영장 없는 가택 수색 내지 사무실, 숙소의 수색도 감내하여야만 한다. 출근길에 벌어지는 가방검사, 소지품 검사 또한 1970년대 어느 고등학교의 풍경이 아닌 현재 우리 군의 풍경이다. 심지어 종교생활조차 군 생활의 연속이라며 예배 후에는 계급 높은 이의 지시에 따라 억지로 친교활동을 하고, 상급자가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 자신의 종교를 표변하는 웃지 못할 희극이 난무하고 있다.
막강한 권한 누리는 지휘관
지휘관직에 있는 장군의 지위는 분명 봉건영주에 비견될 만하다. 번쩍이는 계급장 외에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부관, 운전병이 딸린 고급 승용차가 배치되고, A공관 내지 1호 공관이라고 불리는 저택이 제공된다. 자동차 번호판 대신 별이 그려진 번쩍이는 성판을 달고 유료도로의 이용요금을 모두 면제받을 뿐 아니라 군이 갖고 있는 각종 휴양소와 콘도미니엄, 골프장의 최고급 시설을 최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제공된다. 스스로 한손에 3권을 모두 쥐고 있다고 할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부하들의 진급, 보직, 징계, 사법처리 등에 관해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며 군사법원의 판결에 대한 확인 감경권까지 행사할 수 있다.
각종 의전과 예우는 준장만 되어도 정부부처 1급 공무원을 능가하거나 이에 준하며, 봉급과 수당 외에도 PX 등의 수익금으로 구성된 복지기금 등을 지휘활동비에 포함하여 사용할 수 있다. 군에서 갖고 있는 각종 시설에는 장군 전용시설이 거의 마련되어 있고, 심지어 이발을 할 경우에도 문 앞에 성판을 붙여 주위에 사람이 얼씬거리지 못한다. 병원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장군이 도착하기 전 병원장을 포함한 전 의료진이 현관에 도열하여 그를 맞고, 아무리 사소한 질병이라도 전용병실에서 전문 의료진의 친절한 상담을 받아가며 진단,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것도 귀찮다면 물론 군의관을 호출하여 집무실에서 검진을 받고 나면 나중에 병원장이 잘 처방된 약을 들고 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부인 전용 승용차와 운전병이 있었고 전투화와 허리띠까지 차별화하였으나 최근 폐지되었다. 이렇듯 하늘의 별 내지 살아있는 신에 비견되는 장군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장교들은 목숨까지 건 충성경쟁을 하고 산간오지의 낡은 아파트에서 처자식마저 희생시키는 혹독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다.
부사관도 직업군인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처우는 장군과 비교될 수 없다. 물론 우리 사회의 다른 직업군의 노고및 보수와 비교할 때 박봉은 아니지만, 장군의 그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나이 어린 장교들에게 반말을 들어야 하는 수모도 가끔 견뎌내야 하고 초임 하사의 경우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병사들에게 무시당하는 일도 가끔 벌어진다. 장교(사관) 아래(下)라는 글자를 장교에 버금간다는 부(副)자로 바꾸고 처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지만 아직도 바깥에서는 하사관이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부대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아버지(지휘관)의 막강한 권위에 거의 도전하지 못하는 힘없는 어머니일 뿐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사관은 부사관일뿐, 요즘 취업난 덕에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쓸쓸함이 남는다. 군 시설 어디에도 부사관을 위한 전용시설이 없음은 물론이지만, 장교들처럼 치열하고 비인간적인 진급경쟁에 내몰리지 않고 자주 이사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한다.
헌법이 정한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병사
병사들의 생활은 앞서 말한 장교, 부사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분명히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러 군에 왔지만, 감옥 아닌 감옥생활을 감내하여야 한다. 수용소 비슷한 내무실에 수십 명씩 잠을 자며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군에 늦게 왔으면 한참 어린 선임병에게 반말과 수모를 당하기 일쑤이고, 가족을 떠난 불안감과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전화 한번 하기가 쉽지 않다. 빡빡 깎은 머리가 그렇고, 통일된 복장과 엄격한 규율이 그렇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먹어야 하는 것과 함부로 밖에 나가거나 바깥 사람을 만나면 처벌 받는 점, 노동에 비해 너무 적은 보수를 받는다는 점 등 많은 것이 재소자와 비슷하다.
하물며 지휘관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헌법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영창’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영장에 의하지 않은 신체의 자유의 박탈이라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계속되었지만 군은 요지부동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병사의 지위가 과거 봉건영주가 부리던 농노와 뭐가 다른지 한탄할 만하다. 물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에게 이는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자신이 군 복무를 하는 동안 경험하는 현실과 방송을 통해 홍보되는 현실이 일치되는 시점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원칙적으로 국방부의 복지정책은 직업군인을 염두에 두고 마련되는 것이다.
이런 군대는 결코 국민의 사랑을 받는 강력한 군대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자녀이자 형제자매들이 군대 안에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현대의 강군은 잘못한 자의 목을 그 자리에서 치는 것으로 유지되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러하지 않았다. ‘연저지인’의 고사에서 졸병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준 오기(吳起)장군은 탐욕스러운 호색한인데다 성품이 간악했지만, 장군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는 신분이 가장 낮은 사졸과 의식을 함께 하고 잘 때도 깔 것을 쓰지 않으며,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식량을 손수 짊어질 정도로 부하들과 동고동락한 결과 연전연승했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
군은 나라를 지킨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영토와 주권, 국민을 포함한 일체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군인은 마땅히 ‘제복을 입은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헌법이 부여한 모든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부하들에게 이유 없는 인내심과 굴종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권을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군내의 문제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건전한 의사소통 체계와 약자를 보호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군대가 만들어진다면, 더 이상 병역의 의무가 국적을 바꾸고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피하고 싶은 ‘어둠의 자식들’의 멍에로 남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장군들의 머리와 어깨에서 반짝이는 별은 국민이 준 것임을 알아야 한다. 꿈과 희망의 별이 모든 군인의 마음 속에 반짝이기를 소망하는 것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만이 진정으로 강한 국민의 군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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