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 KBS <독립영화관>은 폐지될 것인가?
2006/2006년 10월 :
2006/10/01 00:00
친구의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안지는 벌써 6-7년이나 되었지만 그 녀석이 내 친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술을 먹고 잡담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이들을 친구라 한다면 그 녀석은 친구가 아니겠다. 사적으로 찾아오고, 찾아가며 술 먹자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모임에서 만나게 되도 대개 멀리 떨어져 앉기 일쑤이다. 혹 앞에 앉더라도 별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쉬이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냉소와 직언, 뻔뻔함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 녀석 탓도 크다. 그러니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연락하는 이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녀석을 친구라 여기는 것은 하나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가 지향하는 바를 그 녀석도 같이 지향하고 있다는 믿음 말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불합리가 합리로 포장되는 현실에 반대하는 그 녀석이기에 언젠가는 함께 힘을 모아 일을 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 녀석은 독립영화 감독이다. 그 판에서는 꽤나 잘 나가는 모양이다.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근엄하지 않게 양아치처럼 뱉어내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역시나 냉소적이고 직접적이며 뻔뻔하게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게 그 녀석 작품의 매력이다. 이는 그간 그 녀석을 스토킹한 나의 결론이다. 살리에리가 만약 21세기에 살아 있다면 연일 모차르트에 대한 기사 검색을 하며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 녀석이 무슨 작품을 찍었는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내는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스토킹을 한다. 그러다보면 저 만큼 앞에 가 있는 그 녀석의 등이 보이는 것 같다. 독립영화를 통해 말 그대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 녀석이 한 편으로 자랑스럽고 다른 한편으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도 한다.
장황하게 그 녀석 이야기를 한 것은 최근 KBS의 <독립영화관>이란 프로그램이 곧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독립영화가 통상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친구는 아니겠다. 상업영화와 오락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를 독립영화가 주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굳이 발품을 들여가며 독립영화를 찾지도 않을뿐더러 독립영화 역시 기꺼이 우리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찾아오지도 않는다. 혹 잠시 채널을 돌리다가 <독립영화관>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그네들의 화법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지나친 자의식과 세상을 다 산 듯한 그들의 냉소가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금요일 새벽 한 시, 저 멀리 편성된 <독립영화관>의 위치 역시 그들과 우리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보여주는 것이겠다. 그럼에도 KBS에서 <독립영화관>을 편성했던 것은 그들의 불편함이 우리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날이 선 불편한 목소리에 간과되었던 진실이 있을 수 있다. 상업성과 대중성의 이름으로 사장된 보이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가 독립영화 속에 담겨 있다. 비록 자주 <독립영화관>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 그 곳에 독립영화가 있다는 것은 그래도 우리의 불편한 친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친구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달콤한 친구들은 주위에 많지만 뻔뻔하게 쓴 소리를 해주던 친구들은 하나 둘 없어지고 있다. KBS <독립영화관> 폐지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 녀석은 독립영화 감독이다. 그 판에서는 꽤나 잘 나가는 모양이다.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근엄하지 않게 양아치처럼 뱉어내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역시나 냉소적이고 직접적이며 뻔뻔하게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게 그 녀석 작품의 매력이다. 이는 그간 그 녀석을 스토킹한 나의 결론이다. 살리에리가 만약 21세기에 살아 있다면 연일 모차르트에 대한 기사 검색을 하며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 녀석이 무슨 작품을 찍었는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내는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스토킹을 한다. 그러다보면 저 만큼 앞에 가 있는 그 녀석의 등이 보이는 것 같다. 독립영화를 통해 말 그대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 녀석이 한 편으로 자랑스럽고 다른 한편으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도 한다.
장황하게 그 녀석 이야기를 한 것은 최근 KBS의 <독립영화관>이란 프로그램이 곧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독립영화가 통상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친구는 아니겠다. 상업영화와 오락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를 독립영화가 주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굳이 발품을 들여가며 독립영화를 찾지도 않을뿐더러 독립영화 역시 기꺼이 우리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찾아오지도 않는다. 혹 잠시 채널을 돌리다가 <독립영화관>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그네들의 화법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지나친 자의식과 세상을 다 산 듯한 그들의 냉소가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금요일 새벽 한 시, 저 멀리 편성된 <독립영화관>의 위치 역시 그들과 우리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보여주는 것이겠다. 그럼에도 KBS에서 <독립영화관>을 편성했던 것은 그들의 불편함이 우리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날이 선 불편한 목소리에 간과되었던 진실이 있을 수 있다. 상업성과 대중성의 이름으로 사장된 보이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가 독립영화 속에 담겨 있다. 비록 자주 <독립영화관>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 그 곳에 독립영화가 있다는 것은 그래도 우리의 불편한 친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친구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달콤한 친구들은 주위에 많지만 뻔뻔하게 쓴 소리를 해주던 친구들은 하나 둘 없어지고 있다. KBS <독립영화관> 폐지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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