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유감
2006/2006년 10월 :
2006/10/01 00:00
일전에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 인근 광양에서는 전어축제가 한창이었다. 전어회 한 접시에 삼만 원이라고 했다. 돈 아깝다는 부모님을 한 나절이나 설득해서 광양으로 달렸다. 고물차를 산 지 일 년 남짓, 살 때는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를 자주 하리라, 작은 꿈도 있었다. 그러나 팔순이 지난 부모님은 잠깐의 드라이브에도 몸살을 앓았고, 경치 좋기로 소문난 한려수도며 오동도며 대성골이며, 제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감탄사 한 번 내뱉을만한 경치건만 시종 무덤덤했다. 팔십 년의 세월이 감각에마저 켜켜이 쌓인 탓이리라. 무덤덤한 드라이브 서너 번을 끝으로 다시는 먼 데 가자 조르지 않았다.
오랜 만에 먼 길을 나선 전어 때문이었다. 비린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게 전어회라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던 것이다. 전어회 한 접시에 삼만 원, 시골 노인으로서는 꿈도 못 꿀 액수라 지난 장날 아버지는 이미 죽어 흐늘흐늘한 전어 댓 마리를 오천 원에 사들고 와서는 어머니에게 회를 떠달라고 했단다. 광양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아버지는 꾸벅꾸벅 졸았고, 어머니는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십 분이 멀다하고 화장실에 가야하는 아버지가 없는 틈에 삼만 원짜리 전어회 한 접시를 주문했다. 내가 주문하는 동안 어머니는 태풍 전야의 흐느끼는 바다를 망연히 보고 있었다. 회를 두어 점 먹고 난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전어는 무쳐야 맛난디 여그는 먼 집이 무쳐 주도 않는갑다이.”
사십 년 가까이 아버지 딸로 살면서 아버지가 전어회를 좋아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거니와 회보다 무침을 좋아한다는 것은 물론 금시초문이었다. 주인을 불러 무쳐 달라고 부탁해보았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단체손님 시중에 정신이 없는 탓인지 안 된다고 했다. 파도는 시시각각 높아지고 우리는 말없이 회를 먹었다. 한 오 분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침묵을 깨뜨렸다.
“여그는 먼 집이 무쳐주도 않는갑다이.”
치매 초기인 아버지는 일하는 사람을 불러 무쳐 달라 부탁까지 했던 오 분 전의 상황을 까맣게 잊고, 회보다는 무침이 그리웠던 것이다. 회 한 접시를 다 먹기까지 아버지는 다섯 번이나 똑같은 말을 했다. 횟집을 나오면서 물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전어는 무쳐야 맛난디…….”
대학시절, 느닷없이 자취방으로 찾아온 아버지께 된장찌개를 얼렁뚱땅 끓여 대접한 적이 있었다. 맛나다, 아따 맛나다, 맛날 리 없는 흉내뿐인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아버지는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었다. 그게 내 아버지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까지 돈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돈 욕심을 부려본 바 별로 없고, 돈 때문에 인생의 진로를 바꾸거나 돈에 좌우되는 사람을 경멸했다. 그러나 전어회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사무치게 돈을 벌고 싶었다. 아버지가 전어 무침의 맛을 잊어버리기 전에 매일이라도 전어회를 사드릴 수 있다면, 모든 기억을 잃기 전에 그동안 해드리지 못한 것을 해드릴 수 있다면, 내 자신으로부터든 밖으로부터든 그깟 경멸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살이란 신념이나 지향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인 모양이라고, 나이 마흔 넘어서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는 울었다.
오랜 만에 먼 길을 나선 전어 때문이었다. 비린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게 전어회라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던 것이다. 전어회 한 접시에 삼만 원, 시골 노인으로서는 꿈도 못 꿀 액수라 지난 장날 아버지는 이미 죽어 흐늘흐늘한 전어 댓 마리를 오천 원에 사들고 와서는 어머니에게 회를 떠달라고 했단다. 광양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아버지는 꾸벅꾸벅 졸았고, 어머니는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십 분이 멀다하고 화장실에 가야하는 아버지가 없는 틈에 삼만 원짜리 전어회 한 접시를 주문했다. 내가 주문하는 동안 어머니는 태풍 전야의 흐느끼는 바다를 망연히 보고 있었다. 회를 두어 점 먹고 난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전어는 무쳐야 맛난디 여그는 먼 집이 무쳐 주도 않는갑다이.”
사십 년 가까이 아버지 딸로 살면서 아버지가 전어회를 좋아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거니와 회보다 무침을 좋아한다는 것은 물론 금시초문이었다. 주인을 불러 무쳐 달라고 부탁해보았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단체손님 시중에 정신이 없는 탓인지 안 된다고 했다. 파도는 시시각각 높아지고 우리는 말없이 회를 먹었다. 한 오 분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침묵을 깨뜨렸다.
“여그는 먼 집이 무쳐주도 않는갑다이.”
치매 초기인 아버지는 일하는 사람을 불러 무쳐 달라 부탁까지 했던 오 분 전의 상황을 까맣게 잊고, 회보다는 무침이 그리웠던 것이다. 회 한 접시를 다 먹기까지 아버지는 다섯 번이나 똑같은 말을 했다. 횟집을 나오면서 물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전어는 무쳐야 맛난디…….”
대학시절, 느닷없이 자취방으로 찾아온 아버지께 된장찌개를 얼렁뚱땅 끓여 대접한 적이 있었다. 맛나다, 아따 맛나다, 맛날 리 없는 흉내뿐인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아버지는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었다. 그게 내 아버지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까지 돈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돈 욕심을 부려본 바 별로 없고, 돈 때문에 인생의 진로를 바꾸거나 돈에 좌우되는 사람을 경멸했다. 그러나 전어회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사무치게 돈을 벌고 싶었다. 아버지가 전어 무침의 맛을 잊어버리기 전에 매일이라도 전어회를 사드릴 수 있다면, 모든 기억을 잃기 전에 그동안 해드리지 못한 것을 해드릴 수 있다면, 내 자신으로부터든 밖으로부터든 그깟 경멸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살이란 신념이나 지향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인 모양이라고, 나이 마흔 넘어서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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