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어선 수도권 과밀
2006/2006년 11월 :
2006/11/01 00:00
‘한강의 기적’은 앞으로도 되풀이되어야 할까? 수도권만이 한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의지해야 할 유일한 곳일까?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위세를 자랑하고, 사방으로 뻗은 도로에는 자동차가 넘쳐난다. 서울은 콩나물시루를 연상시키는 과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 빚어낸 서울 거리에 서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냉정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과밀화로 뒷걸음질하는 삶의 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인구는 2004년 2,300만을 넘어 인구집중도 48%를 기록했다. 특히 수도권 전체 면적의 17.3%를 차지하고 있는 과밀억제권역(서울 인근 14개 위성도시의 전체 또는 일부)에 수도권 시민의 84.3%가 몰려 있다.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은 보다 심각해서 100대 기업 본사의 91%, 공공기관의 85%, 금융기관의 67%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정부는 도로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60% 이상을 수도권에 쏟아 붓기에 바쁘다. 이 엄청난 집중의 결과 수도권 시민들의 삶의 질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시민들은 교통체증, 주택난, 환경오염 등 생활환경의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과밀화를 앞으로도 더 심화시킬 불길할 조짐들이 정부, 정계, 재계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 준비위를 결성한 것도 이런 움직임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도권 과밀화는 우리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수도권 관리 정책
1960년에 들어서면서 이미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집중된 수도권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었다. 이 같은 필요에서 나온 것이 대도시 인구집중 방지책과 개발제한구역 지정이었다. 수도권에 전체의 35%가 넘는 인구가 집중된 1980년대 들어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되어 이를 근거로 수도권정비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 신도시 건설, 외환위기, 구조조정 등을 통해 수도권 규제 완화와 양적 성장이 추진되었다.
개발에 무게를 두고 특정산업 및 특정지역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여 고도경제성장과 선진국 진입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일궈냈다. 수도권은 개발주의의 최대 수혜자이자 특권적 지위를 누렸다.
참여정부 역시 3차 수도권정비계획(2006~2020)을 통해 ’인구 안정화를 전제로 한 수도권의 질적 발전과 지방과의 상생 발전‘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수도권 공장의 신·증설을 선별 허용하고,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갖가지 편법적인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과밀을 해결하기 위해 녹지를 없애는 것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적으로 산업단지가 남아도는데도, 사람과 기업이 수도권에만 몰리도록 한 정부 정책은 다시 되짚어봐야 할 문제이다.
한 조각 개발제한구역마저 벗어던지며
정보의 지구화,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20세기에 한국은 참으로 많은 것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왔다. 도시계획과 관련된 정책과 제도도 그 하나이다. 한국은 영국에서 개발제한구역 제도를 빌려왔지만, 무늬만 대충 옮겨온 형국이다. 전원도시운동에서 시작된 영국의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원래 인구 5,000~2만 명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 단위로 거대도시를 가꾸고 관리하는 정책이었다. 그것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개발제한구역은 도시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녹지 형태가 되었다.
성장에 급급했던 시절 대도시 시민들이 주말에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는 즐거움이라도 주지 않았느냐고 위안을 삼아야 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데 애초에 전 국토의 5.4%에 불과했던 개발제한구역을 다시금 정부가 나서서 철회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한국은 영국으로부터 개발제한구역 해제의 명분을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소위 광역도시계획의 시작이었다. 도시와 도시, 지역과 지역에 걸쳐있는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개발할 근거를 찾아나선 것이다.
정부는 1998년 발표된 지방중소도시 주변 개발제한구역 4억 9,000만 평 해제, 7개 대도시권 개발제한구역 단계적 해제 발표에 이어 올 6월 구체적으로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4,110만 평을 2011년까지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발표된 군사보호구역 해제, 미군기지 공여지 및 주변지역 개발계획을 포함한다면 수도권 과밀에 따른 사회, 경제, 환경적 비용은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프랑스는 전체인구의 18%가 파리에 집중된 1970년대 ‘지방의 사막화’라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파리에 집중된 인구와 산업, 국가기관을 분산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일본은 1970년대 28%에 이르렀던 수도권 인구집중현상을 관리하기 시작하여 현재 32% 수준을 유지하며 전 국토의 계획적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한강의 기적’ 환상에서 깨어나야
그런데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느 정치인은 수도권만이 성장의 유일한 엔진이라며 첨단대기업을 수도권의 자연보전권역에 유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기업환경개선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지금처럼 선별적, 예외적으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재벌의 특혜로 이어질 정책들을 내놓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다. 미군기지 공여지 주변의 산들은 개발업자들이 앞다퉈 사들여 개발 기회만 노리고 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명분으로 비밀스럽게 정책을 준비하고, 재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연녹지의 개발까지 요구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이 과실을 나누어야
지속가능한 삶은 특정 지역, 특정 사회 부문의 성장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개발주의가 최선이며 경제 성장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적 인구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한 21세기 한국에 과연 개발이 유일한 성장 동력일까? 개발에 따른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 진정으로 삶의 질을 끌어올려줄까? 무분별한 개발, 도시화, 산업화로 인한 피해와 비용은 누가 짊어지는 것일까? 전국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산업단지들이 있는데도,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생존의 기로에 있는 삶의 터들이 있는데도, 집중에 따른 비용을 시민 혈세로 보충하는 악순환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으로만 집중시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 지방 도시들은 낙후와 침체로 고통을 겪고 있다. 노후화된 산업밀집지역을 리사이클링하는 일도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고, 수도권과 지방이 ‘한강의 기적’의 과실을 나누는 것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의 하나일 수 있다. 치우침이 사회에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뿌린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길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과밀화로 뒷걸음질하는 삶의 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인구는 2004년 2,300만을 넘어 인구집중도 48%를 기록했다. 특히 수도권 전체 면적의 17.3%를 차지하고 있는 과밀억제권역(서울 인근 14개 위성도시의 전체 또는 일부)에 수도권 시민의 84.3%가 몰려 있다.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은 보다 심각해서 100대 기업 본사의 91%, 공공기관의 85%, 금융기관의 67%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정부는 도로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60% 이상을 수도권에 쏟아 붓기에 바쁘다. 이 엄청난 집중의 결과 수도권 시민들의 삶의 질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시민들은 교통체증, 주택난, 환경오염 등 생활환경의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과밀화를 앞으로도 더 심화시킬 불길할 조짐들이 정부, 정계, 재계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 준비위를 결성한 것도 이런 움직임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도권 과밀화는 우리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수도권 관리 정책
1960년에 들어서면서 이미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집중된 수도권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었다. 이 같은 필요에서 나온 것이 대도시 인구집중 방지책과 개발제한구역 지정이었다. 수도권에 전체의 35%가 넘는 인구가 집중된 1980년대 들어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되어 이를 근거로 수도권정비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 신도시 건설, 외환위기, 구조조정 등을 통해 수도권 규제 완화와 양적 성장이 추진되었다.
개발에 무게를 두고 특정산업 및 특정지역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여 고도경제성장과 선진국 진입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일궈냈다. 수도권은 개발주의의 최대 수혜자이자 특권적 지위를 누렸다.
참여정부 역시 3차 수도권정비계획(2006~2020)을 통해 ’인구 안정화를 전제로 한 수도권의 질적 발전과 지방과의 상생 발전‘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수도권 공장의 신·증설을 선별 허용하고,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갖가지 편법적인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과밀을 해결하기 위해 녹지를 없애는 것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적으로 산업단지가 남아도는데도, 사람과 기업이 수도권에만 몰리도록 한 정부 정책은 다시 되짚어봐야 할 문제이다.
한 조각 개발제한구역마저 벗어던지며
정보의 지구화,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20세기에 한국은 참으로 많은 것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왔다. 도시계획과 관련된 정책과 제도도 그 하나이다. 한국은 영국에서 개발제한구역 제도를 빌려왔지만, 무늬만 대충 옮겨온 형국이다. 전원도시운동에서 시작된 영국의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원래 인구 5,000~2만 명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 단위로 거대도시를 가꾸고 관리하는 정책이었다. 그것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개발제한구역은 도시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녹지 형태가 되었다.
성장에 급급했던 시절 대도시 시민들이 주말에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는 즐거움이라도 주지 않았느냐고 위안을 삼아야 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데 애초에 전 국토의 5.4%에 불과했던 개발제한구역을 다시금 정부가 나서서 철회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한국은 영국으로부터 개발제한구역 해제의 명분을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소위 광역도시계획의 시작이었다. 도시와 도시, 지역과 지역에 걸쳐있는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개발할 근거를 찾아나선 것이다.
정부는 1998년 발표된 지방중소도시 주변 개발제한구역 4억 9,000만 평 해제, 7개 대도시권 개발제한구역 단계적 해제 발표에 이어 올 6월 구체적으로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4,110만 평을 2011년까지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발표된 군사보호구역 해제, 미군기지 공여지 및 주변지역 개발계획을 포함한다면 수도권 과밀에 따른 사회, 경제, 환경적 비용은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프랑스는 전체인구의 18%가 파리에 집중된 1970년대 ‘지방의 사막화’라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파리에 집중된 인구와 산업, 국가기관을 분산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일본은 1970년대 28%에 이르렀던 수도권 인구집중현상을 관리하기 시작하여 현재 32% 수준을 유지하며 전 국토의 계획적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한강의 기적’ 환상에서 깨어나야
그런데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느 정치인은 수도권만이 성장의 유일한 엔진이라며 첨단대기업을 수도권의 자연보전권역에 유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기업환경개선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지금처럼 선별적, 예외적으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재벌의 특혜로 이어질 정책들을 내놓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다. 미군기지 공여지 주변의 산들은 개발업자들이 앞다퉈 사들여 개발 기회만 노리고 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명분으로 비밀스럽게 정책을 준비하고, 재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연녹지의 개발까지 요구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이 과실을 나누어야
지속가능한 삶은 특정 지역, 특정 사회 부문의 성장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개발주의가 최선이며 경제 성장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적 인구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한 21세기 한국에 과연 개발이 유일한 성장 동력일까? 개발에 따른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 진정으로 삶의 질을 끌어올려줄까? 무분별한 개발, 도시화, 산업화로 인한 피해와 비용은 누가 짊어지는 것일까? 전국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산업단지들이 있는데도,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생존의 기로에 있는 삶의 터들이 있는데도, 집중에 따른 비용을 시민 혈세로 보충하는 악순환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으로만 집중시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 지방 도시들은 낙후와 침체로 고통을 겪고 있다. 노후화된 산업밀집지역을 리사이클링하는 일도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고, 수도권과 지방이 ‘한강의 기적’의 과실을 나누는 것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의 하나일 수 있다. 치우침이 사회에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뿌린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길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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