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콜롬비아 대선에서, 하버드를 졸업한 친미 보수 성향의 우리베 현직 대통령이 당선되어 헌정사 114년 만에 연임에 성공하였다. 우리베 대통령은 최근의 경제성장(2005년도에 5.3% 성장)으로 국민 신뢰를 얻었고 지난 4년 동안 추진한 민주적 치안유지정책을 통해 국내정세를 상당히 안정시킨 점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선거 때마다 난무하던 폭력도 반정부게릴라와 정부군과의 충돌로 반군 12명이 피살된 사건을 제외하고 이번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난 3월 총선에서도 연립여당이 상·하원에서 절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었고, 이번 대선에서도 우리베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함으로써 콜롬비아는 향후 4년간 안정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폭력과 테러의 기원

오늘날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가 민주적 헌정질서에 따라 정치적 안정을 보이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콜롬비아에는 오랜 기간 동안 내전이 진행되고 있다. 심한 경우 한 해에 약 3,000명 가까이 납치된 적도 있었고 수도인 보고타를 비롯한 국가 전역에서 폭탄 테러와 소규모 총격전이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런 비극적 현실을 바탕으로 ‘납치일기’라는 소설을 집필해 콜롬비아의 현실을 전 세계에 고발한 바 있다.

오늘날 내전의 주된 당사자는 정부와 좌익 반군이다. 여기 더하여 지방 토호들이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구성한 민병대와 남미 최대의 마약 생산자로서 막강한 자금력과 무력을 가지고 있는 마약조직 등이 서로 얽혀 있다.

이들 네 집단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독립성을 가지고 활동해왔고 필요에 따라 합종연횡을 거듭해왔다. 게릴라 소탕이 필요한 정부군은 한때 민병대를 이용했지만, 날이 갈수록 민병대의 폐해가 심해지자 최근에 우여곡절 끝에 거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마약조직과 좌익 반군 게릴라도 현재는 서로 공생하지만 한때 지역의 이권을 놓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경험도 있다. 이렇게 여러 집단의 복잡한 갈등구도가 시사하듯이 폭력은 20세기 콜롬비아를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로 그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콜롬비아 내전은 집단간의 뿌리깊은 역사적 갈등과 좌우익의 이데올로기적 갈등, 그리고 사회전반에 만연한 빈부격차와 불평등, 가난 등을 배경으로 시작하였다.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지속된 ‘천일 전쟁’으로 약 10만 명이 사망하였고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보수파와 자유파간의 내전(보고타소)으로 약 20만 명이 사망한 바 있다. 내전으로 인해 200만~3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여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폭력의 역사를 통해 콜롬비아에서는 무력이 목적을 달성하고 상대방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질적인 집단 간에 타협과 중용이 불가능하고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는 민주정부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정권을 잡은 세력이 부패와 무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또한 권력을 이용해 정적을 탄압하는 등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마약문제의 심각성

이러한 상황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건 마약(코카인)이다. 특히, 콜롬비아 혁명군(FARC)이나 민족해방군(ELN) 등 좌파 게릴라는 과거부터 마약조직과 연계하여 자금을 지원받은 적이 있지만 이제는 마약조직의 활동을 통제하게 될 만큼 성장하였다.

원래 코카는 안데스에서 고산병을 이기기 위해 자연스럽게 복용하던 민간 약초이며, 콜라의 원료로도 쓰인다. 코카 잎사귀를 찌고 페이스트를 만든 후 정제과정을 거치면 매우 강력한 마약인 코카인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따라서 코카와 중독성이 강한 코카인은 엄밀히 다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코카의 생산은 주로 페루와 볼리비아의 농민이, 코카인 정제와 수출은 콜롬비아의 마약조직이 담당하는 국제 분업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정부의 마약조직 소탕작전이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되자, FARC는 쇠락해진 마약조직을 접수하였다. 즉, 게릴라들이 코카인의 제조와 유통까지 접수하게 되자 지금까지 페루나 볼리비아에서 수입해왔던 코카를 자신들의 활동근거지인 콜롬비아의 안데스고지에서 재배하기 시작하여, 원료에서 유통까지 전 공정을 통합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의 연도별 코카인 생산 통계를 보면 페루와 볼리비아의 코카재배가 줄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콜롬비아에서의 생산은 급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공중방제와 대체작물 장려사업을 비롯한 강력한 마약통제정책이 결실을 거두면서 코카재배는 2001년부터, 코카인생산은 2000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성공을 속단하기는 이르다. 마약의 경우 수요와 공급, 그리고 다른 변수에 따라 과거에도 생산이 감소하다가 늘어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사회적 폭력도 감소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리던 폭력이 올 대선에는 지난 2002년 선거에 비해 81% 감소했다.

평화와 안정으로 가는 길

한때 FARC와 마약조직들은 정부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맹위를 떨친 바 있다. FARC는 관할 지역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모든 마약에 대해 20%의 세금을 징수하였고 이 돈으로 스팅어 지대공미사일, 박격포, 중화기, 야간투시경 등의 장비를 구입하여 정부군을 위협하였다.

이전 파스트라나 정부 때부터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FARC와 마약조직을 동시에 제압하기 위해서 군경합동특수부대를 창설하는 등 다양한 군사전략적 수단을 동원했다. 그 뒤를 이어 민주적 안보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취임한 우리베는 지난 4년간 전국 주요 지역에 병력을 25%나 증원시켜 마약과 폭력일소에 나섰다.

미국은 마약거래 차단과 정치안정을 위한 콜롬비아 플랜에 따라 2000년 이후 40억 달러를 콜롬비아에 원조했다. 콜롬비아의 국방예산도 두 배 증액되었고, 덕분에 미국의 대규모 원조가 콜롬비아의 갈등과 폭력을 증가시킨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효과가 있었는지 미국과 콜롬비아의 적극적인 마약 및 좌익반군단체 소탕작전에 위기를 느낀 FARC와 ELN이 정부와 평화협상을 시작했고 2002년 이후 게릴라 3만 명을 무장해제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비록 게릴라들이 평화협상 중에도 지속적으로 테러를 감행하고 있지만 그 빈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최근 FARC은 무기 압수, 포로 증가, 추종세력 감소, 국민의 지지 약화, 영토 감소 등으로 혁명적 좌파 게릴라로서의 존재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FARC의 군사활동은 국지전이며, 지리적으로 산재해 있고, 결정적으로 제공권이 없다. 구성원들의 질과 사기가 저하되어 있어, 전투단위 상호간 협조체제를 구축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대규모 전쟁 보급기지가 없기 때문에 이미 제대로 된 전략을 구사하는 군사조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 있다. 도시에서 자행된 테러는 오히려 정부의 정통성을 강화시켜주었고 게릴라의 조직정보를 누설시켜 도시조직이 와해되는 결과만을 나았다.

많은 요원들이 조직에서 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FARC는 돈과 마약을 동원해 구성원들을 묶어두기에 급급한 인상이다. 만약 정부의 대 게릴라 소탕정책이 성공한다면 이는 정치안정화는 물론 마약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넘어야할 산은 많다. 계층별, 지역별로 파편화된 사회구성원을 어떻게 하나로 봉합할 것인가의 문제, 정부의 통치가 수십 년 동안 미치지 못했던 농촌 산악지역의 발전 문제, 마약재배 농민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체작물의 지속가능성 여부 등이 정부가 앞으로 풀어야할 문제이다.

한반도의 약 5배의 면적에 3,800만의 인구, 남미대륙의 서북단에 위치한 콜롬비아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질 좋은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이 많기로 유명한 국가이다. 에메랄드 생산 세계 1위를 자랑하며 원유도 수출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호위함 1척과 육군 1개 보병대대를 파견하여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콜롬비아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매우 뛰어난 문화민족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표준적인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콜롬비아는 오늘의 피폐된 현실보다는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앞에서 살펴본 최근의 긍정적인 변화가 콜롬비아를 마약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사회적 통합과 경제 발전, 그리고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지는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다.
곽재성 경희대학교국제대학원 교수
2006/11/01 00:00 2006/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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