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필리핀에서는 여성, 시민운동가 출신의 아로요 대통령이 선출되어 약간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현재 부패한 자본과의 부정한 거래가 드러나고 있으며 그의 재임기간에 농민, 노동자, 인권활동가, 변호사, 성직자, 기자 등 753명이 살해되었고 184명이 실종되었다. 군을 중심으로 한 내각이 이같은 정치적 살인에 침묵하며 방관하자 민중들이 직접 나서 아로요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아로요 정권은 민중들의 항쟁을 비상계엄령으로 잠재우며 민중을 대변하는 정치지도자들을 감금하거나 이들의 정치활동을 중단시켰다. 아로요 정권에 저항하는 활동가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 자유롭게 행동할 수조차 없다.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탄압이 저질러지고 있는데도 현 정권이 지탱되는 것은 미국의 부시 정권 덕분이다. 부시 정권이 9·11 테러 이후 소위 ‘테러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면서 필리핀에 460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특히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목 하에 3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아로요 정권을 묵인, 방조하고 있다.

외세에 저항해온 4세기 역사

필리핀은 아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7,107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700개 섬에만 사람이 살아간다. 인구는 8,354만 명. 이러한 지리적인 조건으로 인해 400년 전 스페인 식민지를 시작으로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2차 대전 후 비로소 독립되었다. 오랜 세월 필리핀 민중들은 외세의 식민지 침탈에 저항하는 역사를 일궈와 아시아의 저항과 독립 투쟁의 상징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경제적인 성장을 멈춘 필리핀은 1980년대부터는 외채를 도입하여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을 받고 극심한 빈부 격차와 노동유연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은 800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해외에서 3D 업종에 종사하며 외화를 벌어들이지만 많은 민중들이 극빈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필리핀은 먼저 미국의 경제식민지로 편입되었고 1991년 미군반대 투쟁으로 물러갔던 미군들이 지금은 필리핀 전국에 재배치됨으로써 초현대 미사일방어체계(MD)의 기지가 되어 있다.

자본의 수탈, 정치적 탄압에 스러져가는 노동자 농민들



필리핀의 하시엔다 루시다 지역은 농업노동자들이 30년 간 일해 온 사탕수수농장(농장 지주는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었다. 그 곳에서 땅을 지키려는 농업노동자 20여 명에 대한 참혹한 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2004년 11월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APWSL)가 이 지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농민들은 일방적인 개발정책에 맞서 땅을 지키려는 파업집회를 열고 있었다. APWSL 한국위위원회는 2005년 8월까지 마닐라에서 국제노동자연대(ISA)가 주관한 항의 행동을 함께 했다.

장기간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계적인 다국적기업 네슬레커피 필리핀공장의 카포트 포츠나 노조위원장을 방문하여 격려와 지지를 전하고 돌아왔는데, 방문단이 돌아온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위원장의 피살 소식을 들었다. 더 놀랐던 것은 네슬레커피의 카릭 노마스 전 위원장도 같은 방법으로 2002년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필리핀에서는 아로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마닐라 중심지에서 연일 열리고 있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는 다국적기업의 대형 매장이 세워져 수입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수십 년 간 농사를 지었던 황금벌판이 수입농산물로 인해 황량한 잡초 밭이 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땅을 지키려는 농민,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노동의 유연화와 제국자본의 세계질서가 만든 경제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필리핀 민중을 위한 아름다운 연대 시작되다

APWSL는 카포트 위원장 살해 이후 필리핀이주노동자들의 모임을 중심으로 사건해결을 촉구하는 행동을 시작했다. 2006년 9월, 한국의 인권, 시민, 사회 분야를 대표하는 활동가들과 필리핀 활동가들은 살해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뒤 필리핀대사를 면담하였다. 대사는 진실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문제를 조사하고 있으니 믿어 달라고 했으나 며칠 지나지 않은 10월 3일 이번에는 알베트 로맨토 대주교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그는 인권운동 주창자로서 하시엔다 루이지타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지지 등으로 인해 이미 몇 년 전부터 암살위협을 받고 있었다.

올해 6월, APWSL은 세계 12개 나라에서 온 3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필리핀을 찾아 진상조사를 하면서 민다나오섬의 델몬트 바나나농장 등을 돌아보았다. ISA 국제조사단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본의 침탈을 위해 민중들을 살인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조사단은 폭력을 극복하고 무고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고 아로요정부가 이에 대해 책임 있게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중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올해 73세의 국회의원 카벨을 병원에 구금하고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5명의 국회의원을 탄압하고 있다. 조사단은 카벨을 면회하고 5명의 국회의원을 만나 격려했고 이후 카벨 구명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독재를 타도한 저력으로 자본의 폭압도



APWSL는 필리핀의 시급한 상황을 한국을 비롯한 세계사회에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아시아교회협의회와 공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해 필리핀 목회자들이 살해당한 사건을 조사하고 가족들을 조문했다. 필리핀의 정치적 살해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기독교계는 종교계,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ISA는 하시엔 다루시다 사건 2주기인 11월 16일을 맞아 국제연대항의행동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12월에는 필리핀의 휴양 도시 세부에서 아시안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국제항의행동의 날을 정해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필리핀은 아시아의 경제적 중심국 중 하나였다. 그 때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박정희, 마르코스, 수하르토의 군사독재 삼총사가 집권해 아시아의 민주화를 가로 막고 민중위에 군림하였다. 군사독재의 부패와 민중들의 투쟁의 결과는 불행하게도 민족자본을 형성하지 못하고 미국의 경제적인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국자본은 석유를 노리고 반인륜적인 전쟁을 이라크에서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필리핀의 활동가들을 살해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WTO 반대투쟁에 나선 농민들을 무시하며, 한국에선 FTA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탄압하고 있다.

아시아는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들을 타도한 경험을 잊지 않고 국제연대의 힘으로 거대한 제국자본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힘차게 일어서야 할 것이다. 국제민중행동을 요구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손을 힘차게 잡아주어야 할 것이다.

* 하시엔다 루시다 지역의 농업노동자들의 정치적 학살 사건 관련 영상물: http://laborasia.net 영상물방
장창원
2006/11/01 00:00 2006/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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