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벌신문의 조폭적 여론만들기
2001/2001년 03월 :
2001/03/01 00:00
언론사 세무조사를 전후로 온 사회가 떠들석하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법적 절차에 따른 세무조사를 두고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나라가 또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물론 1994년 김영삼정권이 세무조사를 ‘언론길들이기용’으로 이용한 사례라든가 2년 전에 실시됐어야 할 세무조사가 뒤늦게 실시된 점, 그리고 최근 대통령의 ‘언론개혁’ 발언 이 후 세무조사나 불공정거래조사가 실시된다는 점 등이 현재의 떠들썩함을 설명해주는 요인이 기는 하다.
그러나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하 조중동) 등 세무조사에 반발하는 몇몇 언론의 역할을 읽을 수 있다. 즉 세 신문은 현재 세무조사에 대해 반발하기 위한 뉴스를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다.
일례로 『시사저널』이 591호에 보도한 여당의 언론 문건도 세 신문은 대서특필했는데 이 는 지난 해 12월 한나라당의 언론 공작문건 보도를 지극히 축소보도했던 것과 매우 대조적 인 보도태도다. 물론 이번 문건파동에 뉴스가치를 부여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언론개혁에 반발하는 자신들의 입장에 교묘히 이용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중앙일 보』는 이번 문건파동을 보도하면서 “99년 중앙일보 탄압 사태 국민 불신 키운 실패작”(2 월 15일자 3면)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1999년 홍석현 사장이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을 당시 “사장님 힘내세요!”라며 비뚤어진 애사심을 보였던 기자들의 행태나 탈법에 대 한 수사를 ‘언론탄압’이라며 여론을 호도했던 보도행태를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자는 개혁을 거부하는 조중동 등 일부 언론의 보도행태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들 세 신문이 ‘떠들면’ 우리사회 가 시끄러운 것. 이것은 바로 우리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조중동이 설정하 는 의제가 곧 우리 사회의 의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국민 바보로 만든 86년 금강산댐 보도
70%라는 수치는 독자 수에 기반한 것이라며 언론개혁의 목소리에 대해 조중동 세 신문은 ‘독자 선택론’으로 맞서고 있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한 칼럼을 통해 “신문개혁의 주 체는 독자다”(1월 16일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독자이고 이들은 세 신문을 개혁의 핵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을 요구하 는 독자와 조중동이 ‘무기’로 내세우는 독자사이에는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일까. 불공정한 신문판매시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신문끊기가 담배끊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회자 될 만큼 우리 사회에서 독자의 신문선택권은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경품제공과 강제투입 등 신문판매시장을 어지럽 히는 행태는 독자들의 자발적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독자들의 권리를 존 중하기는커녕 물량공세로 매수하는 것이며 그야말로 독자를 ‘졸’로 보는 오만함의 반영이 다. 그들이 내세우는 ‘독자 선택론’의 이면에 권력과 금력에 기반한 불공정 판매시장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수치로서의 결과’만을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이들 언론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방침에 대해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이 러한 일련의 태도로 볼 때 ‘소비자 주권론’을 내세워 개혁에 반발하는 언론권력 응징에 언론상품의 소비자인 독자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독자들이 언론개혁에 나서야 하는 보다 궁극적 이유는 잘못된 보도행태에 있다. 잘 못된 언론보도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더 나아가 개개 독자들을 쉽사리 무지의 세계로 몰아넣을 수 있다. 혹자는 언론개혁을 ‘숨쉬기 운동’ 혹은 ‘상식과의 싸 움’이라 표현한다. 바로 잘못된 보도행태로 인해 우리의 정신세계가 말살되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불행하게도 오랜 세월 우리는 언론에 의식을 저당 잡히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못된 보도행태는 바로 언론권력이 독자들의 무지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하 나의 수단이었으며, 그 무지함이 전제돼야만 언론 횡포에 대한 저항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언론권력은 알고 이용해온 것이다. 체제유지를 위해 벌인 전국민 대상 반공교육이 있었기에 우리가 북한사람들을 뿔 달린 사람으로 인식했던 것처럼 마찬가지 맥락인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무지함과 언론의 횡포가 맞물린 경우를 꼽자면 1986년 금강산 댐 건설에 대한 언론보도를 들 수 있다.
당시 언론은 금강산댐의 위협을 알리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독재정권의 음모는 은폐 하고 온 국민을 ‘바보’로 만들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처음으로 대응댐 건설을 주장, 실제 평화의 댐 건설의 명분을 제공했다. 결국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다수 국민들을 선동해 무지의 세계로 몰아넣은 뒤 그들의 주머니돈을 ‘앗아간’ 셈이다. 이 모 두 언론이 망쳐놓은 우리 사회의 흔적이며 독자를 무시한 행태다.
독자의 무지와 언론권력의 횡포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가 산적한데도 해결되지 않고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언론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사회개혁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언론개혁에 나서는 것이 온당하다. 언론은 그 소유구조가 어떠하든 공기(公器)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 몸으로 비유하자면 혈 관인 셈이다. 그런데 혈관이 제 기능을 못하면 몸은 심히 아프다. 마찬가지로 언론이 제 역 할을 못하는 사회는 부패와 비리로 몸살을 앓게 된다. 우리 사회의 몸살이 쉽게 가시지 않 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언론의 굴절과 오욕의 곡필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에는 친일로,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과의 야합으로, 개혁과 진보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반 개혁과 파시즘의 논리로 대응했던 게 바로 한국의 언론권력이다.
그렇다면 곡필이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언론사는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의 성격 을 지니면서 동시에 교육이나 법, 제도 등과 더불어 한 사회의 문화와 정신적 영역을 다루 는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할 수도 세뇌시킬 수도 있 다는 얘기다. 따라서 언론기업이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사주의 권한이 무한대로 발휘된다 거나 특정 가문이 소유를 장악한다면 우리는 그 특정인의 가치관대로 사회를 바라보는 위험 에 접하게 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소유’가 곧 ‘목소리’로 이어지는 풍토에서는 더 욱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일반 기업이 당연하게 받는 세무조사 등 합법적인 절차는 거부하면서 일반 기업의 논리대로 사주의 권한은 무한대로 누리려 한다. 그리고 잘못된 보도행태에 대 한 비판이 일면 언론의 특수성을 운운하며 ‘그들만의’ 언론자유를 강변하곤 한다.
결국 한국 언론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력을 가진 언론재벌의 얼굴을 갖고 있으며 재벌기업 일반이 갖는 전근대적 족벌경영과 그들의 권력남용 그리고 잘못된 보도행태로 인 한 여론호도로 요약된다. 전자는 법과 제도의 개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후자는 편집권 의 실질적 독립과 편파왜곡이 아닌 진실보도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개혁과제를 시민사회가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독자들의 주체 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독자들이여! 언제까지 물량공세에 매수되고 잘못된 보도행태에 의식을 저당잡히는 현실을 두고만 볼 것인가.
그러나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하 조중동) 등 세무조사에 반발하는 몇몇 언론의 역할을 읽을 수 있다. 즉 세 신문은 현재 세무조사에 대해 반발하기 위한 뉴스를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다.
일례로 『시사저널』이 591호에 보도한 여당의 언론 문건도 세 신문은 대서특필했는데 이 는 지난 해 12월 한나라당의 언론 공작문건 보도를 지극히 축소보도했던 것과 매우 대조적 인 보도태도다. 물론 이번 문건파동에 뉴스가치를 부여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언론개혁에 반발하는 자신들의 입장에 교묘히 이용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중앙일 보』는 이번 문건파동을 보도하면서 “99년 중앙일보 탄압 사태 국민 불신 키운 실패작”(2 월 15일자 3면)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1999년 홍석현 사장이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을 당시 “사장님 힘내세요!”라며 비뚤어진 애사심을 보였던 기자들의 행태나 탈법에 대 한 수사를 ‘언론탄압’이라며 여론을 호도했던 보도행태를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자는 개혁을 거부하는 조중동 등 일부 언론의 보도행태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들 세 신문이 ‘떠들면’ 우리사회 가 시끄러운 것. 이것은 바로 우리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조중동이 설정하 는 의제가 곧 우리 사회의 의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국민 바보로 만든 86년 금강산댐 보도
70%라는 수치는 독자 수에 기반한 것이라며 언론개혁의 목소리에 대해 조중동 세 신문은 ‘독자 선택론’으로 맞서고 있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한 칼럼을 통해 “신문개혁의 주 체는 독자다”(1월 16일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독자이고 이들은 세 신문을 개혁의 핵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을 요구하 는 독자와 조중동이 ‘무기’로 내세우는 독자사이에는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일까. 불공정한 신문판매시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신문끊기가 담배끊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회자 될 만큼 우리 사회에서 독자의 신문선택권은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경품제공과 강제투입 등 신문판매시장을 어지럽 히는 행태는 독자들의 자발적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독자들의 권리를 존 중하기는커녕 물량공세로 매수하는 것이며 그야말로 독자를 ‘졸’로 보는 오만함의 반영이 다. 그들이 내세우는 ‘독자 선택론’의 이면에 권력과 금력에 기반한 불공정 판매시장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수치로서의 결과’만을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이들 언론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방침에 대해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이 러한 일련의 태도로 볼 때 ‘소비자 주권론’을 내세워 개혁에 반발하는 언론권력 응징에 언론상품의 소비자인 독자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독자들이 언론개혁에 나서야 하는 보다 궁극적 이유는 잘못된 보도행태에 있다. 잘 못된 언론보도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더 나아가 개개 독자들을 쉽사리 무지의 세계로 몰아넣을 수 있다. 혹자는 언론개혁을 ‘숨쉬기 운동’ 혹은 ‘상식과의 싸 움’이라 표현한다. 바로 잘못된 보도행태로 인해 우리의 정신세계가 말살되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불행하게도 오랜 세월 우리는 언론에 의식을 저당 잡히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못된 보도행태는 바로 언론권력이 독자들의 무지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하 나의 수단이었으며, 그 무지함이 전제돼야만 언론 횡포에 대한 저항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언론권력은 알고 이용해온 것이다. 체제유지를 위해 벌인 전국민 대상 반공교육이 있었기에 우리가 북한사람들을 뿔 달린 사람으로 인식했던 것처럼 마찬가지 맥락인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무지함과 언론의 횡포가 맞물린 경우를 꼽자면 1986년 금강산 댐 건설에 대한 언론보도를 들 수 있다.
당시 언론은 금강산댐의 위협을 알리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독재정권의 음모는 은폐 하고 온 국민을 ‘바보’로 만들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처음으로 대응댐 건설을 주장, 실제 평화의 댐 건설의 명분을 제공했다. 결국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다수 국민들을 선동해 무지의 세계로 몰아넣은 뒤 그들의 주머니돈을 ‘앗아간’ 셈이다. 이 모 두 언론이 망쳐놓은 우리 사회의 흔적이며 독자를 무시한 행태다.
독자의 무지와 언론권력의 횡포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가 산적한데도 해결되지 않고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언론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사회개혁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언론개혁에 나서는 것이 온당하다. 언론은 그 소유구조가 어떠하든 공기(公器)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 몸으로 비유하자면 혈 관인 셈이다. 그런데 혈관이 제 기능을 못하면 몸은 심히 아프다. 마찬가지로 언론이 제 역 할을 못하는 사회는 부패와 비리로 몸살을 앓게 된다. 우리 사회의 몸살이 쉽게 가시지 않 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언론의 굴절과 오욕의 곡필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에는 친일로,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과의 야합으로, 개혁과 진보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반 개혁과 파시즘의 논리로 대응했던 게 바로 한국의 언론권력이다.
그렇다면 곡필이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언론사는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의 성격 을 지니면서 동시에 교육이나 법, 제도 등과 더불어 한 사회의 문화와 정신적 영역을 다루 는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할 수도 세뇌시킬 수도 있 다는 얘기다. 따라서 언론기업이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사주의 권한이 무한대로 발휘된다 거나 특정 가문이 소유를 장악한다면 우리는 그 특정인의 가치관대로 사회를 바라보는 위험 에 접하게 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소유’가 곧 ‘목소리’로 이어지는 풍토에서는 더 욱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일반 기업이 당연하게 받는 세무조사 등 합법적인 절차는 거부하면서 일반 기업의 논리대로 사주의 권한은 무한대로 누리려 한다. 그리고 잘못된 보도행태에 대 한 비판이 일면 언론의 특수성을 운운하며 ‘그들만의’ 언론자유를 강변하곤 한다.
결국 한국 언론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력을 가진 언론재벌의 얼굴을 갖고 있으며 재벌기업 일반이 갖는 전근대적 족벌경영과 그들의 권력남용 그리고 잘못된 보도행태로 인 한 여론호도로 요약된다. 전자는 법과 제도의 개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후자는 편집권 의 실질적 독립과 편파왜곡이 아닌 진실보도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개혁과제를 시민사회가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독자들의 주체 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독자들이여! 언제까지 물량공세에 매수되고 잘못된 보도행태에 의식을 저당잡히는 현실을 두고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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