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일도 많고, 누군가에게 괜한 일로 신경질을 부릴 때도 있다. 나이가 좀 들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신경통이 찾아오기도 하고, 불운이 겹치면 교통사고로 신경이 마비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마음의 상처가 깊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미련 곰탱이처럼 신경이 둔한 탓에 사랑을 놓치기도 하고, 신경이 예민한 애인의 심기를 건드려 큰 코를 다치기도 한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세상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것이다.

신경의 등장과 역사

영어로 ‘nerve’, 독일어로 ’Nerv’, ‘프랑스어로’nerf'라고 불리는 ‘신경(神經)’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형성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서양 의학의 해부학 용어를 번역하기 시작한 18세기 말까지 그러한 개념이 형성되지 못했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신경이라는 용어는 1774년 일본의 난학자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1733~1817)가 서양의 해부학 번역서를 펴내면서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4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쿨무스(J. A. Kulmus, 1687~1745)의 해부도(解剖圖) 「타펠 아나토미(Tafel Anatomie)」를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이 책에서 그는 네덜란드 어 ‘Zenuw’의 번역어로 ‘신경’이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었다. 스키타 겐파쿠는 신기(神氣)에서 신(神)자를 따오고, 경맥(經脈)에서 경(經)자를 따서 신경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신경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시기를 전후로 수근(髓筋)이나 세이누(世奴, Zenuw의 일본어 음역)라는 용어가 일시적으로 함께 사용되기도 했다.

한편 동양의학의 기본개념이 형성되었던 중국에서는 경맥((經脈), 경락(經絡), 기(氣)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 있었을 뿐, 신경이라는 구체적 개념은 전혀 없었다. 신경통과 비슷한 개념으로 산증(疝症)이나 기병(氣病) 같은 용어들이 쓰였지만, 해부·생리학적으로 신경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경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명말청초 시기 중국에서 활약한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湯若望, 1591~1666) 등에 의해 바야흐로 중국에 전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15년에 발행된 로버트 모리슨(馬禮遜, 1782~1834)의 「영화자전(英華字典)」 1권에서는 기(氣)를 ‘nervous fluid’라고 번역했으며, 1851년 영국의사 벤자민 홉슨(合信, Hobson)이 서양 해부학 책을 중국어로 번역한 「전체신론(全體新論)」에는 신경을 뇌기근(腦氣筋)이라 번역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뇌기근이라는 번역어는 계속 살아남지 못하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일본에서 형성된 신경이라는 번역어로 통합되고 만다. 1879년 일본에서 발간된 영어·중국어·일본어 대역사전인 「영화화역자전(英華和譯字典)」에 ‘nerve’의 번역어로 ‘신경(神經)’이 등재된 사실을 통하여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를 통합하고 있는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신경의 사라진 조선어 ‘힘줄’

우리나라에서 신경이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다.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서국의(西國醫)」, 안정복(1712~1792)의 「잡동산이(雜同散異)」 도서편 「인신신기총설(人身神氣總說)」, 최한기(1803~1875)의 「명남루문집」 권1 「신기천험(身機踐驗)」등에서 서양의학을 소개하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신경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조선에 도입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조선에서 ‘신경’이라는 근대 번역어를 사용하기에 앞서 ‘힘줄’이라는 번역어가 먼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리델 주교가 1880년에 편찬한 「한불자뎐(韓佛字典)」에서 ‘힘줄’을 ‘nerf'로 번역했다. 리델 주교의 번역은 선교사 언더우드가 1890년에 편찬한 「韓英字典(한영ㅈ뎐)」에도 영향을 끼쳐 ‘nerve’의 번역어로 ‘힘줄’이 등장한다. 이러한 영향은 1901년 알레베크(Aleveque)가 한국어 발음을 프랑스어 맞춤법으로 펴낸 사전인 「법한ㅈ뎐(法韓字典)」까지 이어져 ‘Nerf’를 ‘힘줄’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어 번역어로서 힘줄은 신경이라는 일본식 번역어에 밀려 오래 사용되지 못했다.

신경이 기록된 국내 첫 문헌, 한성순보

그렇다면 ‘신경’이라는 일본제 번역어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국내의 문헌은 무엇일까? 필자가 찾아본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884년 6월 23일자로 발간된 <한성순보>25호에 실려 있는 일본 군의관 해뢰민행(海瀨敏行)이 마취제를 사용하다가 실수로 김팽경이라는 여자 아이를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이 기사에서 의료사고의 원인을 “그(김팽경)의 천부(天賦)가 약하고 신경(神經)이 과민한데다 약도 제대로 적당하게 맞추지 못한 소치였다.”고 밝힌 대목에서 ‘신경’이라는 번역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처음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신경이라는 새로운 번역어는 이후 곶감보다도 더 무서웠던 순사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신경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동학농민봉기와 청일전쟁의 중간인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행정경찰장정」이라는 관제개혁안을 내놓았다. 이어서 8월 8일자 관보에는 「순검채용규칙」이 발표되었다. 이 규칙 제3조의 5항에는 ‘정신이 완전한 자는 즉 정신병, 신경병, 울우(우울증)’ 등의 병이 없는 사람이라며 순사의 자격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이후 1896년 12월 1일자 <독립신문>의 1면 논설에도 “조선 의원은 첫째 사람이 어떻게 생긴 것도 모르는 것이 의원 공부할 때에 죽은 사람을 해부 하나 하여 본 일이 없은즉 어찌 각색 혈관과 신경과 오장육부가 어떻게 놓였으며 그것들이 무슨 직무를 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 후 신경은 계몽적 성격의 잡지였던 <서우>, <대한협회보>,<서북학회월보>, <기호흥학회월보> 등에 의학, 위생학, 생리학을 소개하면서 자주 등장하게 된다. 신경의 쓰임새는 더욱 확대되어 황실재산정리국 주사 임광우는 1907년 2월 15일 ‘신경쇠약’이라는 진단명을 받아 병가를 청원하였다. 그리고 하세가와(長谷川) 조선 주차군(駐箚軍) 사령관 겸 임시 통감 대리는 하야시(林) 외무경에게 보낸 1907년 2월 25일자 전보에서 조선과 청나라가 간도문제와 관련하여 ‘신경과민’ 상태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경이라는 새로운 번역어는 서양의학의 소개와 근대경찰제도의 도입,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를 통하여 우리의 일상에 뿌리를 내려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2007/01/01 00:00 2007/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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