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유통기한은 외계인이 신기한 존재일 때까지다. 어느 시절이든 많은 외계인이 살았다. 외계인의 이질적 생각과 이질적 행동이 위험시될 때, 사회는 ‘이질성’을 ‘수용’하는 대신 외계인의 ‘신기함’을 ‘소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질적 존재는 위험하나, 신기한 존재는 경직된 시대가 유연함을 가장하기에 유용했다. 때로, 외계인은 신기한 존재가 되길 스스로 선택했다. 표준률이 권력으로 작동하는 세상에서, ‘사람답지 못한’ 외계인은 차라리 신기한 무엇이 되는 게 속편했다. 신기함은 외계인의 반역성을 탈색시켜 구경거리로 만들기도 했으나, 외계인이 반역성을 숨기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셨다. 오래된 미국 영화에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했던’ 외계인의 별명을 가진 할아버지였다. 외계인은 검지손가락으로 아이들의 검지손가락과 만났지만, 손가락이 불에 녹아버린 할아버지는 손마디로 아이들의 검지손가락과 만났다. 자기별에서 ‘꽃미남’이었을지 모를 청년이 지구별로 오면서 쭈글쭈글 외계인이 됐지만, 젊어서 지구별 ‘꽃미남’이었던 할아버지는 자동차 사고로 외계인이 됐다. 사고 전 독재권력에 반역하는 외계적 사고를 가졌던 할아버지는, 사고 후 온 몸의 살이 엉겨 붙은 자신에게 스스로 외계인 딱지를 붙였다. 신기한 존재가 되는 것,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할아버지의 투쟁 방식이었다. 평생을 외계인으로 살다간 할아버지는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우리나라 민간 의료보험의 기틀을 잡았고, 간질·한센병 환자들을 제 몸처럼 돌봤으며, 대안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참되게 노는 법’을 가르쳤다. 할아버지를 볼 때면, 사지육신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겁 없이 황홀했고, 멀쩡한 사지육신을 하는 일 없이 놀리는 게 적잖이 민망했다.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은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 할아버지와의 친분을 이유로 할아버지께 바치는 조사를 써달라는 것이었고, 할아버지의 삶을 논평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할아버지 사망 소식을 기자들을 통해 알게 된 게 부끄러웠고, 할아버지가 심근경색을 앓고 계셨다는 걸 몰라 부끄러웠으며, 무엇보다 일 년 가까이 할아버지께 안부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했던 사실이 부끄러웠다. 죽은 자를 논평하는 일이 산 자의 몫이라지만, 산 자의 부끄러움을 죽은 자는 알 터였다. 논평은 부끄러운 자의 몫이 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시신을 안치한 영안실은 조문객들로 빽빽했다. 일 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단벌 양복을 입고 간 나는 신발도 벗지 못했다. 조문객 한 명 찾지 않는 극빈의 장례식을 수차례 봐 온 내게,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은 아쉬울 것 없이 넉넉했다. 역설적이게도, 소멸의 정점인 죽음이 생산적일 때가 있다. 죽은 이가 ‘한 세상’ 산 인물일수록, 화환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육개장은 솥을 바꿔가며 끓는다. 기자들은 하루의 기사거리를 얻고, 몇몇은 일면식만으로도 추억을 팔아 죽음을 논평한다. 생산적인 죽음은 남은 자의 자기 위무를 위해서도 유익하다.

외계인은 신기함이 사라지기 전, 자기별로 돌아감으로써 신화로 남았다. 자전거 타고, 하늘을 날아, 교교한 달빛 한가운데서, 제자리 비행하며, 잊을 수 없는 ‘신기한’ 한 컷 영상을 남기는 것. ‘신기했던’ 외계인이 지구별에 남기는 최상의 복수였다. 참으로 생산적인 귀한이었다.



※ 2006년 12월 13일, 온 몸에 화상을 입어 생활이 불편함에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셨던, ET 할아버지라 불리시던 채규철 두밀리자연학교 전 교장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참여사회」 올림.

달 참여연대 회원
2007/01/01 00:00 2007/01/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854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