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잘 한 일은 아무래도 시민단체 활동인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활동은 제대로 하지 않지만 자원활동가라고 해주면 으레 힘이 납니다……. 차세대 진보네트워크로서 발전시킬 ‘날개인터네셔널’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06년 11월30일 ‘고해’ 중에서) 이충도 회원의 블로그에 있는 글의 일부분이다.

참여연대 홍보분야 자원활동가인 이충도 회원(35세)을 인터뷰하기 전, 그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엄청난 분량의 글들은 마치 신춘문예를 목표로 습작 하는 문학청년의 열정이 넘쳐있었기 때문이다. 일기 쓰듯, 명상 하듯, 기도 하듯 내밀하게 쏟아놓은 글을 읽으며 선동적인 대중의 선善에 대한 고민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참여연대 부근의 작은 찻집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맑고 단아했다. 도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정장차림이 더욱 단정하게 보였다. 새해 첫 달 인터뷰 대상이라 다소 긴장이 되었지만 소년 같은 미소로 자리를 부드럽게 했다.

회색빛 명함을 건넸다. e-motion 전략기획그룹 부장. ‘인간의 감성을 목표로 한 역동적인 e비지니스 사업’이 기업 이념이라 한다.

“기업에 서비스를 하는 곳이 있고, 개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지요. 우리 회사는 후자인 셈이고, 현재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죠. 사원이 100여 명 넘습니다. 부장, 이사라는 직함이 저에겐 무척 부담스럽지만 일 자체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편인데 친구의 권유로 작년 1월에 회원이 되었지요. 몇 번 망설였는데 간사들의 참 편하게 맞아주었어요. 조직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전혀 없더군요.”

또박또박 나직한 목소리로 단번에 상대의 의중을 꿰뚫는 듯한 화법이다.

다수결과 민주주의는 달라

“온라인 미디어는 너무 빨리 진보하지요. 트랜드를 준비하는 동안 새로운 트랜드가 나오고, 그러다보니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인터넷상에 막 떠다니지요. 흔히 웹이 활성화되며 민주주의가 발전될 것이라고 하지만 대중에겐 자정 능력이 없어요. 검증되지 않는 민주주의로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어요?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이 문제이죠. 전 대중의 선을 믿지 않아요.”

냉정하리만큼 정확하게 개인의 속성을 집어낸다. 오랜만에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온 기분이다. 전공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경영학이었습니다. 요즘 경영학에선 윤리와 철학이 배제되어있어요. 이윤 추구가 최고의 목표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만이 기업이 사는 길이라고 몰아붙이니 노동자들은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지요. 최소의 비용이란 결국 노동 비용을 줄이겠다는 뜻인데…….”

안타까움이 절절히 배인 음성에 눈빛마저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가정에 노동조합이 있어요? 회사는 가족적 분위기를 강조하며 은연 중 노조의 역할을 은폐합니다. 개인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불이익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 하고, 개인 또한 가족인데 이쯤은 내가 참아야지 하는 식으로 참아냅니다. 그러면서도 어디든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이 있다면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면서 근무를 하지요. 가족이란 이름도 허명에 불과하지요.”

서늘한 바람 한 줌이 가슴을 훑고 간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관념들 속에 그런 함정이 있다는 걸 깨닫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자성과 성찰보다는 능력과 속도만을 요구하는 이 시대, 천칭 위에 올려진 이성과 감성이 분배가 이토록 균등할 수가.

“시스템이 진보한다는 말은 편해진다는 뜻이고, 그것은 관리를 당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NEIS 문제를 놓고 얼마나 갑론을박 했어요. 권력이 데이터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 있죠. 국민들의 인권을 생각하고 존중하기 보단 권력을 생산성 있게 조립하고 분해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죠. 시스템이 발달할수록 개인의 정보는 노출되고 관리 당할 수밖에 없지요. 시스템의 발달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아요. 답글은 이미 사라지고 댓글만 무성한 인터넷이잖아요. 댓글 시스템은 불과 2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답글이란 주제를 잡고 구성을 통해 퇴고를 한 글, 즉 생각을 담은 글인데, 댓글이란 퇴고가 없는 글, 즉 성찰할 수 없는 글이지요. 인터넷 상에 무수히 떠다니는 댓글을 보고 미디어에서는 네티즌들의 의견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엔트로피의 증가일 뿐이죠.”

그렇다. 정보의 홍수란 쓰레기의 증가라는 다른 이름이다. ‘분리수거’용 시스템은 요원할까.

홍보분야 자원활동가로서 참여연대에 달 ‘날개’에 대하여 밑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자,

“<날개인터네셔널>프로젝트는 쉽게 말하여 비판과 동의의 양 날개를 단 공론장을 만들자는 것이죠. 우리 참여연대는 지난 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특히 외부로부터 그야말로 검증되지 않은 자료로 흠집을 낼 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이 뭐가 있었어요? 우리 스스로도 자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 시간에 결과물을 받아볼 수는 어려울 겁니다. 특히 비판을 참아내는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쉽지 않겠죠. 그렇다고 동의의 날개만 달면 바로 추락할 게고, 건강한 공론장이 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해야죠. 함께 고민합시다.”

날개는 날아다는 게 아니라 공존을 위해 필요한 장치이다. 어깨는 무겁지만 두 손엔 힘이 불끈했다. 새해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볍다.

개인적인 새해의 소망을 묻자 홍조를 띠며 답한다. “결혼해야지요.”

왼손 약지에 낀 실반지 하나가 햇살에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소우주를 담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2007/01/01 00:00 2007/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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