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전화
2007/2007년 02월 :
2007/02/01 00:00
일요일 아침,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형’에 ‘님’자까지 더해 조폭적 호칭으로 부르는 단 한 명의 형님은 사북 광부였다. ‘절대’ 힘깨나 쓸 것 같지 않은 키 작고 마른 형님-의 아버지도 광부였고, 광부의 아들로 살기 싫어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사북을 도망쳤던 형님-의 어머니도 광부였으며, 도시의 쓴맛을 본 후에야 사북으로 돌아와 광부의 아들 됨을 받아들인 형님-의 부인도 광부였다. 광부 형님은 어느덧 딸 둘을 낳았고, 그 만큼 세월이 흘렀다. 광부 아버지는 진폐증에 걸렸고, 광부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광부 부인은 딴 남자와 사북을 떴고, 광부 딸 중 하나는 광부 아버지가 그랬듯 중학교 졸업 후 집을 나갔다. “이 눔아, 언제 올 거야?” 전화기 저편, 형님은 한 잔 한 상태였다.
그때, 난 어쩌자고 사북을 떠올렸을까. 10여 년 전, 난 느닷없이 태백선 기차를 탔다. 강원도 사북을 처음 찾았던 그때, 사북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탄광마을 사북은 짙은 잿빛이었다. 잿빛 사북을 배회하며 여름비를 쫄딱 맞았던 이유란, 참 어이없었다. 사귀던 여자한테 차이고, 정신 못 차리던 맘 위로할 여행지로 택한 곳이 사북이었다. 실연을 치유하고자 생각해낸 도피처가 사북항쟁의 치열한 현장, 생사를 넘나드는 노동의 막장이었다니, 나의 멜랑콜리도 참 특이했다. 탄재 걷히는 잿빛 사북에서, 탄재 털어낸 잿빛 광부들은, 탄재 밀어낸 맑은 하늘에 놀라 쫓겨나기 직전이었다. 에너지시장에서 퇴출된 연탄의 돌이킬 수 없는 잿빛 운명은, 노동시장에서 퇴출될 광부들의 잿빛 앞날과 압도적으로 공명했고, 어설픈 사랑에 기진맥진했던 내 잿빛 감상주의 기질마저 기묘하게 들쑤셨다.
그 후, 난 여자한테 차이지 않았어도 사북엘 갔고, 탄광을 다룬 영화가 나오면 빼놓지 않고 봤다. <제르미날>의 뜨거운 파업열기도, <대지의 소금>의 유쾌한 저항도, <브레스트 오프>의 가슴 치는 음악도, <빌리 엘리어트>의 아픈 성장통도, <꽃피는 봄이 오면>의 신산한 인생도, 모두 내 동공 앞에선 사북과 오버랩됐다.
형님을 처음 만난 건 사북을 세 번째 찾았을 때였다. 동원탄좌 폐광 불과 2주 전이던 그때, 형님은 사북을 떠야할지 남아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옛 광부 사택을 갈아엎은 자리엔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들어섰고, 해발 720미터에서 카지노가 내쏘는 강렬한 불빛은 해발 650미터에서 어둠에 잠긴 탄광을 깔아뭉개며, ‘형광등 괴물’처럼 ‘발광’했다. 형님의 담배연기는 짙고 짙었다.
일 년 후, 형님을 만난 곳은 정선직업전문학교였다. 일터를 잃은 형님은 더 이상 광부가 아니었다. 자동차정비를 배우는 형님 얼굴엔 의외로 꽃이 펴 있었다. 형님은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며 벙긋거렸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닭살 문자를 자랑하더니, “앞으론 애인 없이 올 생각도 말라”며 ‘가진 자’로서의 행패를 한껏 부렸다.
다시 일 년 후, 형님의 전화는 태백 장성탄광에서 걸려왔다. 형님은 광부로 돌아가 있었다. 밥을 벌 수 있는 길이 무엇 하나 없었던 형님에게, 남은 건 다시 광부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결혼할 여자’와는 이미 헤어진 뒤였다.
며칠 전 일요일, 형님은 사북에 있었다. 카지노 진입로 제설작업부가 됐다 했다. 지열이 강해 하루에도 땀에 젖은 옷을 세 번 갈아입어야 한다는 장성탄광에서, 진폐 진단까지 받은 형님은 견뎌내지 못했다. 폐광마을에서 카지노마을이 된 사북. 사북의 옛 주인이었던 광부들은 이제, ‘한 판 벌이러’ 사북을 찾는 새 주인들 눈에 행여 쓰레기 한 점 보일까 노심초사하는 청소부로 살아간다.
일요일에도 형님은 내게 그랬다. “애인 데려 올 거 아니면 사북에 오지 마.” ‘애인’이란 종족과는 그닥 친화적이지 못하단 걸 뻔히 알면서, 술 취한 형님은 전화를 끊으며 또 물었다. “근데 왜 안 와?”
그때, 난 어쩌자고 사북을 떠올렸을까. 10여 년 전, 난 느닷없이 태백선 기차를 탔다. 강원도 사북을 처음 찾았던 그때, 사북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탄광마을 사북은 짙은 잿빛이었다. 잿빛 사북을 배회하며 여름비를 쫄딱 맞았던 이유란, 참 어이없었다. 사귀던 여자한테 차이고, 정신 못 차리던 맘 위로할 여행지로 택한 곳이 사북이었다. 실연을 치유하고자 생각해낸 도피처가 사북항쟁의 치열한 현장, 생사를 넘나드는 노동의 막장이었다니, 나의 멜랑콜리도 참 특이했다. 탄재 걷히는 잿빛 사북에서, 탄재 털어낸 잿빛 광부들은, 탄재 밀어낸 맑은 하늘에 놀라 쫓겨나기 직전이었다. 에너지시장에서 퇴출된 연탄의 돌이킬 수 없는 잿빛 운명은, 노동시장에서 퇴출될 광부들의 잿빛 앞날과 압도적으로 공명했고, 어설픈 사랑에 기진맥진했던 내 잿빛 감상주의 기질마저 기묘하게 들쑤셨다.
그 후, 난 여자한테 차이지 않았어도 사북엘 갔고, 탄광을 다룬 영화가 나오면 빼놓지 않고 봤다. <제르미날>의 뜨거운 파업열기도, <대지의 소금>의 유쾌한 저항도, <브레스트 오프>의 가슴 치는 음악도, <빌리 엘리어트>의 아픈 성장통도, <꽃피는 봄이 오면>의 신산한 인생도, 모두 내 동공 앞에선 사북과 오버랩됐다.
형님을 처음 만난 건 사북을 세 번째 찾았을 때였다. 동원탄좌 폐광 불과 2주 전이던 그때, 형님은 사북을 떠야할지 남아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옛 광부 사택을 갈아엎은 자리엔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들어섰고, 해발 720미터에서 카지노가 내쏘는 강렬한 불빛은 해발 650미터에서 어둠에 잠긴 탄광을 깔아뭉개며, ‘형광등 괴물’처럼 ‘발광’했다. 형님의 담배연기는 짙고 짙었다.
일 년 후, 형님을 만난 곳은 정선직업전문학교였다. 일터를 잃은 형님은 더 이상 광부가 아니었다. 자동차정비를 배우는 형님 얼굴엔 의외로 꽃이 펴 있었다. 형님은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며 벙긋거렸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닭살 문자를 자랑하더니, “앞으론 애인 없이 올 생각도 말라”며 ‘가진 자’로서의 행패를 한껏 부렸다.
다시 일 년 후, 형님의 전화는 태백 장성탄광에서 걸려왔다. 형님은 광부로 돌아가 있었다. 밥을 벌 수 있는 길이 무엇 하나 없었던 형님에게, 남은 건 다시 광부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결혼할 여자’와는 이미 헤어진 뒤였다.
며칠 전 일요일, 형님은 사북에 있었다. 카지노 진입로 제설작업부가 됐다 했다. 지열이 강해 하루에도 땀에 젖은 옷을 세 번 갈아입어야 한다는 장성탄광에서, 진폐 진단까지 받은 형님은 견뎌내지 못했다. 폐광마을에서 카지노마을이 된 사북. 사북의 옛 주인이었던 광부들은 이제, ‘한 판 벌이러’ 사북을 찾는 새 주인들 눈에 행여 쓰레기 한 점 보일까 노심초사하는 청소부로 살아간다.
일요일에도 형님은 내게 그랬다. “애인 데려 올 거 아니면 사북에 오지 마.” ‘애인’이란 종족과는 그닥 친화적이지 못하단 걸 뻔히 알면서, 술 취한 형님은 전화를 끊으며 또 물었다. “근데 왜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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