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교 졸업반인 딸과 의견 충돌이 잦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처럼 뜻이 잘 통하고 마음이 맞는 모녀가 어디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지내왔다. 어릴 때부터 다방면에 관심이 있는 아이라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다. 토론 거리를 잡아내면 나름대로 주장이 강해 서로 목소리를 높인다. 가족이 모여 이런 시간을 갖다 보면 아들과 남편은 슬그머니 물러난다. 둘이 앉아 공감하다가 반론을 펴다가 흥분하고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고 있다.

이런 딸이 대견하기보다 이제는 슬금슬금 겁이 난다. 살아가는 게 일정한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보고 들은 것을 이론서 읽듯이 읊조려 놓은 것이 많기 때문일까.

몇 해 전, 참여연대에서 실시했던 최저생계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시장에서 가격비교를 하지 않고 물건을 산다거나, 사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느냐며 타박을 했다. 일일이 살림에 참견을 하는 바람에 혼이 났다. 목소리만 컸지 제대로 실천을 못 하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들킬 때마다 마음이 움찔움찔했다.

최근 불거진 문제는 취업이다. 딸은 시민단체나 소외계층 사람과 직접 부딪치며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청소년 그리고 장애인을 위해 문화 예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획에 관심이 많다. 취업이 일류기업을 지향하거나 경제적인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랬을 것이다. 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일이냐고, 대단한 생각이라고, 마냥 추켜 주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런 일을 정작 내 딸이 하겠다고 나서자 주춤주춤 거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라. 크게 일 할 수 있을 때 가도 늦지 않다는 등, 딸이 처음 사회를 향해 갖는 꿈을 무너뜨리는 말만 되풀이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그 생각을 막을 속셈으로 대학원은 네 능력으로 가라거나, 노후대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서 경제적인 독립을 하라고 재촉했다. 그때마다 자기의 가치관에 회의를 느낀다며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표 내지 않았다.

딸은 적어도 나만은 자기편이 되어줄 줄 알았을 것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평소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으니 자기편은 아니더라도 반대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들이 사회에 소금과 같은 존재인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수적인 관념 탓이다. 그래도 Y대를 나왔으면 일류기업에 취업을 해야 한다거나, 연봉 얼마 이상은 받아야 한다거나, 첫 직장을 잘 잡아야 한다는 등 상투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보수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확실히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은 부모 때문에 딸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아니, 딸 못지않게 나도 휘청거리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의 민망함과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에 대한 회의감을 견뎌내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건만 언제부터였나, 내 안에 똬리를 튼 안락한 삶이 흔들릴까 봐 나는 아직도 겁내고 있다. 반 보수 반 진보인 반푼이가 사는 우리 집부터 바뀌어야 나라도 바뀔 텐데 애면글면 속만 태우고 있다.

정계숙 수필가
2007/02/01 00:00 2007/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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