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과 대통령 사이 심연의 늪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의장.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대통령이란 말을 한 번 낯설게 거리를 두고 불러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더구나 의장이란 말과 나란히 비교하여 불러본다면 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느낌은 더 이상해진다. 대통령이란 글자 그대로 클 대(大), 다스릴 통(統), 거느릴 령(領)의 위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의장이란 물론 사회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대통령과 의장이란 단어는 마치 절대왕정과 민주공화국의 질적 차이만큼이나 어감이 다르다.

소위 대통령제의 원조이자 수출국인 미국의 대통령은 사실상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의장에 가깝다. 흔히 지적하듯이 프레지던트president 의 어원은 프리자이드 preside(회의를 주재하다) 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흔히 미국의 건국을 위대한 실험이라고 칭하는 것은 건국 시조들이 만든 시스템이 유럽의 군주제와는 달리 대통령, 의회, 사법부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역동적 안정의 디자인 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과거 영국의 절대왕정의 압제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로운 국가를 강렬히 희구했기에 가능했다. 물론 오늘날 미국이 현대화되고 지구적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면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대하게 커졌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대부분의 활동은 의회나 사법부의 팽팽한 견제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의장이 대통령이란 괴물로 변해버린 대한민국

하지만 의장이란 개념이 한때 ‘국가 없는 국가’라고까지 불렸던 미국에서 ‘과대성장국가’의 전형인 대한민국으로 수출되면서 대통령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탈바꿈에 일차적으로 기여한 것은 미국의 의장을 사무라이 문화의 필터를 가지고 대통령으로 해석한 일본의 공(?)이 크다. 이 일본의 기괴한 번역이 대한민국에서 적실성을 가졌던 것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체제가 바로 군사주의적이고 일본 파시즘적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란 용어는 미국과 달리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 거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 대통령이란 용어 속에는 제왕적인 스타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지긋지긋했던 왕정의 시대가 가고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했다. 그리고 2002년 대한민국 최초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초보적으로나마 실험되는 민주공화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과거와 달리 정당에 대한 지배나 정보기구 등을 통한 지배를 포기하고 의회 및 사법부의 견제가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과 방식 모색기

하지만 한국에서 대통령에서 의장으로의 이행은 링컨이나 잭슨 미대통령의 쿨한 모습의 재현을 기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달콤한 환상과 달리 매우 고통스럽고 스타일 구겨지는 나날들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미국식 대통령의 권한과 활동방식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은 복잡한 미로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이 미로의 복잡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시민들은 마치 광고가 욕망을 키우듯이 기대치와 욕망을 키운 선거 캠페인 속에서 갈수록 변덕이 심해지고 취향이 세련되어 진다. 이들은 때로는 대통령처럼 강하고 때로는 의장처럼 조화로운 미묘함을 요구한다. 때로는 봉사하는 하인을 원하고 때로는 드라마틱한 배우이고 혹은 심리 클리닉 의사이거나 신부이기를 원한다. 둘째로 이러한 진화하는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대통령이 의장으로 변모해가면서 너무 제약이 많아지고 있다. 더 이상 정보사찰 기구를 동원할 수도 없고 자신 정당조차 계급장을 띄고 토론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식 대통령과 달리 대한민국 대통령은 정치활동이 자유롭지 않아 가장 중요한 권력자원이 발목이 묶여있는 셈이다. 셋째로는 대통령은 갈수록 발목이 묶여가는 반면에, 의회나 사법부는 급속히 강화되어 가고 있다. 한국의 의회는 국정감사권까지 행사하고 사법부는 제왕적이면서 최종결정자로서 신화적 신비감마저 부여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에서 의장으로의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는 현 노무현 대통령은 이 두 가지 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더욱 미로를 현기증나게 만들고 있다. 선거에서 민의의 위임도 받지 못한 한미 FTA를 자의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은 무시무시한 총통의 얼굴을 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도 가지고 있지 못한 국민투표 부의권, 헌법개정제안권 등의 막강한 권한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스스로 권위를 해체시키고 레임덕으로 전락하는 모습은 무기력한 의장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동요는 현 대통령이 아직 민주공화국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기보다는 여전히 구시대의 막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대통령의 의미를 다시 고민할 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대통령에서 의장으로의 변모 실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 수업으로부터 우리가 지혜로운 교훈을 얼마나 얻고 있는가이다. 예를 들어 현재 일각에서 집착하는 중임제, 선거주기 일치등의 파편적인 해법은 문제를 극도로 협소화시킨다. 무릇 다른 차원의 질문에서 다른 차원의 해법이 나오는 법이다. 몇 가지 제도적 대안을 쉽게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대통령이 의장으로 바뀌는 것의 의미와 이를 가능하게 할 전제조건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민주적 의장이면서도 대통령보다 더 강고한 권위를 어떻게 동시에 세울 수 있을 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이는 어떠한 제도도 모래위의 성일뿐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그저 교양이나 정치학 개론의 문제라기보다는 2007년의 핵심 화두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안병진 창원대 국제관계학 교수
2007/03/01 00:00 200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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