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우리 동네에 날아 올 수 없는 이유
백번을 양보해도, 이건 아니다. 충분히 짐작했던 일인데 고개를 쳐들고 실제로 확인하니 참으로 가관이다. 전부터 나는 하늘에 널려있는 전깃줄을 미워했다. 사실 이놈들은 어쩌면 친구보다 가깝고 가족보다 고마운 물건일 수 있다. 비록 매달 전기세를 꼬박꼬박 내지만, 그 몇 천 원으로 빨래와 청소는 물론이고 밥과 요구르트까지 편의와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는가.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어쩌고. 몸의 양식은 물론 머리와 마음의 양식까지 제공하는 전기는 고마운 정도가 아니라 ‘내 인생의 동반자’ 수준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나는 이 동반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선 지저분한 몰골이 마음에 안 든다. 흔한 처마 하나 없이 삐뚜름한 전봇대에 매달려 있는 이들은 비바람 맞고 눈 맞고 요즘에는 황사먼지까지 맞으며 도대체 어느 고리가 약해지고 어디쯤 피복이 벗겨졌는지 알 수 없이 곳곳에 널려 있다. 차라리 아예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면 포기하고 잊어버리기나 할 텐데. 약간 긴 장대를 들고 설치거나 이삿짐 사다리라도 등장하면 톡하니 건드릴 것 같은 어정쩡한 높이에 이토록 난잡하게 뒤엉켜 있는 광경에는 아무리 비위 좋은 나라도 속이 뒤집힌다.

카메라를 손에 든 날은 더하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아무리 움직여 봐도 전깃줄이 없는 화면은 잡기 어렵다. 사진의 배경은 온통 검은 선으로 조각난 상태다. 위급한 상황에 처해, 슈퍼맨이 우릴 구하러 날아온다고 쳐보자. 주소를 알려줄 의사소통부터가 문제겠지만, 그 다음엔 이놈의 전깃줄 때문에 어디 우리 동네에 들어올 수나 있겠냔 말이다. 산만한 전깃줄에 빨간 망토가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게 뻔하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도 비슷할 거다. 나의 취미생활, 상상마저 그물 쳐 버리는 전깃줄이 얄밉다. 이런 반응, 까다롭고 피곤한 나만 그럴까? 오우 노우.

우리 바로 곁에 이토록 수습 곤란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는 전깃줄과 전신주로 인한 사고는 꽤 잦다. 우선 자동차로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는 애교 수준이고, 2004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퇴근길 집 근처 골목을 지나던 한 여성이 전신주에서 떨어진 퓨즈에 얼굴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16m 높이에서 떨어진 쇳조각이 얼굴에 그대로 박혔다. 전신주 변압기 폭발을 막기 위해 과전압이 흘렀을 때 저절로 끊어지도록 한 퓨즈가 연결된 철사까지 모두 끊어지면서 일어난 사고였다. 그녀는 쇳조각들을 빼내느라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후에도 피부이식, 코뼈 재건, 흉터 제거 등 너댓 차례의 수술이 더 예정되어 있었다. 전신주 변압기는 전국에 160만 대가 넘는다고 한다(2004년 당시 추정).

그런가하면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는 전신주 이전을 둘러싼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왜 전신주를 옮겨달라는 것일까. 단순히 미관 때문일까? 아니다. 주로 안전사고 때문이다. 장마철 벼락이 떨어져 집 앞 전신주 변압기에 화재가 일어났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기만 이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편한 전기를 보기에도 흐뭇하게 전달받으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답은 땅속에 묻는 지중화 작업이라고 한다. 다행히 당사자인 한국전력도 일부 지역에서부터 지중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니 반갑고 기쁜 소식이다. 오는 4월부터 서울시내 간선도로변 걷는 길에는 각종 전기통신설비의 신설이 금지된다고 한다. 땅속에 묻거나 인근 건물 내부에 설치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 곳곳이 흐뭇한 광경으로 변하려면 참으로 긴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 이 해답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간 해법으로 거미줄 같은 전깃줄, 통신선, 케이블 등을 정리해 묶는 방법이 있다. 이미 서울 곳곳에서 확인 가능한 이 방법은 2% 만족된다. 하루빨리 서울에서도 까만 전깃줄에 조각나지 않은 온전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

최현주 참여연대 인터넷팀 간사
2007/03/01 00:00 200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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