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돌림감기 인플루엔자, 식민지 조선에 상륙하다(2)
1918년 11월 10일자 <매일신보>에 총독부의원 의관 유마영삼(有馬英三)은 “독감의 병원균이라는 인플루엔자 균에 대하여 저항력은 약하나 전염은 속하고 면역성이 있는 듯하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현대 과학은 독감이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밝혀냈으며, 이 바이러스는 병원성(病原性)에 따라 고(高)병원성 A형, 약(弱)병원성 B형, 비(非)병원성 C형으로 나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A형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만 하더라도 하부유형을 보면 외피 단백질에 따라 H형이 16가지, N형이 9가지 등 144가지 형태가 있으며, 항원변이가 심하여 아직까지 예방백신이나 치료약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H1N1 유형이었으며, 최근 문제가 되었던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H5N1 유형이다.

11일에는 “독감이 들거든 이렇게 조섭하라”는 제목으로 “앓는 이를 딴 방에 거처하게 하고, 다른 사람은 곁에 가지 아니하도록 주의를 할 것이요, 환자가 쓰던 침구와 자리 옷 같은 것은 볕을 쏘여 소독하고. 방도 자주 쓸어 정하게 하고, 가끔 공기를 갈고, 볕을 쏘이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고 권고한 기사가 실렸다. 비록 독감의 원인체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대처법은 지금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날 <매일신보>는 “유행 감기로 인하여 개성은 사망자가 평시의 7배”나 되었다는 비극적인 소식도 전하고 있다.

12일에도 통계자료가 등장한다. 경기도 경무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성에서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268명인데 그 중에서 조선 사람이 119명”이며, “도쿄 시내에서 죽은 사람이 620명”이라는 것이다. 13일에도 독감은 잦아들지 않았으며, “지방에서는 여전하다. 유행 감기가 한창 복거치는 중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더욱이 “진주에서는 도장관 이하 감기 투성”이며, “평양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감기고 고생”하고 있으며, “평북에도 근 2만 명의 환자를 내었고”, “출정군인이 독감에 고생”하고 있으며, 진남포 지방에서는 “이 감기의 원인은 독일에 있던 감기로 독일이 일종 독와사(毒瓦斯, 독가스)를 발명하여” 퍼뜨렸는데, “전쟁지에서 그 감기에 걸린 자가 만주로부터 조선을 거쳐 들어와서 그 사람이 병독을 전파하였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었다.

11월 14일이 되자 “악성 감기의 창궐로 인하여 (……) 지방 우체국 중 국원이 전멸되어 다른 곳에서 응원자를 파켠케 하는 곳은 평남 개천군 우리, 충암 아산 우편국, 인천 전화계, 김천 우편국으로 거의 전멸이 된 곳은 풍산, 갑산, 박천, 용암포, 공주, 삼수의 각 우편국”이라는 전갈이 들어왔다. 11월 15일에는 총독부 지전(地田) 기수(技手)가 평남 순천군 북창면 북창리로 출장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감기의 약이라고 고총(古 ) 흙을 파 간다”고 하는 특이한 보고를 하기도 했다. 11월 16일에는 충청남도 지방은 “독감으로 인하여 수확이 극난(極難)”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삼중현(三重縣) 조우정(鳥羽町) 시직약점(矢織藥店)에서는 악성감기가 창궐하여 약이 평일 보다 썩 잘 팔리는 기회를 타서 정가 20전의 감기약을 35전에 파는데 이 까닭으로 (……) 직공 약 500여 명이 벌떼같이 일어나서 그 근처에 있는 상점을 음습”하였다. 현재 타미플루를 둘러싸고도 지적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허의 배타적 권리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6년까지 타미플루를 독점 생산할 수 있는 특허권을 가진 로슈홀딩이 앞으로 10년 동안 생산시설을 완전 가동하더라도 세계 인구가 복용할 타미플루의 20%밖에 생산할 수 없다고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감 사망자 수, 대전쟁 전사자 수 보다 다섯 배나 높아 11월 18일에는 경성과 인천에 ‘독감이 종식(終熄)’되었으나, “오사카에서는 매일 400명이 독감에 죽는다”며 “(오사카) 시내에 인심이 흉하다”고 했다. 11월 20일에는 미국의 씨크 박사가 “돌림감기를 예방하는 종두법을 발견하였다”고 발표했으므로 “예방주사를 하게 되리라고 요사이 도착한 미국 신문에 게재되었다”고 전했다. 11월 28일에는 충북 각 군과 충남 서산 지방의 “유행성 감기는 오히려 맹렬하여 자꾸 창궐되는 바”, “지금껏 추수도 못하였다”고 끔찍한 참상을 소개하고 있다. 12월 3일에는 “서산 1군에만 8만 명의 독감 환자가 있고, 예산·홍성서도 야단”이라며 “감기로 사망한 사람이 감기가 처음 발생한 때로부터 2천 명”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12월 4일에는 뉴욕에서 전하기를 “남아프리카주에서는 돌림감기로 죽은 사람이 5만 명에 달하였다”는 전언이 실렸다. 12월 27일에는 “18일 밤의 런던 로이터 특전을 거한 즉 타임스 신문기자”가 말하기를 “유행성 감기로 3개월간의 사망자 6백만 인”이고, “5년간의 대전쟁에는 2천만 인”이 사망했으므로 “이번 감기가 전쟁보다 다섯 곱절이나 맹렬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한 “감기에 전염되는 분수로 사년 석 달을 치면 1억 8백만 명의 사망자를 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1919년 1월 21일에는 고종황제가 사망했으며, <매일신문>은 날마다 왕세자의 입성, 대한문 앞의 통곡성 등 고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다양한 행사들을 보도했다. 이 와중에 2월 4일에는 “돌림감기는 요사이 다시 동경지방에 창궐하여 상류가정까지 침로하여 원총리대신, 내전외무대신, 고교대장대신 등도 병에 걸리어 치료하는 중이며”, “이번에는 증세가 더욱 험악하다”고 전하고 있다. 1918년 가을부터 시작된 독감은 1919년까지 멈추지 않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이다.

“내 고뿔보다 남의 염병이 더하다”

전염병과 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1918년 가을부터 1919년까지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1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2,100만 명이 감염되어 26만 명이 사망했으며, 식민지 조선에서는 74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열악한 주거 환경과 위생상태, 그리고 빈약한 영양섭취로 인해 제국주의 일본보다 훨씬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1918년 독감의 희생자 수는 1997년까지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이 1,170만 명,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전투로 인한 전사자 수가 920만 명,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사람이 1,590만 명이라는 통계와 비교해 볼 때 실로 어마어마한 재앙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 의해 과학이 최고로 발달했다는 21세기에 이러한 대재앙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제는 “내 고뿔보다 남의 염병이 더하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2007/03/01 00:00 200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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