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
2007/2007년 03월 :
2007/03/01 00:00
“하하, 너 그럼 이제 빨갱이되는거야?”
참여연대 청년연수를 참가하겠다는 저의 말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물론 과장된 장난이었지만 저도 그 친구도 참여연대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런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시민운동이란 타협과 대안이 없는 비판일 뿐이라 확신하던 터였으니까요. ‘시민운동 현장체험’을 참가하게 된 동기도 제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단정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느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저의 ‘확신’이 지속될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기식 사무처장의 강의가 있던 첫 날, 저의 오래된 ‘확신’은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불확실한 미래에 구애받지 않을 것”을 역설(力說)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저는 ‘불확실한 미래’와 ‘대안 없음’을 동일시 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저 스스로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확실한 미래’는 미래라 하기보단 ‘현재의 연속’에 불과한 때가 많았음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활동을 해나가면서 ‘대안 없는 비판’으로 일축했던 시민단체에 대한 편견은 조금씩 허물어졌습니다. 일례로 청원안 만들기가 그랬습니다. 이전에 저는 9시 뉴스를 보며 더러운 한국정치를 비판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청원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불만을 정치적인 형식으로 표출하는 적극적인 ‘나’를 경험하게 되었고, 더불어 참여를 통한 더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머리 속에서 꿈꾸기만 했던 미래를 현실화하는데 주력하는 희망제작소를 방문했을 때에는, 참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겠다는 낙관은 느낌이 아닌 확신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판결비평 활동을 통해 다양한 가치관을 합리적으로 나누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부정적이라 단정했던 시민의 사법참여에 대해서도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법권 독립을 위해 지나친 사법참여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속의 종교인 법이 시민에게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판결의 전제가 되는 가치관 역시 시민의 재판정에 세워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판결비평은 이렇게 당연한 의문제기도 두려워하던 저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번 현장체험을 통해 시민 참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지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우리만의 참여’에 그쳤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다원화 사회에서 시민의 참여는, 다양한 의견이 만나고 갈등하는 과정을 거쳐 가장 합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장체험 기간 동안에는 참가자들이 시민을 직접 만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고민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한 달 전, 제가 생각하는 진보란 색깔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게 있어 진보란, 말 그대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빨갱이라고 부르던 친구가 있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그들과 더불어 갈등하고 타협하며 더 나은 미래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참여연대 청년연수를 참가하겠다는 저의 말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물론 과장된 장난이었지만 저도 그 친구도 참여연대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런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시민운동이란 타협과 대안이 없는 비판일 뿐이라 확신하던 터였으니까요. ‘시민운동 현장체험’을 참가하게 된 동기도 제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단정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느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저의 ‘확신’이 지속될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기식 사무처장의 강의가 있던 첫 날, 저의 오래된 ‘확신’은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불확실한 미래에 구애받지 않을 것”을 역설(力說)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저는 ‘불확실한 미래’와 ‘대안 없음’을 동일시 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저 스스로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확실한 미래’는 미래라 하기보단 ‘현재의 연속’에 불과한 때가 많았음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활동을 해나가면서 ‘대안 없는 비판’으로 일축했던 시민단체에 대한 편견은 조금씩 허물어졌습니다. 일례로 청원안 만들기가 그랬습니다. 이전에 저는 9시 뉴스를 보며 더러운 한국정치를 비판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청원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불만을 정치적인 형식으로 표출하는 적극적인 ‘나’를 경험하게 되었고, 더불어 참여를 통한 더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머리 속에서 꿈꾸기만 했던 미래를 현실화하는데 주력하는 희망제작소를 방문했을 때에는, 참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겠다는 낙관은 느낌이 아닌 확신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판결비평 활동을 통해 다양한 가치관을 합리적으로 나누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부정적이라 단정했던 시민의 사법참여에 대해서도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법권 독립을 위해 지나친 사법참여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속의 종교인 법이 시민에게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판결의 전제가 되는 가치관 역시 시민의 재판정에 세워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판결비평은 이렇게 당연한 의문제기도 두려워하던 저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번 현장체험을 통해 시민 참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지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우리만의 참여’에 그쳤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다원화 사회에서 시민의 참여는, 다양한 의견이 만나고 갈등하는 과정을 거쳐 가장 합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장체험 기간 동안에는 참가자들이 시민을 직접 만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고민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한 달 전, 제가 생각하는 진보란 색깔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게 있어 진보란, 말 그대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빨갱이라고 부르던 친구가 있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그들과 더불어 갈등하고 타협하며 더 나은 미래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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