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여자

2007/2007년 03월 : 2007/03/01 00:00
우리 동네에 병든 시어머니를 멀리 요양원에 보낸 며느리가 있다.

작년 추석 이후 할머니가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않아 병세가 심한 줄로 짐작했는데 오늘 슈퍼에 나갔다 들은 이야기다. 동네 사람들은 그 며느리를 독한 여자라고 혀를 끌끌 차며 입 모아 비난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는 어느 봉사단체 회원인지 가정복지사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병든 노인을 수발하는 일에 관계한다는 사실에 더 기막혀했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가정복지사나 남을 위해 무료봉사 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지만 나름대로 보람과 기쁨도 얻는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일지라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과 찬사가 싫지는 않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요양원에 보내진 노인 환자들은 봉사단체나 사회복지사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물론 가족이란 이름으로 덧씌워진 정은 못 느낄지 모르나 독립된 인격체로 보호 받고 있기에, 가족들이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병수발을 들어야하고, 그것이 당연한 도리라면 누가 기꺼이 그 자리에 서겠는가.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유독 며느리의 역할에 대해선 가부장적인 인습이 많이 남아있다. 피와 살을 나눈 아들딸은 제쳐두고 늙고 병들면 시부모는 며느리의 몫이 되는 것에 대하여 곰곰 생각하며 물건을 골랐다.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물건 값만 치르고 돌아서려 하자, “집의 시아버지가 언젠가 이발하러 가시는 걸 봤는데 잘 걷지를 못하던데 좀 괜찮아졌는가? 고생 많네. 동네 사람들이 다 고생한다고 이야기 해.” 했다.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모시느라고 고생 많다는 동네 사람들의 말이 실은 내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고생 많다는 말의 속뜻은 지켜볼 테니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고 시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독한 며느리는 되지 말라는 뜻인데 듣기 거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 문제는 이제 가족사적 영역에서 사회제도적 영역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더구나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사회는 고령시대로 접어들게 되고 전통적으로 노인수발을 담당했던 여성도 경제활동에 참가하게 되므로 사회가 공동으로 담당해야 한다. 물론 정부에서도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지만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노인수발보험제도’의 정착은 언제가 될지 가슴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님의 수발을 남편이 든다. 남편과 내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가사 분담은 철저하다. 아버님은 부축을 받고 식탁에 앉아 밥 먹는 일과 화장실 가는 수고 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에 남편은 목욕시키는 일 뿐만 아니라 방청소와 ‘궂은 빨래’까지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다. 남편은 아들에 며느리 역할까지 서슴없이 하므로 우리 집은 항상 평화롭다. 나는 며느리 같은 남편 덕에 결코 독한 여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송유순 수필가
2007/03/01 00:00 200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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