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따라 해 보세요. 기역” “기역”, “니은” “니은”, “디귿” “디글”

“아니고요 어머니, 디귿 해보세요.” “디글 ”

날마다 반복되는 학습이지만 늘 잊어버린다.

“나는 공부하고 싶다” “나는 곤부하고 십다”

또 다른 교실의 받아쓰기 시간이다.

“아이고, 나는 왜 이리 멍청인지. 내가 못 살아, 미쳐, 미쳐…….죄송합니다. 선생님”.

50대, 60대 그리고 70을 넘기신 어머니들이 공부하는 우리 학교는 늘 시끌벅적 하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힘겨운 삶의 무게 때문에 글을 배울 여유가 없었던 어머니들이 할머니가 되어서야 연필을 잡을 수 있었다. 이미 다 갈라져 논바닥처럼 거칠어진 손으로 한자라도 더 배우겠다고 밤새 ‘어머니, 아버지’를 노트에 채우신다. 가난한 어린 시절 여자는 공부를 ‘안’하는 것으로 알았다는 어머니들.

“선상님한테 편지 한 장 써 보는 게 소원이에요.” 하며 오늘도 기역, 니은을 외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인 25%가 비문해자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읽기, 쓰기, 셈하기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성인의 25% 정도라도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농어촌 지역일수록 더 높은 수치를 나타내며 특정 연령층에서는 70%를 넘기도 한다.

비문해란 1990년대부터 사용한 개념으로 비하의 뜻을 담고 있는 ‘문맹’ 대신 쓰는 말이다.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까지를 포함해 비문해자라고 한다. 비문해자들이 겪었을 삶의 고통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할 때면 온 교실이 눈물바다가 된다. 70이 넘도록 남편에게 글 모르는 걸 숨기며 살아왔다는 이야기,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주소와 이름을 쓰라고 할까봐 가슴 졸였던 기억들, 봉제공장에서 월급 탈 때마다 서명을 못해 이리저리 핑계를 찾던 일,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와 무언가를 기록해야 한다며 흰 종이를 내밀 때마다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었다는……. 돌아가신 부모님 원망도 해 보고 괜한 팔자타령도 해보고. 가슴 아픈 절절한 사연들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등산, 내일은 시장에……. 아직도 주위 시선이 무서워 거짓으로 꾸며대며 학교를 다니시는 착하고 곱기만 하신 어머니들, 그 정성이 눈물겹다.

당당한 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

문해 교육은 말과 글을 가르치는 것 뿐 만 아니라 늦깎이 학습자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며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 문해 교육을 하고 있다. 학생회 활동을 통해서 리더십을 갖게 하고 동아리 활동을 통한 다양한 경험, 봄·가을 소풍, 그리고 영화관람, 바자회, 나눔의 밥상 등 공동체 활동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 함께하는 삶을 나누고 있다.

마들여성학교에서는 한글기초반부터 완성반까지 5개 반, 영어기초반에서 회화반까지 4개 반 그리고 수학반 한문반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약 150여 명의 어머니들이 공부하고 있다. 한글을 배운 뒤로는 우편물도 챙기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은행업무도 척척 혼자서 해낸다며 자랑이 늘어진다. 또 취직을 하신 분, 중학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분 등 나름대로 생활 속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삶을 나누고 실천하는 마들주민회

1990년 청계천 일대 정비에 따른 영세민들이 상계동으로 이주를 하면서 시작된 ‘상계 어머니’ 학교는 한글 등 문해 교육과 영어, 상식, 수학, 한문 등 교양교육을 통해 소외된 여성들의 잃어버린 자신감과 삶의 의미를 함께 찾아보는 지역여성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해왔고 여러 가지 지역 행사를 통해 지역 활동의 기반을 넓혀갔다. 이후 저소득 층의 빈민여성들뿐만 아니라 저학력 위주의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로 구성되어 한글중심의 문해 교육 사업에서 보다 폭넓은 계층의 다양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문화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2000년 10월 상계 어머니학교는 ‘마들 주민회’ 라는 주민 단체를 창립하게 되었다. 마들 주민회는 ‘나누는 삶, 실천하는 삶’이라는 모토아래 노원지역의 소외계층과 함께 어려운 지역 문제들을 해결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민간운동단체이며 부설기관으로는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한 마들 창조학교, 저학력 여성들을 위한 마들 여성학교를 두고 있다.


배울 권리는 곧 인권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재정이다. 17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이지만 후원자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실무자 1명에 자원교사 14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새 학기마다 자원교사 구하기도 어렵고 성인 대상의 교재 연구도 아직 미흡하며 재정이 어렵다 보니 홍보도 잘 안돼 학생 모집에도 한계가 있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몸이 불편하다거나 손자손녀를 돌보며 다니기 때문에 학업을 하는데 지속력이 떨어지고 교실 공간도 열악한 게 현실이다.

문해 교육 전반에 걸친 어려움은 대다수 사람들이 문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문해 교육에 대한 이해, 문해 교육 정책의 필요성, 문해에 대한 실태 조사 및 연구, 문해 교육 기관에 대한 재정지원 및 학습자에 대한 지원, 교사연수 및 교재 개발, 문해 교육에 필요한 프로그램 개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무수히 많다.

전국의 많은 배움터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분들이 오늘도 글을 배우겠다고 어렵게 문을 두드린다. 이분들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게 도와 드리고 싶다. 글을 몰라서 서러웠던, 무시당했던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다. 글을 읽지 못하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의 배울 권리, 그것은 인권이다.

김인숙 마들 여성학교 교장 선생님
2007/05/01 00:00 2007/05/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962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