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사람, 곁에 있어도 늘 그리웠던 사람, 이해숙(54세) 회원을 만나던 날은 황사바람도 한풀 기가 꺾인 오후였다. 회색빛 하늘에 잦은 바람이 숭숭 우리의 가슴을 훑고 가는 봄날이지만 그녀가 나타나면 향기로운 바람 한 줌이 주변을 싱그럽게 한다.

밝은 잿빛 재킷에 ‘근조’라는 리본이 유난히 선연했다. 지난 4월 1일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며 분신한 허세욱 님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차림으로 짐작되었다. 허세욱 님은 뜻을 함께 한 참여연대 회원이었으니 ‘사람’ 사랑 지극한 그로선 애달픈 마음이 남 다르리라. 연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읽는 것도 힘든 노릇이었다.

운영위원, 회원모임 산사랑 회장, 회원모임협의회 회장, 안내데스크 자원활동가, 수필가……. ‘이해숙’ 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4권의 수필집 「아내와 대통령」, 「열이틀 달빛」, 「샥스핀스프와 짬뽕국물」, 산행 에세이 「산에서 사랑을 만나다」를 출간했고, 지금은 5집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체구에 평범했던 전업주부가 어떻게 시민운동의 중심부에 서게 되었는지 그것부터 궁금했다.

“1998년에 회원 가입을 했으니 햇수로 10년이네요. 회원인 언니를 따라 우연히 참여연대 사무실에 들렀다가 발목이 잡힌 거지요. 참여연대를 통해 내 삶에 찾아온 변화는 대단했어요. 일찍 결혼하여 가정에 안주한 탓으로 사회의식보다는 개인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회원이 되고부터는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고, 2000년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우리사회가 얼마나 변화를 갈망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열망하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작은권리찾기운동에 그렇게 많은 민원이 폭주하는 것을 보면서 소외되고 고통 받는 계층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참여연대의 초창기를 회상하며 달뜬 소녀가 되어 활동상을 풀어낸다.

“그 당시 제가 하던 일이라곤 집에서 밥 짓던 일 밖에 없었으니, 내 아이 같은 간사들에게 밥이라도 한 그릇 제대로 먹이고 싶어 기금 마련에 앞장을 섰죠. 여기저기 손을 내밀고 때로는 억지를 써서라도 승낙을 받아냈죠. ‘도시락기금’이라는 명칭은 박원순 변호사님이 붙여주셨는데, 그 때 내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도시락기금에 들어주면 좋은 사람, 안 들어주면 나쁜 사람이었어요.”

천진하고 순진한 유아의 발상이라 웃음이 터졌지만 얼마나 그 일에 열중했는가를 단박에 알 수 있는 사례라 가슴이 뭉클했다. 덕분에 지금도 간사들은 한 주 정도의 끼니는 그가 추렴한 ‘쌀’이 간사들의 ‘살’을 찌우게 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한 해 동안 ‘간사 인터뷰’ 지면을 통해 간사들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간사들의 생일도 챙기고, 안내데스크 자원활동을 하는 월요일 점심시간은 푸짐한 김치찌개가 상에 오르고, 때론 화장실 청소 당번이 누구냐고 소리도 지른다. 영락없는 엄마이다.

최근에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대회 릴레이 단식농성에도 참가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본인은 단지 머릿수 하나 채운다는 생각으로 참석한다지만 언론이 제대로 다루어 주지 않아 심각한 상황이라며 금세 얼굴이 어두워진다. 모두가 FTA를 입에 올리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세태에 대하여 한마디로 요약 해달라고 주문하자, 흔쾌히 핵심을 찌르는 말을 건넸다.

“우리는 공부 잘 하는 초등학생 이예요. 그렇다고 바로 대학으로 월반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 우린 세계 10위 무역국인데 뭐가 그리 다급하다고 우리의 오장육부를 빼내어주는 협상을 해요. 꼭 1등을 해야 돼요? 한미 FTA는 거시적 경제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까지 위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해요. 협상자, 정책결정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풀어갈 문제인데, 허세욱 회원 같은 분만 희생되고……. 다음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네요.”

다정다감하고 자상했던 엄마의 얼굴이 단번에 시민운동가의 목소리로 변하여 사회의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민주화와 무조건적으로 시민단체에 거는 기대감이 사라져야 한다며,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독설에 일침을 꽂았다.

“시민 모두가 어떻게 참여를 해요. 회원의 대부분은 참여연대가 하는 일을 적극 지지하고 회비 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대리만족이지요. 우리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런 일은 세금을 꼬박꼬박 받는 국가에서 해야지요. 우리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 소외 받고 핍박받는 계층의 틈새 권리를 찾아주고, 국가권력의 횡포를 감시하는 일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개인의 이해관계에 얽힌 일까지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는 일이 난감할 때가 많아요. 시민운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안내데스크 경력 8년째이니 ‘세상보기’의 달인이 되었지 싶다. 그러기에 이미 발간된 수필집이 안내데스크의 일지나 다름이 없다. 준비 중인 5집에 대해 궁금해 하자 ‘개인의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며 살포시 웃었다.

회원모임협의회 회장으로서 계획이나 각오에 대한 질문을 건네자, “특별한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모임 간의 소통을 위해 애쓸 뿐이죠. 서로 힘을 모을 일이 있으면 앞장을 서고, 회원의 대표라는 생각을 버리고 초심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사랑’ 회원들과 산을 오를 때, 내려가는 하심(下心)을 익히듯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회원들이 도와줄 거예요. 내 삶에서 참여연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데. 참여연대는 나의 종교예요.”

강한 마지막 멘트를 날리며 주변을 정리한다. 저녁 7시, 한강성심병원에서 있는 허세욱 회원 추모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향내보다 더 은은한 바람 한 줌이 그를 따라 나선다.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2007/05/01 00:00 200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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