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오면
2007/2007년 05월 :
2007/05/01 00:00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5월 속에 있다.’ 라는 피천득 님의 시구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맘때가 되면 나에게도 다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나를 극진히 사랑하셨던 시아버지.
아침 일찍 남편과 의정부행 전철을 탔다. 오늘은 시아버지 산소에 소풍삼아 성묘를 가는 날이다. 둘 다 직장을 떠났으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40대 초반 23년의 직장생활에 내가 종지부를 찍자 남편도 직장생활 23년 되던 해, 나와 의논 한 마디 없이 사표를 냈다. ‘23’이라는 숫자에 평등이라는 이름을 걸고, 우리는 맞벌이 부부로서 매사 공평하고 평등하게 처리하며 살았다. 서로의 통장 관리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밥을 짓고 설거지는 나중 사람이, 내가 청소기를 돌리면 남편은 바닥을 닦고, 시댁에 가서도 남편은 집에서 하던 것처럼 나를 도와주었다. 아들의 이러한 평등사고를 마땅찮게 여기던 시어머니도 시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지에 두 손 들고 우리의 ‘평등부부’상을 인정하셨다.
요즘처럼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 가사분담이 일반화 된 시절과 달리, 80년 대 초 우리 부부의 일상생활은 주변의 이야기꺼리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가 충분했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에 서 주셨고, 임종 시에도 내 손을 잡고 집안일을 부탁하신다면서 떠나셨다. 그 때문인지 난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늘 시아버지의 산소엘 간다. 유택 앞에 앉아 묵상하듯 한나절만 보내고 와도 마음은 평온해지고 생활에 활기가 되살아난다.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퇴직 후 얼마간 우리는 그야말로 무위도식을 하며 지냈다. 공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만만찮았기에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함께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신선노름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놀았더니, 통장의 잔고에 경고등이 커졌다. 우리는 고심을 하다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운7기3’이라는 증권가의 철학(?)을 좌우명으로 ‘마음비우기’를 익히며, 종자돈을 둘로 나누어 실전에 들어갔다.
5:5의 동업관계가 한동안 순풍에 돛을 달았다. 나는 오래 전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한 경험이 있어 시장의 흐름에 욕심을 내지 않았지만 초보인 남편은 마음이 앞서갔다. 결과적으로 동업으로 시작한 우리의 평등관계는 상하관계로 자리매김을 하고, 남편은 번번이 시장에서 손을 털고 나는 그것을 수습하고. 통제 불능인 직원과의 사이에서 가정의 평화가 위협을 받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버지께로 달려갔다. 어떤 믿음이나 종교보다도 아버지가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욕심 없이 일생을 살다간 아버지야말로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가셨는지도 모른다. 5월의 훈풍 속에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오시는 것 같다. 아, 그리운 아버지…….
아침 일찍 남편과 의정부행 전철을 탔다. 오늘은 시아버지 산소에 소풍삼아 성묘를 가는 날이다. 둘 다 직장을 떠났으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40대 초반 23년의 직장생활에 내가 종지부를 찍자 남편도 직장생활 23년 되던 해, 나와 의논 한 마디 없이 사표를 냈다. ‘23’이라는 숫자에 평등이라는 이름을 걸고, 우리는 맞벌이 부부로서 매사 공평하고 평등하게 처리하며 살았다. 서로의 통장 관리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밥을 짓고 설거지는 나중 사람이, 내가 청소기를 돌리면 남편은 바닥을 닦고, 시댁에 가서도 남편은 집에서 하던 것처럼 나를 도와주었다. 아들의 이러한 평등사고를 마땅찮게 여기던 시어머니도 시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지에 두 손 들고 우리의 ‘평등부부’상을 인정하셨다.
요즘처럼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 가사분담이 일반화 된 시절과 달리, 80년 대 초 우리 부부의 일상생활은 주변의 이야기꺼리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가 충분했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에 서 주셨고, 임종 시에도 내 손을 잡고 집안일을 부탁하신다면서 떠나셨다. 그 때문인지 난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늘 시아버지의 산소엘 간다. 유택 앞에 앉아 묵상하듯 한나절만 보내고 와도 마음은 평온해지고 생활에 활기가 되살아난다.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퇴직 후 얼마간 우리는 그야말로 무위도식을 하며 지냈다. 공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만만찮았기에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함께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신선노름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놀았더니, 통장의 잔고에 경고등이 커졌다. 우리는 고심을 하다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운7기3’이라는 증권가의 철학(?)을 좌우명으로 ‘마음비우기’를 익히며, 종자돈을 둘로 나누어 실전에 들어갔다.
5:5의 동업관계가 한동안 순풍에 돛을 달았다. 나는 오래 전 재미 삼아 주식에 투자한 경험이 있어 시장의 흐름에 욕심을 내지 않았지만 초보인 남편은 마음이 앞서갔다. 결과적으로 동업으로 시작한 우리의 평등관계는 상하관계로 자리매김을 하고, 남편은 번번이 시장에서 손을 털고 나는 그것을 수습하고. 통제 불능인 직원과의 사이에서 가정의 평화가 위협을 받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버지께로 달려갔다. 어떤 믿음이나 종교보다도 아버지가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욕심 없이 일생을 살다간 아버지야말로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가셨는지도 모른다. 5월의 훈풍 속에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오시는 것 같다. 아, 그리운 아버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