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할머니를 통해 6월 항쟁에 대해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때 내가 배운 교훈은 ‘데모하면 죽을 수도 있다.’ 고로 ‘데모는 위험하고 안 좋은 것이다.’ 이런 것이었다.

시위에 대한 두려움만 심어준 6월 항쟁

지루했던 학교 국사 시간, 권력자들의 권력 싸움이 대부분인 왕조 사회만 지겹도록 달달 외운 뒤 남북분단까지 배우고 나면 대개 책의 마지막 부분은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민주화를 위한 항쟁이 있었다는 것을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험 범위가 아니어서 공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때 배운 ‘민주화’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교과서의 고전적인 단어로 치부하고 넘겨버렸다.

대학 들어와서 우연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끔찍하긴 했지만 유관순 열사 정도의 먼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졌던 그 사건. 그러나 머지않아 선배들이 가슴으로 이야기하는 민주화에 대해 들으며 아직도 ‘투쟁은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가톨릭 학생회 선배들과 함께 민주항쟁으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열사 추모 미사’에 참여하며, 그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찾고 싶어 했던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내게도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20년 뒤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그들’

20년 전 선배들이 그토록 원했던 ‘민주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투쟁구호처럼 직선제도로 개헌되고, 독재정권을 타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그러나 한때는 주사파니 뭐니 했다가 지금은 신보수의 늪에 빠져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그들’을 보면, 목숨 바쳐 투쟁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지금은 당시 자신의 운동을 단지 ‘경력’으로 수단화 하며 정치권에 한 자리를 가지려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정치권으로의 자리 옮김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갔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렇게 좌파의 메커니즘을 잘 아는 386세대 중 일부는 오히려 그간 진행되어온 민주화를 절벽으로 내몰고 있기에, 아직 ‘민주사회’가 도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재산은 여전히 소수의 부유한 이들이 독점하고 있고 실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예전의 ‘서로 사랑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공동체적인 삶’에서 점점 멀어졌고, 경쟁에서 싸워 이기는 것이 삶의 목표인 양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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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보다는 현실 좇은 젊은이들



지금의 젊은 층은 대개 IMF 당시에 초·중학생이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늘 나에게 ‘돈이 최고’라고 하셨고, 나뿐만 아니라 대학에 모인 또래 모두 오로지 돈 많이 버는 기업 취업에 혈안이 되어있음을 느낀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세대가 지금 민주사회보다 부를 꿈꾸고 있다. 왜 선배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대를 이어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오지 못했을까? ‘이건 사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87년 당시 선배들이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을 했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돈에 대한 두려움을 견뎌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남들 일할 때 혼자 이상을 좇다가 가난뱅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생존을 위한 기본 수단조차 지불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공포……. 결국에는 일을 해야겠다는 개인적인 선택 쪽으로 기울어진다. 간혹 이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운동에 참여하려는 이들에게,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들이 굉장한 이상주의자라고 한다. ‘저임금’을 받고도 ‘희생정신’으로 운동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시민단체를 직접 방문하고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차츰 섰고,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의 즐거움이 내가 추구하고픈 목표로 다가왔다. 대기업이나 모양 나는 곳에 취업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 ‘몽상가’ 들보다 주체성을 가진 삶을 꿈꾸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러한 ‘현실주의자’가 되기를 자청하는 젊은 층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그들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선배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완성되지 않은 민주사회에 대한 염원을 품고 있는 선배들과 학생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우리 학생들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기회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 높이는 학생들은 소수지만, 더 똘똘 뭉치며 정체성도 더 확고해지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운동하는 활동가가 아닌 다양한 곳에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선배들을 통해 좀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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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곳에서 같은 곳 바라보는 그들이 그립다

87년, 갓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세대가 겪지 않은 6월 항쟁의 의미를 정리해보니, 아직은 이렇다할 사회참여도 하지 않으면서 말만 쉽게 내뱉는 것 같아 부끄럽다. 20년 후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될 후배들은 20년 전의 운동과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두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진 않을까.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것 같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 있는지는 현재의 우리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금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보다 냉철한 사고와 열정적인 직접 행동이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찾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그 관계 속에서 다시 새로운 고민과 과제를 생산해내어 20년 후에는 다툼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꿈꾸며 오늘도 힘차게 달릴 것이다.

오세은 대학생
2007/06/01 00:00 2007/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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