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에서 청와대까지 넘쳐나는 같기도(?) '철학'
2007/2007년 06월 :
2007/06/01 00:00
점집들이 오디처럼 한데 모여 있는 미아리에 가면 ‘철학관’이라는 간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요즘에는 스포츠신문이나 인터넷에서도 ‘철학관’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에 질세라 청와대에도 철학은 넘쳐난다.
1982년 3월 3일자 《조선일보》는 「제5공화국 1년」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전 대통령의 개혁의지와 통치철학은 ‘민주복지국가의 건설과 정의사회의 구현으로 자주민족국가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는 청와대와 고위 통상관료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방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신용비어천가를 남발하고 있다.

철학의 어원
연어가 바다를 거슬러 강으로 올라가듯이 ‘철학’이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ια)에 이른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헤로도토스는 이 단어를 특정학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지식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다”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 동사로 사용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이르러 필로소피아라는 단어는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듯하며, 약간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했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 등장하는 카리크레스는 “필로소피아라는 것은 젊을 때 적당하게 다루는 것은 좋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필로소피아를 하고 있으면, 국가 사회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되고 만다.”라고 말했다. 이후 로마 사람들은 이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필로소피아(philosophia)’ 라고 받아 적었으며, 영어(philosophy), 독일어(Philosophie), 프랑스어(philosphie) 등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동아시아에서 필로소피아라는 낯선 단어가 가장 먼저 소개된 기록은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가 1623년에 쓴 「서학범(西學凡)」이다. 알레니는 이 책에서 유럽 대학의 6가지 교과에 대해 “하나는 문과(文科)로 레토리카(勒鐸理加)라고 하고, 하나는 이과(理科)로 필로소피아(斐錄所費亞), 하나는 의과로 메디시나(默第濟納), 하나는 법과로 렉스(勒祈義), 하나는 교과(敎科)로 카논네스(加諸溺祈), 하나는 도과(道科)로 데올로지아(徒祿日亞)라고 일컫는다.”라고 설명했다. 알레니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필로소피아를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낯설고 새로운 개념을 중국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과(理科)와 격물궁리지학(格物窮理之學)이라는 번역어를 만들었다. 이후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는 필로소피아를 비록소비아(費祿蘇非亞), 비록소비아(斐錄所費亞), 비룡소비아(飛龍少飛阿)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 파리의 외방전교회 출신의 페롱 신부가 1868년경 완성한 『불한사전』원고에서는 ‘필로소페(philosphe)’를 조선어로 “선배, 선브ㅣ, 셩현, 셩인”이라고 번역했다. 또한 미국 장로회 소속 선교사 겸 의사였던 커티스 헵번이 1867년에 펴낸 일어·영어사전인 『화영어림집성(和英語林集成)』을 보면, ‘philosophy’는 ‘가쿠(學), 주츠(術), 리(理), 도리(道理), 미치(道)’라고 번역되었다. 또한 ‘philosopher’는 “모니시리(識者), 가쿠샤(學者), 하카세(博士)”라고 번역됐다. 청나라에서도 사정은 비슷해 독일 출신의 선교사 로브사이드가 1866~69년에 펴낸 『영화자전(英華字典)』을 보면, ‘philosophy’는 “이학(理學), 성리지학(性理之學), 박물리학(博物理學), 격물총지(格物總智)”라고 번역됐다.

철학은 백가지 가르침이 하나의 이치로 모아지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철학’이라는 말은 언제 처음으로 만들어졌을까? 필로소피아를 ‘데즈가꾸(哲學)’라는 일본식 한자 번역어로 만든 사람은 근대일본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시 아마네(西周)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861년, 반쇼시라베쇼(蕃書調所)에서 함께 일하고 있던 츠다 마미치(津田?道)가 지은 『성리론』의 발문에서 ‘키데츠가쿠(希哲?)’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애초에 니시 아마네는 필로소피아를 ‘희현학(希賢學)’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단어에서 성리학적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를 탈색시키기 위해서 ‘희철학(希哲學)’이라는 더욱 낯설고 이질적인 번역어를 채택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서양의 필로소피아와 동양의 유교적 궁리관념을 구별하기 위해 ‘희(希)’자 마저도 떼어 버리고 ‘철학(哲學)’이라는 번역어를 만들어내었다.
니시 아마네가 처음으로 필로소피아를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한 기록이 남아 있는 책은 1874년(메이지 7)에 출판한 『백일신론(百一新論)』이다. 백일신론은 백가지 가르침이 하나로 일치됨을 논한 새로운 논설이라는 뜻으로 동서고금의 각종 가르침은 결국 한 가지 이치로 모아지며 이를 가리켜 ‘철학’이라고 부른다는 내용이다.
조선의 철학, 언행과 윤리 및 기강, 사물의 운동을 규정하는 의미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철학’이라는 말이 수입되어 쓰이기 시작했을까? 조선 사람이 쓴 문헌기록 중에서 ‘철학’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자료는 1881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준영이 고종에게 보고한 「문부성」이라는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서 조준영은 도쿄대학 인문학부의 교과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그는 “철학 행정학 급(及) 이재학과(理財學科)”라는 학과 명칭을 소개했고, 인문학부의 여러 과에서 ‘철학'이라는 교과를 배우고 있음을 기록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조준영이 일본에서 처음 들여온 철학이라는 번역어는 상당히 낯설었던 것 같다. 《한성순보》에는 서양의 학교제도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개되었으나, ‘철학’이라는 번역어는 여전히 등장하지 않았다. 1884년 3월 18일자 《한성순보》에는 필라소피의 번역어로 성도학(性道學)이 사용되었으며, 1884년 6월 14일자 《한성순보》에서는 심성격치(心性格致)라는 번역어가 사용되었다.
조준영 이후 ‘철학’이라는 번역어를 다시 사용한 사람은 유길준이었다. 유길준은 1895년 일본에서 간행한 『서유견문』에 ‘철학’이라는 항목을 두고,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철학이라는 학문은 지혜를 사랑하여 이치를 통하기 위한 것이며, 근본이 심오하고 쓰임새가 넓은 것은 그 경계를 짓기 불가능하며, 사람의 언행과 윤리 및 기강, 그리고 사물의 운동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개화기와 일제 식민지시대의 신문, 교과서, 잡지, 소설 등에 ‘철학’이라는 번역어가 등장했으며, 사람들은 이 낯선 단어에 점점 적응해갔다. 하지만 여전히 철학은 우리에게 낯선 이방인의 언어로 남아 있다. 그런 까닭에 아직까지도 철학이 미아리 점집과 청와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1982년 3월 3일자 《조선일보》는 「제5공화국 1년」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전 대통령의 개혁의지와 통치철학은 ‘민주복지국가의 건설과 정의사회의 구현으로 자주민족국가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는 청와대와 고위 통상관료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방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신용비어천가를 남발하고 있다.

철학의 어원
연어가 바다를 거슬러 강으로 올라가듯이 ‘철학’이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ια)에 이른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헤로도토스는 이 단어를 특정학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지식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다”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 동사로 사용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이르러 필로소피아라는 단어는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듯하며, 약간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했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 등장하는 카리크레스는 “필로소피아라는 것은 젊을 때 적당하게 다루는 것은 좋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필로소피아를 하고 있으면, 국가 사회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되고 만다.”라고 말했다. 이후 로마 사람들은 이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필로소피아(philosophia)’ 라고 받아 적었으며, 영어(philosophy), 독일어(Philosophie), 프랑스어(philosphie) 등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동아시아에서 필로소피아라는 낯선 단어가 가장 먼저 소개된 기록은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가 1623년에 쓴 「서학범(西學凡)」이다. 알레니는 이 책에서 유럽 대학의 6가지 교과에 대해 “하나는 문과(文科)로 레토리카(勒鐸理加)라고 하고, 하나는 이과(理科)로 필로소피아(斐錄所費亞), 하나는 의과로 메디시나(默第濟納), 하나는 법과로 렉스(勒祈義), 하나는 교과(敎科)로 카논네스(加諸溺祈), 하나는 도과(道科)로 데올로지아(徒祿日亞)라고 일컫는다.”라고 설명했다. 알레니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필로소피아를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낯설고 새로운 개념을 중국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과(理科)와 격물궁리지학(格物窮理之學)이라는 번역어를 만들었다. 이후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는 필로소피아를 비록소비아(費祿蘇非亞), 비록소비아(斐錄所費亞), 비룡소비아(飛龍少飛阿)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 파리의 외방전교회 출신의 페롱 신부가 1868년경 완성한 『불한사전』원고에서는 ‘필로소페(philosphe)’를 조선어로 “선배, 선브ㅣ, 셩현, 셩인”이라고 번역했다. 또한 미국 장로회 소속 선교사 겸 의사였던 커티스 헵번이 1867년에 펴낸 일어·영어사전인 『화영어림집성(和英語林集成)』을 보면, ‘philosophy’는 ‘가쿠(學), 주츠(術), 리(理), 도리(道理), 미치(道)’라고 번역되었다. 또한 ‘philosopher’는 “모니시리(識者), 가쿠샤(學者), 하카세(博士)”라고 번역됐다. 청나라에서도 사정은 비슷해 독일 출신의 선교사 로브사이드가 1866~69년에 펴낸 『영화자전(英華字典)』을 보면, ‘philosophy’는 “이학(理學), 성리지학(性理之學), 박물리학(博物理學), 격물총지(格物總智)”라고 번역됐다.

철학은 백가지 가르침이 하나의 이치로 모아지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철학’이라는 말은 언제 처음으로 만들어졌을까? 필로소피아를 ‘데즈가꾸(哲學)’라는 일본식 한자 번역어로 만든 사람은 근대일본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시 아마네(西周)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861년, 반쇼시라베쇼(蕃書調所)에서 함께 일하고 있던 츠다 마미치(津田?道)가 지은 『성리론』의 발문에서 ‘키데츠가쿠(希哲?)’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애초에 니시 아마네는 필로소피아를 ‘희현학(希賢學)’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단어에서 성리학적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를 탈색시키기 위해서 ‘희철학(希哲學)’이라는 더욱 낯설고 이질적인 번역어를 채택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서양의 필로소피아와 동양의 유교적 궁리관념을 구별하기 위해 ‘희(希)’자 마저도 떼어 버리고 ‘철학(哲學)’이라는 번역어를 만들어내었다.
니시 아마네가 처음으로 필로소피아를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한 기록이 남아 있는 책은 1874년(메이지 7)에 출판한 『백일신론(百一新論)』이다. 백일신론은 백가지 가르침이 하나로 일치됨을 논한 새로운 논설이라는 뜻으로 동서고금의 각종 가르침은 결국 한 가지 이치로 모아지며 이를 가리켜 ‘철학’이라고 부른다는 내용이다.
조선의 철학, 언행과 윤리 및 기강, 사물의 운동을 규정하는 의미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철학’이라는 말이 수입되어 쓰이기 시작했을까? 조선 사람이 쓴 문헌기록 중에서 ‘철학’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자료는 1881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준영이 고종에게 보고한 「문부성」이라는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서 조준영은 도쿄대학 인문학부의 교과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그는 “철학 행정학 급(及) 이재학과(理財學科)”라는 학과 명칭을 소개했고, 인문학부의 여러 과에서 ‘철학'이라는 교과를 배우고 있음을 기록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조준영이 일본에서 처음 들여온 철학이라는 번역어는 상당히 낯설었던 것 같다. 《한성순보》에는 서양의 학교제도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개되었으나, ‘철학’이라는 번역어는 여전히 등장하지 않았다. 1884년 3월 18일자 《한성순보》에는 필라소피의 번역어로 성도학(性道學)이 사용되었으며, 1884년 6월 14일자 《한성순보》에서는 심성격치(心性格致)라는 번역어가 사용되었다.
조준영 이후 ‘철학’이라는 번역어를 다시 사용한 사람은 유길준이었다. 유길준은 1895년 일본에서 간행한 『서유견문』에 ‘철학’이라는 항목을 두고,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철학이라는 학문은 지혜를 사랑하여 이치를 통하기 위한 것이며, 근본이 심오하고 쓰임새가 넓은 것은 그 경계를 짓기 불가능하며, 사람의 언행과 윤리 및 기강, 그리고 사물의 운동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개화기와 일제 식민지시대의 신문, 교과서, 잡지, 소설 등에 ‘철학’이라는 번역어가 등장했으며, 사람들은 이 낯선 단어에 점점 적응해갔다. 하지만 여전히 철학은 우리에게 낯선 이방인의 언어로 남아 있다. 그런 까닭에 아직까지도 철학이 미아리 점집과 청와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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