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반 연령주의자 - 정김신호 회원
2007/2007년 06월 :
2007/06/01 00:00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릿결, 소년티가 묻어나는 웃음소리와 수줍어하는 표정, 가늘고 긴 손가락. 그를 보는 순간 단박에 예술 하는 사람이라는 ‘필’이 꽂혔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정김신호(28세) 회원의 첫인상은 시민단체와 줄긋기 하기엔 고개가 갸우뚱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2001년 이미 회원 가입을 했고, 행사 현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며 분신한 고 허세욱 회원의 노제 촬영에서부터 참여연대의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이고, 희망제작소의 행사 촬영 원정도 마다 않는 열혈 사진작가이다.
사진에 몰입하게 된 동기를 묻자 특유의 제스처인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참여연대가 느티나무 카페를 운영하던 때, 그곳에서 장기간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어요. 많은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장면도 보고 그 때마다 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도 흥미로웠어요. 사진 참 매력적이죠. 찰나의 미학이랄까? 대학에서 보도사진 찍는 것부터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더욱 가슴이 뛰더라고요. 그런데 필름값, 현상비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디지털 카메라를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긴축재정으로 들어갔는데 참 힘들었죠.”
근검절약한 사례는 눈물겨웠다지만 벗어난 고행을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은 아름다웠다.
문득 ‘세계는 욕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생생해지고 활기 있게 된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그의 욕망이 인터넷참여연대를 더욱 생생하고 활기차게 만들었으리라.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학교보다 교회를 더 열심히 다녔던 ‘절절한 기독청년’이 대학에서 갑자기 진보적인 성향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대학도 보수적인 기독교 재단이었어요. 시대에 대한 고민보다는 편협한 종교관에만 매몰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였어요. 누구도 ‘광주’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가슴이 답답했죠. ㅂ교수님이 ‘광주이야기’를 하고 교직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퇴직 당했고요. 이 때 ‘깃발 없이’ 혼자 집회에 참석하면서 사회의식이 생겼던 것 같아요. 결국 그 대학은 다 마치지 못하고 참여연대에 가입하고 몇 년 뒤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로 편입을 해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을 했어요. 민주노동당에 가입을 한 것도 그 이후고요.”
동아리도 없고 손잡아주는 선배도 없이 독학으로 세상읽기를 했으니 그 심사 오죽했으랴. 그 절박한 심정을 글로 옮기다보니 글 쓰는 재주가 덤으로 따라왔는지, 감성적인 유전자가 활발하게 활동을 한 탓인지 글쓰기도 프로급이다. 자신도 사진과 글쓰기를 놓고 어느 쪽을 선택해서 업으로 삼겠느냐고 하면 고약한 질문이라고 지레 못을 박았다.
기형도 시인과 미국의 월트 휘트먼의 시를 좋아한다며 금방이라도 시를 읊조릴 듯 눈빛이 깊어졌다. 그야말로 ‘글 쓰는 사진가’의 기질이 다분히 엿보였다. 행사 촬영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사진은 어떤 장면이었느냐 묻자, 금세 얼굴에 그늘이 지며 목소리마저 가라앉는다.
“허세욱 선생님 노제 촬영 때였어요. 가슴에서 욱하는 감정이 자꾸 일더라고요. 행사 촬영을 할 때에는 감정 몰입보다는 최대한 객관적인 감정을 유지해야 하는데 참 어렵더라고요.”
짤막한 답변에 긴 여운이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촛불처럼 순간에 쓰러져 가신 님이지만 기술 복제시대를 위해 호출된 예술이라는 사진 덕분에 가신 님은 날마다 되살아나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참여연대의 여러 간사들에게 정김신호 회원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묻자 한 목소리로 ‘착한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내밀었다. 그 때문일까, 그는 참여연대나 희망제작소 행사 촬영을 한 번도 거절한 적 없을뿐더러, 미학은 일상 속에서 출발한다는 믿음으로 의미 있는 날에는 작은 선물로 주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소소하고 예쁜 삶이 모토라며 수줍은 듯 웃음을 숨긴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고등학교 때까지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착함 콤플렉스까지 생겨 한때는 착하게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착함이란 무의식적인 이기심과 욕망을 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착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도 있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보다는 더불어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겠는데……. 누구 하고도 소통이 가능한 ‘유연한 반 연령주의자’로 살고 싶어요. 꼭 ‘유연하다’는 수식어를 앞에 붙여서”

착한 기질과 선량한 기운이 함께 배어나니 어딜 가도 연령을 초월하여 환영받는 될성부른 사람이다. 참여연대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과 개선점을 제시해 달라고 하자, 절제된 듯 준비된 듯한 답변이 조용히 쏟아져 나왔다.
“참여연대가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한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라 자랑스럽죠. 거대한 조직이라 하지만 실제로 상근자는 많지 않은 편이잖아요. 이른바 백화점식 시민운동이라 각 사업 분야에서 하는 일들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시민단체로서 우리 사회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죠. 제도 개혁을 위해 기울이는 많은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사무실과 회원의 거리를 좀 좁혀 시민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여러 방법도 모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시민들이 참여연대에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큰 것도 문제 같아요.” 공론화된 비판이지만 그 역시 목에 걸린 가시였던 모양이다. 겸연쩍은 듯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홍세화 선생님의 글이 가슴에 남아있어요. ‘시민들이 보도블록 20센티를 내려오는 것이 1미터의 낭떠러지를 내려오는 것처럼 아득하다’더군요. 이 나라의 주인 된 도리를 다한다는 의식을 갖고 함께 참여하면 시민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어질 텐데 그게 어려운가 봐요. 그런 의미로 보면 참여연대는 시민들에게 20센티의 보도블록을 의식케 하고 발을 떼게 만든 셈이죠.”
감성과 상징으로 어우러진 참여연대의 평가라 삽상하다. 신록을 지나 녹음으로 향하는 ‘유연한 반 연령주의자’의 일성(一聲)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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