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꼭 3년만입니다. 2004년 여름,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 명상’으로 한나절 함께 걸으며 인터뷰했던 참여연대 홍성희입니다. ‘같이 걸으면서 인터뷰하겠다’고 결정하고 강원도 화천군으로 떠날 때만 해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걸어야지’ 했었습니다. 난 이제 처음 걷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보름정도 걸으셨으니 선생님께서 지칠 대로 지쳐 있을 거란 상상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샘솟는 기운도 전해드린다는 야심찬 포부까지 가졌었죠. 포부는커녕 얄팍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2시간도 충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룻강아지 의지를 비웃듯 제 다리에서 온갖 종류의 통증신호가 전해오더군요.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루에 40-50km, 총 3,000km를 걸어야 하는 선생님은 정말 고되겠다’며 저의 나약함을 슬쩍 뒷전으로 밀어 넣었죠.

얼마만큼 걸었을까요. 개울가에서 잠시 쉬면서 신발을 벗은 선생님 발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그렸던 만신창이 발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죠. 근데 이게 웬일? 물집과 굳은살로 도배가 되어 있기는커녕 매끈매끈한 예쁜 발이 나오는 거예요. 놀라며 묻는 저에게 선생님께서 내놓은 답이 바로 ‘결’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결’이 있어요. 바람에도, 물에도, 걸음에도……. ‘결’이 있어요. 이것을 느끼면서 걸으면 쉬워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적용해보려고 했으나 그게 쉽게 됐겠어요? 그날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가끔씩 ‘결’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특히 ‘어떻게’라는 내 안의 질문이 나올 때면, 막막하고 낯선 대상을 품어 ‘결’을 만드는 흉내도 내보려고 했죠.

이런 이야기를 직접 만나 만담을 나누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은 단지 ‘답답하다’라는 단어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지난 반세기도 모자라서 아직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국가보안법은 이제 분노보다는 부끄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네요. 선생님 작품 중 ‘정동진’에 있는 글이 위로가 됩니다.

‘새벽은 불빛에서 오는 게 아니라 어두운 하늘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현실이 어둡고 답답하지만 바로 그 뒤에 불빛이 다가오고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을 달래봅니다. 얼마 전 평화박물관에 갔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돌아본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석방을 원하는 글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더군요. 바로 그 뒤에 우리의 새벽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에 주의하시고 밖에서 뵐 날을 기다리며 이만 접습니다.

자유로이 사진 한 수 배우고 싶은 맘 가득 담아

2007. 7. 13 홍성희 드림

성희씨 차암 반갑습니다.

옥담 안에서 받아 보는 편지라 각별하기 그지없는 설렘 자체입니다. 정말 3년 전처럼 무한히 걷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 때 먼 길을 함께 걷고 헤어져 화천과 양구사이에 99구비 해산령을 넘어가고 있을 때 경찰과 군정보대가 제 앞을 막아서고 이것저것 묻다가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수사기록을 넘겨받아보니 그때부터 본격적인 도청, 감청과 감시가 시작되었더군요.

……

제가 오래전부터 관심 가져온 ‘유엔사해체’문제는 북이 주장하는 바이고, 그래서 북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저를 영어의 몸이 되게 했습니다. 저의 의도는 평화체제논의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의제인 ‘유엔사해체’문제를 우리가 먼저 ‘의제설정’함으로써 남측의 주도권을 실현하고 외교의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었습니다. 피할 수없는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부둥켜안음으로써 상황을 반전시키자는 것이지요. 나트륨과 염소는 모두 독성을 가진 원소이지만 이 둘을 결합시키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소금이 됩니다. 유엔사해체는 결코 북에만 이로운 ‘의제’가 아닙니다. 누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이해관계도 반전되는 것이지요. 이제 유엔사해체문제가 평화회담의 의제가 되는 것은 머지않은 시간의 문제입니다. 북은 ‘핵’문제로 의제설정권을 행사했고 외교적 주도권도 행사하고 있습니다. 남은 과연 어떤 의제로 세계외교의 의제를 설정하고 주도할 것인가? 단번에 유엔차원으로 논의를 확장시킬 수 있고, 이미 1975년 유엔총회에서의 유엔사해체 결의를 확인하며 신속하게 실행을 주도할 수 있는 의제가 ‘유엔사령부’문제입니다. 저의 감옥생활이 연장되는 것은 개념치 않으나 평화체제로 가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시점에서 헌법3조 개정과 유엔사해체 문제에 대해 깊은 사색과 실천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

독거운동장 담벼락아래 서있는 꽃 한 송이를 보았습니다. 그 꽃이 옥담 너머까지 날아 들어와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 경이에 대해 얼마 전까지 감격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꽃은 화려했던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시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성공사례엔 열광하지만 그에 뒤따르는 실패와 좌절의 사례에 대해선 외면해온 것 같습니다. 성공하고 승리한 것들에 보내는 갈채만큼이나 실패하고 좌절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연대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고양기의 힘찬 기백과 신화뿐 아니라 퇴조기의 쓸쓸한 후퇴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움과 결을 발견하고, 만들어내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활짝 핀 꽃잎의 아름다움과 시들어가는 꽃잎의 아름다움엔 우열이나 존귀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눈가슴을 열어 낯설어 보이는 시들어감과 쇠락을 끌어안을 때 그것을 새로운 결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태어납니다. 끝없이 낮은 곳을 향해 어둡고, 소외된 곳을 향해 우리의 가슴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다시 한 번 희망입니다.

2007. 7.20

서울구치소에서 이시우

참여사회편집부
2007/08/16 20:33 2007/08/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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