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세면대에서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인다. 커플 잠옷 차림인 채 자못 심각하다. 여자는 양 손에 치약과 칫솔을 움켜잡고 있다. 남자는 칫솔질을 하는 도중이었던지 입 주위가 허옇다.

“치약을 중간에서 짜면 어떻게? 끝에서부터 짜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아무데서 짜면 어떻다고 날리야, 왜 그렇게 별나, 아침부터 재수 없게”

“뭐, 재수 없어? 자기, 지금 뭐라고 했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범벅을 한 신혼의 부부 사이로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화 <결혼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이런 저런 탈출 이유와 기막힌 남한사회 정착 사연들을 품고 있는 아이들과의 만남은 내게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한반도기를 평화롭게 흔들며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칠 수만은 없는 황당함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영혼들을 교류하고 몸을 섞는 신혼부부들도 일상에서 사랑싸움과는 다른 갈등으로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부모와 자식들은 우린 한 가족이라면서 서로 으르렁거린다. 한 교회 안에서도 오만가지 사랑의 향기와 빛깔을 가지고 우린 믿음의 공동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오랜 동안 어쩔 수 없이 갈라져 사느라 그 흔한 사랑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어색하게 만나게 된 우리가 과연 하나인가, 하나 될 수는 있는 것일까.

<셋넷학교>는 아주 작은 공간이자 인생으로 보자면 참 짧은 배움의 기간이다. 그 시간들 내내 내가 품고 있었던 두려움은 무엇인가. 우린 하나이며 하나여야만한다라는 별 감동 없는 싸늘한 이성들 앞에서 마냥 쫄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일상에서의 낯섬 들에 대한 교묘한 이중성과 상투적인 배려로 하나 됨을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닌지.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 아닌 것들부터 사랑할 준비와 마음 엶이 필요하다. 너와 하나 되고자 한다면, 지금 마주서기까지 너무나도 달랐던 너의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들을 살펴야한다. 사소한 너의 ‘다름들’과 하찮기만 한 ‘차이들’이 부담스럽지 않고 받아들일만한 편안함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사랑의 둥지를 구체적으로 틀어야 한다. 작지만 큰 배움터, <셋넷학교>가 소중한 이유이다.

풍경 ‘둘’-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학교

대학시절이었다. 세상을 낭만적으로 즐기기에는 너무나 살벌하고 혼란스러웠다. 그 시절 마음의 불을 품고 있던 젊은이들이 다 그러했듯이 나 역시 역사의 정의를 위한 대의에 마음이 사로잡혔고, 몸을 던졌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향해 불을 밝히고자 거리에 뿌릴 전단을 써 내려갈 때였다. 이념을 새기던 몇몇 권의 책들 속에서 끄집어낸 해독하기 힘든 단어들로 점철된 전단을 보고 새내기인 내가 문제를 제기했고, 선배들은 당연히 무시했다. ‘이 알 수 없는 문장들로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겠어요?’

그랬다. 소통할 수 없는 것은 그 어떤 찬란한 것일지라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것들은 우리들의 아름다운 일상을 조롱했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 아바와 진추하의 음악에 미쳐있었고 아버지는 당연히 그런 나에게 일방적으로 제제를 가했다. ‘너 음악대학 갈거냐?’ 음악대학을 가지 않으면 음악을 듣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시절, 학교 현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대만큼이나 어둡고 우울했던 교복에 대해서 순진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당연한 듯 학교에서는 부모를 소환했다. 학교로 불려온 어머니는 한없이 부끄러워하셨고, 머리를 조아리며 교장에게 송구스러워했다. 순간 삶이 혼란스러웠다. 온갖 세상이 의문들로 가득 찼었고, 끝없이 솟구쳐 오르는 궁금함을 마주해줄 어떤 존재를 그리워했다. 낡은 이념과 오래된 관습에 일방적으로 갇힌 채, 소통하지 못하는 내 영혼은 깊은 상처를 품은 채 오랫동안 방황해야 했다.

슬픔의 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그 강물이 되어 함께 흘러야한다.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학교에서 아이들의 길잡이가 되어 함께 흘러가고 있는 나는 어떤 행복을 가꾸고 있을까. 우리가 꿈꾸는 대안은 분명 세상의 행복과는 다른 무엇이다. 자본이라는 시장에 농락당하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일상을 명랑한 그 어떤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더욱 당당해져야하고 조금은 더 유연해져야한다.

셋넷 아이들과 함께 서해 바닷가로 놀러갔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분교 운동장에서 잊혀졌던 옛날 놀이들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밀가루를 얼굴에 덮어쓰고, 두 사람이 하나로 묶인 다리를 절뚝거리며 티 없는 웃음들이 넓은 운동장을 바람처럼 떠다녔다.

숙소로 돌아와 시끄럽게 저녁을 해먹고는 올망졸망 둘러앉았다. ‘오늘 옛날 운동회 어땠니?’ 재밌었다거나 즐거웠다는 대답을 기대하면서 편하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홀로 탈북한 금호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며 북에 두고 온 동생이 생각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십 년이 되도록 아픈 기억들만 품고 있던 거친 몸속에서 작은 꽃 하나가 피어났고, 그 여린 향기에 취해 순간 나도 목울대가 먹먹해졌다.

셋넷의 아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리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내게 인생의 대선배들이다. 나는 이 아이들을 소개할 때 영화배우들이라고 곧잘 말한다. 내가 영화에서나 보았을 차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겪었고, 그 힘든 과정을 거슬러 지금 나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셋넷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기분이 참 좋다. 이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품고 있을 상처와 어둠들을, 밝고 명랑한 선한 기운들로 느릿느릿 씻어내었으면 좋겠다. 선택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낯선 자본주의 사회의 화려한 빛과 소리에 짓눌려 스스로 비참하다고 느끼며 한없이 초라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힘은 머리가 해결해주지 않는다. 건강하고 밝은 몸이 이 모든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는 힘의 창고다. 이 힘의 창고를 돈과 권력을 탐하는 욕심의 기운으로 채워서는 행복할 수 없다. 우리의 아이들이 착하고 온화한 기운으로 낯선 세상과 정답게 만날 수 있도록 셋넷학교는 도울 것이다.

셋넷학교의 하루는 노래로 시작한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을 벗 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 이 아이들 속에 숨겨진 푸른 별들을 본다. 움직일 때마다 반짝이는 맑고 푸른 기운들을 지켜보며 지금 여기에서 날마다 행복해하고, 이 행복한 몸과 마음으로 남한의 친구와 이웃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엮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오늘도 함께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웃음 짓는다.

박상영 문화기획자, 셋넷학교 교장
2007/08/16 20:37 2007/08/1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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