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넷이 이끌어낸 ‘새로운 차원의 시민활동’
[특집] 태안사례를 통해 본 시민행동
인터넷이 이끌어낸 ‘새로운 차원의 시민활동’
100만 명 나선 태안 기름 방제 활동의 전말
나무그늘 인터넷 까페 운영자 cosmosing@naver.com
끔찍한 환경재앙인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하나 둘 인터넷 카페로 모여들었고 태안으로 함께 달려가 절망에 빠진 검은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일구어냈다. 생태계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자발적인 시민참여에 의한 새로운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이번 태안 자원봉사가 자발적 시민참여운동의 첫 사례는 아니다. IMF 당시 범국민적 금모으기 운동, 여중생 미군장갑차 압사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 탄핵을 규탄하는 촛불시위 등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우리 사회에 희망의 빛을 비춰주었다. 반면 황우석 사건과 같이 진실과 정의가 사라진 시민 집결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는 고민으로 남는다.
태안 사고의 책임주체인 삼성과 정부는 훼손된 태안 주민들의 삶의 터전 복원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도 여전히 모르쇠와 늑장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변호사, 사법연수원생, 대학생 등으로 이루어진 법률봉사단이 피해주민을 위한 공익법률상담소를 현지에 열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면서 한국사회에 부족한 전문가의 사회참여 본보기가 되고 있다. 건강한 시민들의 단결이 단발성에 머물지 않고 폭넓은 사회적 영역으로 꾸준히 퍼져나가 보다 다양하고 진일보한 사회참여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2007년 12월초 충격적인 “태안바다 기름유출 사고(사건 책임을 물어 좀더 명확한 사건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태안 사고로 적는다)” 뉴스가 인터넷을 온통 뜨겁게 달구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발표된 검찰의 조사 결과는 “삼성과 예인선단의 쌍방과실”로 발표되었지만, 수긍하는 네티즌들은 많지 않은 분위기이다. 이 사건에 관한한 너나 할 것 없이 네티즌들은 피해자 측에 서 있으며, 또 모두 관계자들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뉴스로서 구경만 하지 않고 어떤 활동에든 참여하였다. 뉴스를 접했던 네티즌들은 자기 블로그에 해당 기사를 퍼 날랐고, 답글로 분노를 주고받았으며, 작은 손이라도 보태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선한 의지들을 모았다. 인터넷을 통하여 퍼진, 기름으로 뒤범벅이 된 기러기 사진 한 장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덮었고, 폭발적 정보 공유 능력과 파급력을 가진 매체로서의 위력을 잘 보여주었다. 이 사진으로 감성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태안 소식에 귀를 기울였고, 헌옷이 필요하다면 헌옷을 보내고, 기부금이 필요하다면 기부금을 보탰다. 기름 방제 작업은 사람 손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발 벗고 나서서 무리를 만들고 자원봉사 행렬에 나섰다. 태안을 위시한 서해안 지역을 방문한 자원봉사자들의 숫자가 100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와 ‘자원봉사자의 기적’이란 제목이 잇달았다.
온라인에서 모여 태안으로 가기까지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불과 1개월 만에 참여시킨 동력은, 정부도, 어떤 기관이나 단체도, 언론 매체 캠페인의 성과도 아니었다. 그저, 인터넷 접속하여 소식을 접한 일반 시민들이 태안 소식을 공유하면서,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새로운 차원의 시민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번 태안 사고를 수습해가면서 보여준 이런 시민들의 긍정적인 활동은, 인터넷이란 색다른 공간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서 좋은 뜻을 나누고 실행까지 연결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넓고 깊게 확장되고 성장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게 해준다. 포털사이트에 개설되어 운영 중인 인터넷 카페 <태안반도 시커먼 기름띠 걷어내고 바다 살려요>의 생성 과정과 활동 상황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뭐라도 해야겠는데…” 로 시작된 태안 돕기
뉴스를 접하고, 헌 옷을 포장해서 보내고 성금 좀 내고 그래도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인터넷을 떠돌던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태안 자료를 읽어가면서 이 카페까지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었다. 카페 회원 가입은 최근에 했지만, 초기부터 카페의 활동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고마운 경험이었다. 이 카페는 참으로 빠른 시간에 진화하고 발전하였다, 그 변화 과정은 보통 사람들의 적극적 참여와 열정이 느슨해보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조직화할 수 있는지도 잘 보여주었다. 카페 개설자 ‘묘운’이라는 네티즌이 공지사항에 올려놓은 카페 개설 이유를 들여다보면 개설 당시 상황부터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카페 개설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100% 공감하는 태안 사건에 대한 심정 그대로였다.
“화나고 복장이 터져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검색했는데…다, 저와 같은 질문이나 고민들”, “뭐라도 하러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어디 모여서 가는 데 없나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접했다. 하지만 “무언가 의지 있는 분들은 웅성웅성. 아직 환경 단체에서는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것 같고 태안군 홈피나 관공서 여기저기를 봐도 질문들뿐, 답글은커녕 아직 정보가 없어서 무엇이라도 하면, 좀더 빨리 바다가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단다. 그는 이 카페에서 “지금은 기름을 걷어내고,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작업을 하지만, 조금 안정이 되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 환경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지금과 같은 일이 발생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건 없는지 고민해 봤으면” 하고 바란다.
기성언론은 시들한데 인터넷에선 현재진행형
그는 처음부터 카페 운영 전문가도 아니었다. 추측해보면, 그의 말대로 그저 어디 가서 물어볼 곳 없으니 그동안 인터넷에서 하던 대로,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할 공간부터 만드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문제의식에서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찌 할 바 모르고 헤매던 보통 사람들은 나와 닮은 사람의 한 발짝 앞선 행동에 고마워했고, 너도나도 회원 가입으로 그의 노고에 반응했다. 그런 반응 덕에, 2007년 12월 13일 개설된 이 카페는 불과 2개월 만에 8만 6,534명의 회원과 1만 1,346개의 게시글, 143만 6,059명이 방문한 대형 카페로 성장했다. 이 정도 규모로 키워내려면, 적어도 3년 정도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아니, 대부분의 카페는 100명도 모으지 못하고, 잠정폐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카페 개설 이후, 개설자 ‘묘운’은 두 번째 공지사항을 통해 “지역별로 모임이나 팀을 만들거나, 필요한 물품들을 공동으로 구입하거나 태안 지역별 상황을 정리하거나 등등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곳 글들을 보면 의지가 호랑이 기운처럼 솟아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저와 함께 카페 운영을 해주실 분 있으신가요? 관심 있는 분들은 쪽지를 주시거나 댓글을 남겨주시면 아주 반가울 거예요. ㅎㅎ”라고 호소했다. 참 네티즌다운 표현과 소박하지만 진솔함이 느껴지는 요청이다. 회원 가입도 열심히 했던 이들은 자진해서 카페 운영진으로 응모하였고, 지역별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거나 함께 가자는 글이 쇄도하였다. 인터넷 상에 퍼져있는 카페 운영 경험자, 웹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의 참여가 속속 이뤄졌고, 게시판에는 카페 홍보나 기름방제 작업에 필요한 안내문, 아이디어 등이 쏟아졌다.
항상 새로운 소식만 추구하는 기성 언론의 속성상, 태안 소식 노출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이 카페에는 지금도 꾸준하게 태안 정보가 축적되고 공유된다. 이 카페는 운영진의 정기 채팅을 통해 발전방안을 수시로 논의하고 바로 적용하고, 정보를 나누는 일에 아직도 기여하고 있다. 지금은 각종 조직이나 단체들이 해당 카페를 이용한 홍보 활동도 하고 있어, 가끔씩 연계 움직임이 보이기도 한다. 태안 관련 카페는 <태안반도 시커먼 기름띠 걷어내고 바다 살려요> 외에도 여러 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네티즌들의 개별 블로그에서도 끊임없이 정보가 확대 재생산, 유통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시의적절하고 특화된 주제, 꾸준한 운영이 관건
그렇다면 태안 카페나 일반적인 온라인 카페의 성공적인 활동 원동력은 무엇일까? 온라인을 근거지로 시민들이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의 추동력을 읽을 수 있을까 싶어서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성공 근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온라인 활동에 익숙한 준비된 사용자들이다. 1,200만 명의 인터넷 사용자를 보유한 대한민국이다. 대다수가 평균 3~4개 카페에 가입하여 활동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필요한 카페에 가입해 글을 읽고 쓰고 모임에도 나가는 카페 활동은 어느덧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되었다. 학교 동창회, 취미 동호회, 학습 카페, 각종 단체 등 다양한 형태의 느슨한 공동체가 온라인에 열려 있다. 회원 수십 명부터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이르는 초대형 카페까지 다양하다. 온라인 공간에 익숙해져야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사람들의 필요에 꼭 부합하는 주제를 잘 찾았다는 점이다. 적시에 적절한 주제로 카페를 열어서 사용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주제보다는 목표층을 좀더 좁힌 카페들이 훨씬 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단순히 여행 카페가 아니라, 유럽여행 전문카페가 훨씬 더 눈길을 잡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사람들은 전문화된 카페에 더욱 높은 신뢰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전문 정보를 확보한 시민단체들의 카페 운영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검토될 사항이다. 단독 사이트 운영도 필요하겠지만, 이미 많은 방문자를 보유한 포털사이트 안에 개설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좀더 쉽게 호흡할 수 있는 것들부터 주제를 잡아 시작해 보는 방식으로.
세 번째로는 개설자 혹은 두서너 명의 운영진이 지치고 않고 몇 년간 꾸준히 운영해온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태안 카페의 급속한 성장을 예로 들어 시민 활동의 가능성을 설명했지만, 사실 보통의 인터넷 카페 성장은 오히려 긴 시간과의 싸움에 가깝다. 개설했다고 바로 회원이 늘지 않는다. 회원이 오든 안 오든, 해당 카페의 주제에 맞는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다 보면, 하루에 한둘씩 회원 숫자가 늘어갈 것이다. 성공적인 온라인 카페 운영의 핵심에는 헌신적인 운영진의 꾸준한 활동이 필수 요건이다.
이제,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분류해 보고, 적절한 주제를 잡아, 온라인 공간에 카페 개설을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카페에 누적된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 노출되어 1,200만 인터넷 사용자 중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필요한 정보로 제공될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요구를 충족시켜 나가다 보면 어느새 공감하는 사용자 무리와 만날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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