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_발로 쓰고 몸으로 건져낸 언어, 르뽀문학 읽기
발로 쓰고 몸으로 건져낸 언어,
르뽀문학 읽기
송기역시인, 르뽀작가 songazzi@naver.com
르뽀는 역사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에서 생략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사회적 담론에서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 허덕이는, 신문지상의 사건들에 가로막힌 한 인간의 내면과 생존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IMF가 잔인하게 낭자한 무명 씨들, 철거와 개발의 뒤안길에서 사기당하고 버려지고 소외된 삶들을 만날 수 있다. 사회적 사건이 개인들의 일상에 어떻게 칼집을 내고 지나갔는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르뽀엔 가압류 통지서를 받고, 카드빚이 쌓이고, 이혼하고, 쫓겨난 삶이 적혀 있다. 역사가 지배자의 언어라면 르뽀는 패배자의 언어로 쓰여진 것이다. 발로 쓰고 몸으로 부딪쳐서 건져내는 언어들이다. 여기서는 인물 르뽀에 한정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르뽀는 한국에서 시나 소설에 비해 주변부 문학장르로 인식되고 있거나 아예 작가들의 인식 바깥에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문학의 중요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주도 아래 22명의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3년 여에 걸쳐 사회복지회 직원, 노동자, 하층 무산계급, 사무직원, 농부 등을 인터뷰한 르뽀집 『세계의 비참』은 프랑스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역작이다.
세계 르뽀문학의 3대 걸작은 러시아 혁명을 다룬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이다.
가까운 중국에는 르뽀문학협회가 있다. 얼마 전 춘구이디·우춘타오 부부는 『중국농민조사』를 통해 농민들의 핍진한 현실과 관료들의 수탈을 다뤄 중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됐지만 8백만 부 이상 팔려나갔고 세계의 르뽀문학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독일 레트레 율리시즈 르뽀문학상을 받았다.
기록문화가 자리 잡힌 일본은 전문 르뽀작가가 천여 명이 넘게 활동하고 있다. 르뽀를 싣고 있는 주간지, 신문 매체는 3천여 개가 넘는다. 최근 에이즈 환자와 1년간 동거하며 써내려간 타마야의 르뽀집이 사회적 화제가 되었다. 몇 년째 미군부대가 있는 오키나와에서 상주하며 르뽀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 일본의 유명작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말할 정도다. 어느 중견 소설가는 르뽀를 만난 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들을 기록하다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다.
소설가 장정일은 최근 글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다루며 “시나 소설이 문필의 대도라고 생각하고, 시인이나 소설가말고는 작가를 상상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우리나라의 지식 풍토”를 질타한다. 한국의 문학상은 시와 소설이 주를 이루고 평론문학상이 다음을 잇고 있다. 시와 소설에 주는 문학상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우리와 달리 유럽은 특정 장르가 문학상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 시인 소설가는 차치하더라도 수필가가 이렇게 많은 사회에 르뽀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르뽀집이 나와도 수필집 정도로 인식할 정도다. 예술가 지원 제도에도 르뽀 부문이 별도로 신설돼 있지 않다.
사실 학자들이나 작가들이 책상과 골방을 벗어나 사회 현장으로 들어가 르뽀를 쓰는 외국에 비해 한국작가들의 르뽀에 대한 무관심은 우려할 정도이다. 참고로 작년 제1회 <한겨레> 르뽀상은 당선작이 없었다. 우리 사회 르뽀의 현주소를 드러낸 결과로 보고 있다.
한국에서 르뽀는 80년대가 전성기였다. 사회적 발언이 자유롭지 못했던 군사정권 시기에 작가들은 르뽀작가로 나서 난지도, 인신매매 현장, 탄광촌을 찾아가고 앵벌이를 만났다. 베스트셀러 르뽀집이 간간이 친구들의 책꽂이에 꽂혀 있기도 했다. 일간신문, 주간신문, 월간지 등에서 르뽀는 인기 지면이었다.
90년대에 이르면서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 신자유주의화, 언론 매체의 르뽀에 대한 무관심(원고료의 감소 등), TV·영화 등 영상 매체의 급부상, 작가들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 해외 여행 붐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르뽀는 급격히 사라져갔다.
3월이면 새 정권이 출범한다. 서울시장 시절 과감한(?) 청계천 복원공사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당선자는 새 정권 최대 사업과제로 한반도 운하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청계천으로 돌아가보자. 지방에서 서울에 오면 우선 청계천을 구경할 정도로 인산인해다. 한때 지금은 불에 타 없어진 숭례문을 관광하러 올라오던 때가 연상될 정도다. 숭례문 애도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데 반해 비정규직 투쟁 현장은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을씨년스럽다. 옛 건물에 대한 관심이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 몇천 배는 더 큰, 이 기이한 현상은 사람에 대한, 이웃에 대한 우리 사회 무관심의 현주소다. 청계천에선 단란한 가족끼리 다정한 연인끼리 사진을 찍는다. 아니 찍어야 한다. 야경의 불빛은 청계천의 진실을 가리고 있다. 밀리오레며 두타며 현대식 쇼핑상가 불빛은 현란하다. 불과 몇 년 전 이 자리에서 생존의 목청을 울리던 그 많던 노점상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03년 <삶이 보이는 창> 르뽀문학 모임에서 1년 가까이 청계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마지막 공간』 속에 그 일부가 있다. 문예진흥원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이 책은 필자로 참여한 연정의 후기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이 책을 통해 한반도 운하 예정지 주민들의 불안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언어는 입말(구어체)을 그대로 살려 기록했다. 시대의 흔적인 일본어도 고스란히 등장하고 중심 언어에서 밀려난 사투리를 되살려 언어의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이 책의 ‘여는 글’은 “이미지로 보여주는 삶과 현실적인 삶 사이를 뒤집어주고, 연결시켜주며, 회복시켜주는 매개체”로 르뽀를 정의하고 이 책을 “낡은 현실을 견디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견디며 삶을 나누는 작업”을 담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견딤의 기록이고 견딤의 흔적이다. 르뽀작가들은 황학동으로, 세운상가로, 광장시장으로 폐허의 흔적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찾아 다녔다.
폐허의 잔해는 고물노점상 아저씨, 밀리오레 매점 주인, 러시아타운의 러시아 상인, 평화시장 재단사, 노점에 앉아 사탕 파는 할머니, 세운상가 상인 등 청계천 복원공사로 인해 지금은 그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삶이 바뀌게 된 청계천 사람들이다.
황학동에서 붕어를 파는 노점상 백창기 아저씨(64세)는 1964년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하꼬방촌 무허가 집에서 잠을 자고 노가다판을 다녔다. 청계천에서 외판사원, 간판 철거, 선풍기, 곤로, 햄스터, 거북이, 토끼, 브로치, 엿, 고물, 생선, 넥타이, 티셔츠, 월남치마, 머리카락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는 청계천이 자신의 ‘고향이고 아지트이자 영혼의 안식처’라며 ‘청계천에서 죽겠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공간」의 인터뷰대상은 서울다방 장군지 아주머니(64)다. 성모 마리아 액자와 교황이 문양된 양탄자가 있는 다방을 ‘작은 성당’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거창하게 느껴지는 장군지 아주머니 이야기는 르뽀작가 김순천의 관찰력에 힘입어 빼어난 문학작품으로 완성됐다. 가공되지 않은 실제의 삶이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소설의 서사를 넘어선 감동을 준다.
아주머니는 청계천 공사 이후 손님이 들지 않아 다방 밖에서 전기 판넬을 깔고 앉아 커피, 녹차, 한방차, 꿀차 등을 타준다. 서울다방은 5층이 잘려나가고 2층만 남은 삼일아파트 건물로 인터뷰 당시 건물을 헐어내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천장은 내려앉았다. 위층 화장실과 하수구에서 떨어지는 물을 그녀는 15년 동안 맞고 살았다.
삼일아파트는 1969년 주상복합 아파트로 지어졌다. 광주에서 올라온 아주머니는 22년간 이 곳에서 어린 딸을 데리고 ‘게슈타포에 쫓기는 안네처럼 살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행복하다. 안네는 끝내 잡혀가서 죽었잖아요…의사 지바고인가…딸을 다섯 살 때…놔버렸잖아요, 손을. 나는 놔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 자신을 놔버리지 않았다는 게 독신녀로서 그게 무진장 행복했어요.”
독신녀 장군지 아주머니에게도 ‘남편이라고 부른’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남편은 본부인이 있는 공무원이었다.
“안나 까레니나하고 비슷했어요. 세상이 너무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깨진 과정이 너무너무 더러웠어요. 더러워서 혼났어요…충격을 받아서 머리가 아팠어요…지우기도 어렵고.”
계약서를 속이고, 월세를 터무니없이 100만 원씩 내게 하고, 그래서 카드빚 8백만 원으로 두려움에 떨게 하고, 다방 여주인이라고 쉽게 치근대고, 만나주지 않는다고 다방을 때려 부수는 남성 중심 사회의 제도와 폭력을 방어하기 위해 다방 한 구석 쪽방에 거울 두개를 달고 딸과 함께 ‘숨어’ 살았다. 아주머니는 이 사회에서 자신을 깨지기 쉬운 “길에 내놓은 그릇”이었다고 말한다.
아주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메디컬 센터 성형외과 의사의 말은 한국사회 의사들의 일반적인 아픈 자에 대한 시선일 것이다. “아줌마 돈이 없으면 여기 오지 말아요. 여기는 비싸니까…아줌마 손 잘려도 책임 없다는 확인서를 써 오세요.”
그래도 아주머니는 “세 갈래 길이 있으면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가운데 길을 간다고. 돌아가는 길은 없다.”고 말한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외운 적이 있고 길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쓴 적이 있는 나 같은 책벌레는 몇십 년을 써도 표현할 수 없는 문장이다.
현재 삼일아파트 자리엔 지상 33층, 지하 4층의 롯데 캐슬이 들어서 청계천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서울다방 아줌마는 ‘작은 성당’에서 쫓겨나 폐휴지를 줍고 다방 복도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부서진 미래』는 앞서 얘기한 르뽀문학 모임이 펴낸 두 번째 책으로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시민독서프로젝트에 『88만원 세대』와 함께 선정됐다. 가정복지도우미, 간병인, 노숙인, 영화 스태프, 취업준비생, 주유소 아르바이트생, 용역업체 사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간제 교사 등이 주인공이다. 특히 현대자동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동시에 인터뷰한 「닫힌 삶들」은 적나라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대립과 차별, 이를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만들어온 자본주의 시스템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됨의 거룩함과 누추함을 들여다보노라면 일반 문학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콧등 시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들여다보는 삶이 당신 자신이고, 당신의 늙은 어머니이고, 당신의 고향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르뽀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하는 작은 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없는 정책’들에 어지러운 요즈음, ‘사람이 없는 책’을 떠나 ‘사람이 있는 책’을 들고 다가올 5년을 여는 새 봄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불어가 어원인 르뽀는 현재 외래어 표기법상 ‘르포’로 표기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필자의 의도대로 실제 발음에 가까운 ‘르뽀’로 표기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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