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_인터뷰: "미래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임우섭 회원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mairim@hanmail.net
여름의 문턱을 들어서는 6월, 산천은 연두색과 초록의 중간쯤에서 잠잠하다. 도심의 담벼락엔 붉은 줄장미가 탈옥수처럼 담을 타넘고, 소복단장한 찔레꽃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마냥 향기를 은은히 내뿜는다. 천지는 나른한 평화에 잠겨 있지만 대한민국은 불꽃 튀는 역사의 한 장이 펼쳐지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신문사 사옥 사이에 위치한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의 함성이 초여름 밤을 내내 달구고 있다.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라는 인터넷 댓글이 최고의 화제가 된 요즘, ‘열공’하는 S대학교 학생을 만났다-정치학과 4학년 임우섭(22세) 회원. 86년 생이니 색깔로 삶의 주기를 표현한다면 그야말로 연두와 초록의 중간 색상이리라.
참여연대 사무실로 씩 웃으며 들어서는 모습이 흡사 교무실로 담임선생님을 찾아온 학생 같다. 우윳빛 줄무늬 면 T 셔츠에 담흑색의 바지와 운동화, 머리도 ‘범생이’ 스타일이다. 도무지 ‘상류층’으로 편승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가 않는 분위기이다.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니 든든한 회원 한 사람 만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2007년 회원 가입하고, 지난 1·2월 ‘빡세게’ 인턴 교육을 받고 ‘평화군축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활동 부서를 ‘평화군축센터’가 아니면 안 하겠다고 배짱을 부린 이력이 있어 궁금했다.
“어머니가 중학교 때 미군 차량에 사고를 입었어요.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경찰서에서는 그 차에 대해 전혀 손을 못 쓰더라고요. 그 때 이미 우리는 미국과 부당한 관계라는 걸 막연하게 느꼈죠.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불평등한 관계의 사례를 여럿 들어주었는데 그 때까진 감정적인 적대감뿐이었어요. 대학에 가서 선배 열사들의 추모집회에 참가도 하고 현대사 공부를 하면서 많은 생각이 끓어올랐어요. 또 전국을 뒤흔들었던 ‘미선·효순 사건’을 보며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겪었던 일도 다시 떠올랐고, 미국이 우리나라에 주는 의미와 상처, 제국으로서 미국이 이 시대 평화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으키는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기에 평화군축센터를 원했지요.”
차곡차곡 쌓여왔던 미국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가 대학 입학하면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전환을 하게 된 셈이다. 또한 86년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이재호 열사는 정치학과의 선배이기에 추모집회가 주는 의미도 남달랐고, 전공이 정치학이다 보니 자연히 현실 정치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3학년이 되면서 현대사학회 학회장도 후배에게 물려주고 나니 학교에서 할 일은 차츰 줄어들었다. 반면 사회나 시민단체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참여연대 외에도 대여섯 군데를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가입 동기와 인턴 활동으로 화제를 옮겼다.
“과외로 제 용돈 정도는 여유로웠기에 힘든 진보단체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참여연대는 지명도가 높은 시민단체라 인터넷 검색으로 자주 홈피에 들어가 보며 활동을 지켜보았죠. 나름대로 모니터링도 해보며 회원 가입 결정을 했지요. 회원이 되고 보니 더욱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회비를 내니까 그 내역도 알아야겠고, 저절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애착과 관심으로 시작된 회원 가입은 인턴활동으로 꽃이 피었다. 지난 1월 2일부터 시작된 인턴교육과정은 ‘참여연대의 이해’로부터 시작되었다. ‘시민사회의 이해, 권력감시 운동의 이해,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운동의 이해,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의 이해, 국제연대 활동의 이해’로 9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2월 29일 15명이 수료식을 했다.
어려웠던 그 과정을 통과한 덕분에 그는 새내기 회원답지 않게 사무실을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며 상근자들과 어울린다. 아니 평화군축센터의 자원활동가답게 모든 상근자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인턴교육프로그램에 대하여 소회를 묻자, 표정이 묘했다. 고행도 벗어나면 그리움이라는 시구를 연상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힘들었어요. 알차고 값진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것을 다 소화하기가 버거웠어요. 매일 나와서 교육, 강연, 자료조사, 조별활동, 자원활동, 평화박물관이나 희망제작소 같은 기관 방문, 글쓰기 등등 숨 가쁜 일정이었어요. 추운 겨울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학생으로 자원활동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매주 목요일 사무실에 나와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관련된 외신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보고서도 써서 평화군축 블로그에 제 이름으로 올리는 일을 해요. 어차피 졸업을 해도 공부는 더 할 생각이니 현실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기엔 좋은 활동인 것 같아요. 인턴 과정을 끝냈으니 간사님들과 결과물도 함께 만들고…. 정말 참여하는 의미를 느끼게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어디 그뿐이랴. 상반기 인턴참가자 카페에 들어가면 그들만의 열정과 고뇌가 후끈후끈하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라는 글귀가 모임방의 문패처럼 빛나고 있다.
‘미래에 어떻게’가 아니라 지금 바꿔야 합니다
‘현실’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는 분위기라 ‘청계광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초·중·고와 싸운다’는 촌철(寸鐵)을 단순히 우스갯소리로만 받아들이기엔 그야말로 현실이 너무 심각하고 야속하다. 그 많았던 대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도 무척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열패감 때문인 것 같아요. 79년엔 정권을 무너뜨려보기도 했고, 83,5,6년 열사들의 죽음을 지켜보기도 했고, 87년에는 실제로 바꿔보기도 했고, 93년에는 김영삼 정권이 말아먹기는 했지만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길을 열었고, 2002년 노무현 정권의 창출을 위해 대학생들이 앞장섰지만 결과적으론 민중을 배신한 것밖에 더 있어요. 이젠 대학생들도 ‘나서봤자 바뀌지 않더라’라는 패배감 때문에, 다시 말해 02학번 이후론 한 번도 이겨본 경험이 없다고 주저앉아버린 거죠. 그보다는 ‘토익 열심히 하고, 경험 쌓고, 학점관리 잘 해서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고시 붙어 성공하면 모든 것 해결되고, FTA? 밑에 사람들만 죽어나지 나는 상관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너무나 적나라한 표현이라 듣기도 거북했지만, ‘돈’이 신(神)이 되고 권력이 된 시대가 아닌가. 외신마저도 한국은 대통령을 돈과 바꾸었다는 보도를 인용하자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돈과 바꾼 게 아니고 돈으로 환산한 그릇된 비전과 바꾼 거죠.”
얼마 전, 한 지면에서 읽은 식자(識者)의 비탄어린 글이 언뜻 떠올랐다. 돈이 ‘세계의 세속적인 신’이 되어버린 세태. 돈·화폐·자본은 종교의 삼위일체가 되어버렸고, 혼신을 다해 돈을 추구하는 행위는 영혼의 편안함을 위해 신에게 헌신하는 태도와 닮았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갖고 있는 화폐량과 그 화폐의 소비능력으로 평가될 뿐, 윤리적 실천, 진리를 향한 기원 따위는 서푼어치의 값도 없다. 우리는 물신교라는 신흥종교의 충실한 교인일 뿐이다.
돈으로 환산된 그릇된 비전 때문에 청계광장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가. 촛불의 의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묻자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오랜만에 표출된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조직되지 않은 연대,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너도 있고, 나도 있고, 우리가 있다는 연대- 정치적인 표현입니다. 총선 투표 저조율, 정치적 무관심과 환멸 속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더욱 감동적이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권에 대하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촛불 들고 나오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야 해명을 한다는 건 두려워한다는 거죠. 지금 우리는 국민소득 4만 불이라는 그릇된 비전에 때문에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에 어떻게’가 아니라 ‘지금 바꿔야’ 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대학생들도 의심하고 회의하면서도 슬슬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진단이 희망의 불꽃으로 피어오르길 기원하면서 마무리 질문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진로와,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주문했다.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어요. 원래 관심사는 북한이나 평화문제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건 제가 평생 가지고 갈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해요. 전공인 정치학을 살려 협상문제에 대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국제정치경제, 재벌개혁 이런 쪽으로…. 애정 어린 비판? 막상 인턴활동을 해보니 NGO로서 대학생들에게 최고 기회를 준다고 느꼈어요. 인턴 끝나고 자원활동으로 이어지는 학생들도 더러 있으니 참여연대 쪽에서도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제가 회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아쉽게도 회원을 위한 공간이 미흡한 것 같아요. 휴대전화 문자 받을 때만 회원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멋쩍게 또한 어렵게 꺼내는 말투가 아직은 연둣빛이 짙은 소년 같다. 시장기 도는 해거름, 옥상에서 조촐한 생맥주 파티가 벌어진다는 전갈이 몇 번이나 자리를 흔든다. 서둘러 옥상으로 오르니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권- 청와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뿌연 기류가 북악산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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