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조중동 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ccdm1984@hanmail.net



2007년 12월 ‘대선 삼수생’ 조중동은 마침내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97년, 2002년 연거푸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하고 10년 절치부심 끝에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것이다. 몇 달 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의회까지 장악함으로써 조중동은 ‘2연승’을 거두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한나라당의 의회 장악으로 ‘조중동-한나라당-수구보수세력’의 의제동맹은 더 큰 힘을 얻게 됐다. 조중동의 주장이 주장에 그치거나 ‘개혁 흔들기’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정부정책이나 제도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은 이 동맹에 만족하지 않았다. 신문보다 영향력이 큰 방송과 인터넷이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미디어 정책의 초점을 ‘방송장악’과 ‘인터넷통제’에 두고 있는 것도 ‘방송과 인터넷이 우리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권을 넘겨줬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KBS2와 MBC 민영화, 신문방송 겸영허용 등을 골자로 한 방송구조개편을 통해 조중동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고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시나리오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방송장악 시나리오가 알려졌는데도, 그동안 정치적 독립을 누려온 공영방송의 시사보도프로그램들은 ‘친 이명박’으로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인터넷은 더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에 대한 제약 없는 비판 권리를 누려왔던 네티즌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촛불정국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이렇게 ‘아직은’ 수구의제동맹에 포섭되지 않은 공영방송과 인터넷 그리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네티즌이 있었다.


공영방송·인터넷·네티즌, 수구의제동맹에 맞서다


그러나 70~80년대 사고방식으로 ‘방송장악’에 골몰해 있던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은 객관적인 상황을 읽지 못한 채 촛불정국에서 악수(惡手)를 거듭했다. 그 핵심은 구시대적인 의제 왜곡 시도였다. 그동안 조중동과 한나라당, 수구보수세력들은 ‘사실 왜곡’을 바탕으로 조중동 지면을 통해 ‘교감’하면서 의제를 왜곡해왔다. 예를 들어 조중동이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보도를 하면, 한나라당이 이를 근거로 정치공세를 펴고, 다음날 조중동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다시 의미있는 주장인 양 부각해주면서 의제를 확장한다.


촛불집회가 시작됐을 때도 이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조중동과 정부 여당은 설득력 없는 방송, 인터넷, 연예인을 탓하면서 배후론 등을 일단 던져놓고, 이를 서로서로 부풀려주면서 촛불을 끄려했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이명박 정부는 물론 조중동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폭발시켰다. 여기에 조중동의 ‘광우병 말 바꾸기’ 행태가 알려지면서 조중동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놀라운 것은 조중동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시민들은 기존의 언론운동단체들보다 더 강력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민언련을 비롯한 언론단체에는 조중동 절독 방법을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졌고,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들에게 항의 전화를 거는 이른바 ‘2차 불매운동’이 벌어져 조중동의 광고가 급감했다.


시민들이 조중동의 왜곡보도에 이토록 적극적으로 반응한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중동의 왜곡보도나 말 바꾸기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시민사회단체들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진영에게 조중동의 말바꾸기, 왜곡보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촛불정국에서 조중동의 왜곡보도를 ‘당사자’로서 처음 경험했다. 시민들은 공기(公器)라는 신문이 나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말을 바꾸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나의 의지를 ‘선동’, ‘배후’ 운운하며 왜곡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다. 왜곡보도에 대한 ‘감수성’이 시민사회단체, 진보진영과 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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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조중동과 남겨진 과제


한편 거대 언론 조중동에 대한 불신은 새로운 미디어의 부상으로도 나타났다. 노트북과 웹캠으로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는 미디어들이 열렬한 호응을 받았고,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는 촛불 의제가 새롭게 등장하고 확산되는 대표적 공간이 되었다. 촛불집회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조중동의 왜곡보도는 현장을 있는 그대로 중계하는 미디어들 앞에서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사실 관계가 의심스러운 조중동 보도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검증’이 이뤄졌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 현상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촛불정국과 같은 특별한 국면이 아닐 때에도 ‘1인 미디어’가 조중동의 왜곡된 의제 설정에 맞설 수 있을 것인가, 의제의 ‘확장’이 아닌 의제설정자로서 1인 미디어와 온라인 토론방, 블로그 등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이들이 조중동과 지속적으로 경쟁하면서 미디어 구조 전반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등에 대해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 


촛불정국이 시작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4월 29일 MBC <PD수첩>이었다.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를 처음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그러나 <PD수첩>은 결정적 시기에, 지상파방송의 영향력과 신뢰에 기반하고, 다수의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쇠고기 협상’과 ‘광우병’을 범국민적인 의제로 만들어냈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 촛불집회가 제안되고 확산되었지만 촛불정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의제설정자가 여전히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새로운 미디어들이 이와 같은 의제설정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아울러 이들 미디어가 의제설정 능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촛불정국에서 네티즌, 공영방송, 인터넷미디어는 ‘이명박 정부·한나라당·조중동·수구보수세력’의 동맹과 정면 대결해왔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수구보수세의 의제동맹에 밀리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분명 조중동의 사회적 영향력, 의제 장악력은 훼손되었고 장기적으로 ‘신뢰의 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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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네티즌 탄압과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고, 공영방송 장악을 밀어붙인다면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수구보수세력의 의제동맹은 그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방송구조개편을 통해 공영방송을 민영화하고 조중동과 재벌의 방송진출을 허용한다면 새로운 ‘조중동의 시대’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인터넷 미디어와 소수의 진보적 매체만으로 수구보수세력의 의제동맹에 맞설 수 있을 것인지 우려된다. ‘촛불세력’들에게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인터넷 통제를 막는 동시에 새로운 미디어들의 가능성을 더 키워야 하는 두 가지 과제가 남았다.


2008/07/28 20:29 2008/07/2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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