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숲, 그 크고 넉넉한 품으로 소풍가다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mairim@hanmail.net




장맛비가 돌연 자취를 감춰버린 장마철이다.

빗줄기의 ‘몸통’은 사라지고 습기라는 ‘깃털’은 끈덕지게 우리를 휘감는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지금의 시국처럼. 우리의 아들들을 일선에 내몰아 패악의 물대포를 쏟게 해놓고 ‘몸통’들은 근엄한 자세로 법과 질서유지를 들먹인다. 덩달아 보수언론들은 촛불집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정확한 수치로 제시한다. 물론 수치의 정확성을 믿는 사람은 그들의 말처럼 ‘로또가 당첨되어 상금 찾으러 가다 벼락 맞는’ 사람만큼이리라.

약속 장소인 경복궁역 근방의 밥집으로 향하는 길목은 5공 시절로 회귀된 듯했다. 삼복더위에 건장한 청년들이 지하철 역 출구를 방패로 찍고 서 있는 삼엄한 풍경을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 분명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습기와 불볕더위 탓은 아니었다. 어리석게도 역사는 순환하는가 하는 글귀가 퍼뜩 떠올라 소스라쳤다. 대명천지 그런 일은 결코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소박한 유기농 밥상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회원모임협의회 회장 김철희 회원(39세). 반갑게 내미는 손보다 ‘송승헌표 숯검댕’이 눈썹이 강인한 첫인상이었다. 더위에 지친 심신이 시원한 숲 그늘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앉자마자 구속된 안진걸 민생팀장의 면회 일정부터 챙긴다. 행사 때마다 족발이나 간식을 푸짐하게 들고 나타나 주변을 즐겁게 했던 넉넉함이 그대로 묻어 있다. 영락없는 ‘큰 집 큰오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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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찾기’에서 찾은 행복


참여연대에 대한 인연은 98년 소액주주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개인사정으로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삼성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하는 참여연대에 매력을 느껴 후원금도 내며 적극 지지했다. 한때는 후원을 10곳 정도 하며 사회 현안에 관심을 가졌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외환위기를 함께 겪었고, 참여연대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내민 건 2003년부터이다.

회원 모임인 ‘작은권리를 지키는 사람들’(현 ‘행복찾기’)에서 시작된 적극적인 활동은 단박에 총무 자리를 안겨줬다. 그것도 연임으로. 이어 2004년에는 회원모임협의회 총무로 운신의 폭이 넓혀졌다. 아울러 참여연대 살림살이를 안팎으로 추스르며 상근자 및 회원간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에 앞장을 섰다. 그런 그를 주변에서 가만히 지켜만 볼 리가 없다. 

드디어 올해 2월 회원모임협의회 회장, 참여연대 집행위원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신임회장으로서 회원모임협의회의 방향을 제시해달라는 공식적인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13개 회원모임과의 유대관계를 긴밀히 하기 위해 틀을 잡는 것을 우선으로 하려고 합니다. 회원뿐만 아니라 간사들과의 소통에도 앞장을 서서 어려운 참여연대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로는 간단하게 피력했지만 이미 그의 행보는 거미줄처럼 엮여가고 있다. 참여연대 회원과 시민들로 구성된 ‘서해안살리기 시민봉사단’을 결성하여 태안군 모항항 자원활동를 다녀왔고, 허세욱열사 1주기 추모행사, 회원과 간사간 소통의 시간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 회원 대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7월 말까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위해 적극적인 홍보를 할 생각이라며 의욕에 차 있었다. 구체적인 활동 영역에 대해 묻자,

“일단 후보 토론회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지하철역 주변을 중심으로 투표를 독려하고 올바른 사람, 정치색에 물들지 않고 오로지 미래교육을 위해 철학이 있는 사람을 뽑자고 홍보해야지요. 휴가철엔 우리도 잠정휴가를 하고 9월부턴 참여연대 창립기념일 행사 준비 동참, 회원 확대 캠페인, 후원금 모으기는 연중행사로 벌여나갈 겁니다. 또한 참여연대 발전과 활동에 있어 역량 있는 회원- 자기분야의 전문가를 어떤 식으로 발굴하여 함께 할 것인지 모색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에서는 늘 선두에 서서 회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신입회원에게는 친절히 다가가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끈끈히 했다. 서먹해하는 회원에게는 회원모임을 소개하며 함께 해보자고 권유도 하며, 때론 ‘행복찾기’를 ‘강추’하기도 한단다. ‘행복찾기’는 ‘작지사와 작은권리’의 새로운 명칭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휴대전화요금 인하 운동 등으로 서민의 입장에선 결코 ‘작은 권리’가 아닌 공익을 위해 활동한다. 노숙자나 독거노인을 위한 자원활동도 그 중의 하나이며 이를 통해 행복을 업그레이드 하는 모임이다.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퇴근 후엔 촛불집회와 참여연대가 또 다른 근무처가 된 게 회장이 되고 난 후의 일상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웃음 끝에는 깊은 그늘이 보였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참여연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보수언론과 권력에 기생하는 급조된 일부 보수시민단체는 ‘깨춤’을 추며 참여연대 흠집 내기를 시민운동으로 착각하는 실정이다. 지난 6월 30일 새벽, 참여연대 건물에 무단으로 난입하여 압수수색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변에는 사복경찰 100여 명을 배치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해놓고 문까지 뜯고 들어와 기물을 파손하고, 사무실 집기를 가져가고, 상근자들에게 신분증까지 요구하고…. 이젠 포털 사이트까지 제재하겠다고 하니 다시금 군홧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지. 모두가 ‘뿔나’고 ‘뚜껑이 열리’는 나날인데 회원을 대표하는 그의 심경은 오죽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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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의 자격- 시민단체, 정당, 기부단체 가입이 필수


대화는 자연스럽게 촛불집회 쪽으로 불이 지펴졌다.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선 서민생활에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탄핵 때 보셔요. 탄핵 문제 하나로 성공했고, 재벌개혁도 타깃을 삼성 하나로 하니 다른 대기업들은 알아서 꼬리를 내리잖아요. 촛불집회도 처음엔 쇠고기정국에서 힘을 받아 언론개혁과 물·전기·가스 관련 공기업과 건강보험 민영화문제 등으로 외연을 확장해 나갔어야 하는데, 중간에 많은 사안들을 다루다보니 결집력이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단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하고, 중장기적으로 할 건 조급증을 갖지 말고 시민과 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언론 개혁만은 변함없이 꾸준히 해야 할 이 시대의 과제입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촛불집회에 대한 ‘선택과 집중’ ‘집중과 분산’의 역할을 강조했다.

“쇠고기 문제는 계속 감시하여 추가협상의 부당성을 공론화하여 재협상을 끌어내야 하며, 특히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유통업자들의 농간을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합니다. 원산지 속이기, 섞어서 팔기 등 유통의 문제점을 소액주주운동처럼 밀고 나가야 우리의 건강권이 보장될 것입니다.”

잠시 뜸을 들이다 ‘깃발문화’에 대하여 소신 있는 발언을 했다.

“깃발문화는 시대의 흐름 속에 효과도 있었고 큰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때론 우리 스스로의 영역을 좁히고 부작용을 낳기고 하죠. 2002년 ‘효선·미선 양 사건’으로 촉발된 전국적인 추모 열기로 ‘광화문 지킴이’라는 자원활동가들을 불러모았죠. 그 땐 전 군중 속을 다니며 단체의 깃발을 내리자고 주문했죠.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고 훨씬 더 결속력이 강화되더라고요. 진보 활동은 전술이 다양해야 합니다. 이념과 당위성에만 집착하다 보면 한계가 있어요.

조선일보가 춘천에서 해마다 정부의 지원금으로 개최하는 ‘춘천마라톤’을 반대하기 위해 생긴 ‘안티조선마라톤’ 대회가 왜곡과 편파적인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조선일보의 행위에 반대하는 사람들만 행사에 참여할 게 아니라, 참여의 폭을 넓혀 순수하게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들 및 지역주민들도 많이 참여하는 큰 축제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뜻도 많은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티조선마라톤’이 명실상부한 지역의 축제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생활과 접목되어야 환영을 받는데…. 한마디로 전략은 진보적이고 전술의 폭은 넓혀 깃발로서 태극기도 보수에 선점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느 때부터 보수의 깃발은 태극기가 되어버렸던가. 과연 진보를 상징하는 깃발로 우리는 무엇을 들고 나갈 수 있을까. 모두가 착한(着韓)사람이지 미친(美親)사람은 몇이나 될까. 성조기 대신 태극기를 든 ‘미친사람’을 보수라고 칭할 수 있을까. 고민과 회의를 반복하며 깃발과 관계없이 광장으로 나온 사람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

열정과 다변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밥상을 바라만 보는 격이 되었다. 그러나 시장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시대에 당면한 과제가 무엇이며, 마지막 질문인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언론개혁이지요. 언론이 바로 서야 역사가 바로 서고 국민들이 바른 가치관을 갖는데 편파· 왜곡 보도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수구신문이 방송까지 장악하려고 하니 어찌 나라가 바로 서겠습니까. 안티조선운동을 그렇게 벌여도 그들의 패악은 하늘을 찌르고 조선일보 한 마디에 검찰, 경찰, 국정원, 청와대까지 움직이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천년만년 지키려고 하니 점입가경이죠.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끈기 있게 언론개혁을 해야지요.”

2003년 그는 언론개혁을 갈망하는 시민, 누리꾼,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참언론을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2년 간 홍보기획국장의 직함으로 종횡무진 선두에 섰고,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를 꿈꾸기도 했다. 이제 그 꿈을 참여연대에서 접목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애정 어린 비판이라?’ 독백처럼 되뇌었다.

“간사님들 고생이 많죠. 서로 어느 장소에서 보든 따뜻하게 인사하면서 즐겁게 ‘운동’합시다. 회원 관리는 시민참여 팀에서만 할 게 아니라 각 부서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였으면 해요.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관심 있는 회원을 발굴하여 참여연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확인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활동 공간이 있어야 하죠.”

덧붙여 말하기를, “민주시민이라면 사회에 대해 불만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시민단체·정당·기부단체의 가입은 기본입니다. 최소한 한 개라도 가입해서 제 역할을 못 하는 대의민주주의나 정부를 감시해야 합니다. 더 이상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외계층이라는 말부터 사라져야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거죠. 지금 힘을 모을 때입니다.”

‘큰 집 큰오빠’의 여유로운 웃음소리가 때늦은 밥상에 가득 흘러넘쳤다. 서로 서둘러 수저를 드니 ‘한 솥밥 먹는’ 즐거움이 삼복더위를 비켜가고 있었다.


2008/07/28 21:24 2008/07/2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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