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가린 것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드디어(?)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혹시 ‘드디어’라고 말하는 제 삐딱한 심뽀를 눈치 채셨나요? ‘65억 지구촌을 감동과 환희의 세계로 끌어들였다’던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던 16일 내내 맘이 불편했습니다. 왜냐구요? 김 선생도 알다시피 제가 우리 사회의 경쟁 시스템에 아예 진입도 못한 처지이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사소한 종류의 경쟁조차 버겁기만 하지요. 갖가지 열망이 버무려져 치열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 간 경쟁이 펼쳐지는 올림픽엔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스포츠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애초의 10-10이라는 목표를 초과 달성해 종합 7위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아시아 2위라지요. 무엇보다 일본을 누른 게 우리를 환호하게 합니다. 이번 올림픽이 금메달에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등 어떤 대회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일본은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모습은 그대로이지 않았습니까. 또한 평소 국가에 대해 별무생각이다가도 올림픽처럼 국가 간 경기를 할라치면 무조건 한국을 응원하고 마는 본성도 마땅치 않습니다. 귀화선수가 점점 늘어나는 현실에서 국가 간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구요. 하야카와 나미(엄혜랑)와 스카이 킴(김하늘), 그리고 당예서(탕나)는 어느 나라 선수일까요.

무엇보다 올림픽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던 이유는 세상이 온통 올림픽으로 뒤덮인 게 불만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펼쳐도, 인터넷에 접속해도, 텔레비전을 켜도 온통 올림픽뿐이었잖아요. 어느 소설가의 독설처럼 ‘짜증스러운 공해’까지는 아니었지만, 한국의 금메달 획득 장면은 하도 반복되어서 저는 박태환 선수가 오전에 금메달 따고 저녁 경기에서 또 메달을 딴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저도 4년간 절치부심 끝에 한국에 첫 금메달 낭보를 전해준 최민호 선수의 경기부터 9회 말 병살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며 9전 전승의 기록으로 한국에게 마지막 금메달을 안겼던 야구 경기까지 볼 것은 다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각본없는 드라마’이더군요.

하지만 강박적으로 재생되고 반복되는 한국의 메달 획득 장면 때문에 가려진 많은 뉴스들을 떠올리며 조바심이 났습니다. 언니 게이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죄 판결문이 마르기도 전에 8.15 특별 사면을 받은 경제인은 올림픽 기간 동안 비난마저 사면 받았습니다. 촛불 관련 소식은 한겨레나 경향 정도에서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지요. 백주 대낮에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서명을 받기 위해 서명판을 꺼내는 순간, 영장 제시도 없이 온갖 물품을 다 가져가버렸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 70일이 넘어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죽는 거 빼놓고 뭐든지 다해보았다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이제 죽음마저도 불사하고 있는 듯합니다. 소금과 효소, 응급처치마저도 거부하겠다는 단식자를 보며 저는 아침 조간신문을 받아보기가 두렵습니다. 땡볕 무더위 아래, 억수 같은 장대비속에, 이제는 가을 찬바람 속에서 그저 교섭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이 죽을까봐 정말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1,000일이 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보며 무력감은 더해가는데, 정작 해결의 칼자루를 쥔 사측이나 중재에 나서야 마땅한 정치권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올림픽 경기를 보는 제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게지요.
  
어느덧 9월입니다. 9월 10일은 14년 전 참여연대가 창립한 날이지요. 십년 넘게 참여연대에서 한솥밥을 먹다보니, 9월은 이제 가족의 기념일보다 더 중요한 달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9월 8일에 창립기념 후원의 밤이 있고 27일에는 회원대동제가 열릴 예정입니다. 행사를 준비하다 우연히 참여연대 창립선언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참여연대 통인동 새 보금자리에 와 보신 회원분들은 아시겠지만, 참여연대 입구에는 창립선언문이 걸려 있습니다. 창립의 초심을 잃지 말라고 일부러 그 곳에 두었는데, 정작 그 집에서 생활하는 저는 창립선언문을 참으로 오래간만에 읽었네요.

창립선언문에는 참여연대가 창립하던 1994년 상황이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길거리에서 벌어졌던 80년대와는 다르다고 적혀 있더군요. 독재타도를 외치며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때와 90년대 민간정부가 들어선 시기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한참동안 읽어보았습니다. 김 선생, 역사가 퇴행하고 있는 걸까요? 
억압적인 정부의 반 민주성의 상징이었던 최루탄 연기가 최루액이나 색소가 섞인 물대포로 대체된 것 외에 2008년 현재 바뀐 것은 무엇일까요? 최근 조중동에 광고를 실은 기업의 리스트를 인터넷에 게시한 누리꾼들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한 소장학자가 ‘견해의 표명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면에서 우리는 유신시절의 긴급조치 시대로 다시 돌아간 것과 같다’고 통탄했습니다. 어찌 유신시절을 상기할 만한 대목이 그뿐이겠습니다. 시민사회에 재갈을 물리고 포박하려는 시도가 한둘이 아닙니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 창립선언문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절로 우울해지는군요. 그래도 참여연대 창립의 기쁨을 나누는 잔치는 해야겠지요.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함께 가겠다는 마음도 보여주세요. 

9월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뵙지요.

2008/09/01 19:34 2008/09/0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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