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_인터뷰: 사진으로 담아내는 세상이야기
사진으로 담아내는
세상이야기
이영동 회원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mairim@hanmail.net
절기로는 분명 가을인데 도심의 한낮은 땡볕더위이다.
에어컨으로 선풍기로 바람을 일으켜보지만 마음은 시골집 어귀의 느티나무 그늘에 가 있다. 마지막 열매에 단맛을 깃들게 하는 햇살이라고 찬미하지만 도시인들은 열매의 고향을 모르니 덥다고 아우성을 칠 수밖에. 저녁이면 또 으스스하다고 몸을 움츠리며 창문을 닫고. 반복에 익숙한 일상이라 무덤덤한 일과인가.
해질녘, 참여연대 사무실 근방에도 가을빛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다. 뒤뜰 좁은 공간에서 몸을 부대끼며 여름을 난 백양나무도 물기를 털고 있는 듯하다. 제 세상인 양 뻗어나가던 박주가리의 덩굴손도 멈췄고 그 끝에 흰 꽃송이가 힘없이 달려 있다.
끝없이 순환하는 질서 속에 한 순간을 영원으로 담아내는 예술이 있다. 사진- 기술 복제 시대를 위해 호출된 예술이요,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지만 날짜 지난 입장권이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오묘한 순간을 포착하는 ‘삽시간의 황홀’이다…. 사진에 대한 상찬들이다.
속전속결로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있다. 참여현상소의 작은 거인 이영동(47세) 회원. 카메라를 잡은 지 3년 남짓한 시간인데 업(業)으로 착각할 정도이니 그의 실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지하 느티나무 홀에서 전시되고 있는 ‘촛불사진전’을 보며 전문가다운 시각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친절한 임진각’으로 자신을 표현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들어서는 큼직한 카키색 카메라 가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단아한 모습의 그가 들어섰다. 크림빛 줄무늬 상의 속으로 언뜻 보이는 아기자기한 남방이 따뜻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그의 눈빛은 안경 너머로 고요하고 깊었다. 조심스럽게 다탁에 마주 앉으니 은은한 감잎차 향이 긴장감을 덜어간다. 내친 김에 단순한 질문으로 자리를 폈다. 왜 느지막히(?) 사진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단숨에,
“제일 간단하잖아요.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니까요. 나를 표현하기 가장 쉬운 도구죠.”
의외의 답변에 수긍하며 썰렁한 대답이라고 맞장구를 치자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국문학 전공자이기에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했었다. 2003년 중국 일을 접고 한국에 와서 다시 일을 시작하며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카메라 잡게 되었다. 그림이나 글쓰기는 내공이 필요하지만 카메라는 그런 과정 없이 가능했다면 소년처럼 웃었다.

말은 그렇게 쉽게 했지만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그가 얼마나 치밀하고 치열한 사람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애정이 녹진녹진한 글과 사진들이 줄을 서 있다. 애초 시작은 사회적인 약자, 소외된 사람들 특히 소년소녀가장을 사각 프레임 안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란 점입가경이 아닌가. 분단의 현실과 자폐증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그 축은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비록 늦깎이 사진작가이지만 그의 행보는 시종일관 종횡무진이었다. 그 결과 작년 6월, ‘친절한 임진각’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반응도 뜨거웠다. 그는 전시회를 위해 주말마다 임진각을 갔었다고 한다. 1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우연히 임진각을 갔다 참으로 우울하고 씁쓸했어요. 분단의 현실, 이산의 아픔을 상징하는 임진각이 놀이동산, 엔터테인먼트 백화점처럼 변해가는 현실이 지금 우리의 삶이더군요.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놀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임진각이 친절하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더군요.”
‘친절한 임진각’의 <작가노트>로 그의 항변을 옮겨본다.
“주연과 조연이 바뀐 임진각의 아이러니는 주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변화를 드러낸다. 이는 존재 가치가 자신의 상품 가치와 등가로 매겨지는 오늘날 보편적인 모습이다. 탈냉전시대 분단 현장 한가운데에 등장한 놀이공원이 2006년 대한민국의 단편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임진각의 변화된 공간에서 동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강력하고도 무차별적인 보편성을 본다.”
시대에 대한 고민을 희화화된 임진각을 통해 표현했고 결과는 당연히 A+이었다. 존재 가치가 상품 구매력과 소비 능력으로 평가되는 세상이니 사람들은 심각할 필요가 없다. 쉽게 가제트의 신전으로 몰려가고 기꺼이 휴대전화의 노예가 된다. 지성과 이성의 성채를 허물고 세상을 유치한 놀이공원으로 만들며 인생을 오직 ‘즐김’으로 올인 한다. 이런 현상에 반기를 들고 곳곳에 앵글을 들여대는 이가 이영동 회원이다. 탈속의 현인답게 말은 아끼고.

‘촛불사진전’으로 자리를 굳히다
최근의 눈부신 활약은 촛불사진전을 주도한 일이다. 회원모임인 참여현상소 회원들의 작품전으로 지하 느티나무 홀에서 전시되고 있다. 출품작 모두가 현장감을 살린 압권으로 그날을 지하 홀에 그대로 재현시켜놓았다. 작가다운 시각으로 평범한 장면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촛불의 소망을 강물로 표현하기도 했고, 촛불소녀의 결의에 찬 표정, 장애인 아저씨의 목발 옆에 ‘이명박 누가 이기나 함 해보자’라는 피켓과 허허로운 웃음, 명박산성의 외성 역할을 한 의경들의 불안한 눈빛과 위태로운 인의 장벽, ‘연행자를 석방하라’며 홀로 피켓을 들고 있는 남자의 침묵…. 그의 작품에는 사람이 조연이고 표정이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전이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렵게 질문을 했다.
“당연하죠. 일반인들은 사진에 대하여 크게 관심이 없어요. 취미로 하거나 사진에 대하여 애정을 가진 사람만 눈여겨보지요. 더구나 이미지가 난무하는 시절이니 광고나 홍보 전단지 등을 통해 사람들의 눈은 자극적인 것에 약하고 시선은 너무 멀리 가버렸어요. 뿐만 아니라 매스컴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촛불집회 사진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흥미를 잃어버린 거죠.”
정곡을 찌르는 답변이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보급으로 사진에 대한 개념이 기술적인 측면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지적은 정확한 예단이다.
촛불사진전에서 무엇을 담아내려고 했으며 그 결과는 만족했느냐고 물었다.
“사진의 절반은 인물이었고 절반은 풍경이었습니다. 촛불집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촛불이 우리시대의 대표성을 뜻하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나온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물 중에서도 유명인이나 정치가는 찍지 않았고 딱 한 사람 강기갑 의원만 찍었죠. 나머지 인물은 촛불소녀, 넥타이부대, 시골에서 온 아줌마, 평범한 시민들을 찍었어요. 결과는?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지만 나중엔 기록으로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기층민중의 삶을 프레임 속으로
사진은 언어요 소통의 기호라고 한다. 그는 사진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무엇과 소통하려는 걸까. 소승적으론 자아실현의 한 과정으로 사진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면, 대승적으론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자 한다. 기존의 작가들,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던지는 직설적인 발언보다는 기층민중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애쓴다. 잊혀져가는 민속과 풍물들, 한 번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과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현실에 포커스를 맞춘다. 짧은 시간에 독보적인 경지까지 나아간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예정되어 있었던 ‘시민경제교실’ 수강시간이 가까워오자 서둘러 마무리 질문으로 들어갔다. ‘9월 경제위기설’로 흉흉한 분위기를 전문가로부터 듣고자 마련한 자리이니 시간을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했다.
“2004년 가을 회원가입을 했지요. 암울했던 시절 학교를 다녔기에 늘 가슴이 끓고 있었죠. 하지만 사업차 중국을 오가며 직접적으로 현실참여가 어려웠고, 그러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카메라도 만지게 되었고 참여연대에 적극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동안(童顔)인데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니…. 절망의 시절을 관통해온 사람들 특유의 울분과 분노가 있으리라. 단지 드러내지 않을 뿐. 그 때문일까,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참여연대의 운동 방향을 비장모드에서 발랄모드로 전환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젠 시민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놀이의 장도 만들어주고…. 그야말로 시민과 함께 갈 때가 아닐까요? 자체 내에서도 많이 고민하겠지만.”
안팎을 두루 헤아리는 시선이 따스하다. 바깥은 벌써 어둑해졌고 시민경제교실의 불빛도 훤하다. 그 아래 다정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든다. 경제를 우려하고 시절을 비감해하는 사람들이 장(場)을 편다. 놀이의 장이 아닌 위기 진단의 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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