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를 청문한다
인사청문회는 순수한 의미에서 보면 국회내 정당간의 정파적 이해나 갈등으로 확산될 이유가 없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국회의원들은 매 선거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고 거기에서 인정받은 사람들만이 국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민적 정당성과 신뢰성이 최소한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미 엄밀한 검증 과정을 통해 국민의 대표로서의 권위와 리더십을 행사하게 되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그 어떤 국민적 검증과정 없이 임명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나라 국무총리와 장관들에게 어떤 국민이 그 권위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는가? 이 나라 대법관과 대법원장에게 어떤 국민이 사법권의 권위와 정당성을 인정해 주었는가?

국회는 기본적으로 인사청문회가 갖고 있는 취지를 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일단 국회에서 제정한 인사청문회법의 내용을 보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문제점으로 보이는 인사청문회법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사전준비기간을 10일밖에 설정하지 않은 것은 고위 공직자의 재산, 납세, 기타 경력 등을 엄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둘째, 사전준비기간 중 일반 국민들의 참여나 시민단체의 개입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음으로써 국민적 신뢰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정당성의 장치를 결여하고 있다.

셋째, 청문회 기간을 단지 2일로 규정함으로써 후보자에 대해 충분히 설명되거나 규정되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기회를 단절시키는 형식적인 청문회로 전락했다.

넷째, 청문회를 마친 뒤 본회의에 회부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실제로 청문회를 현장에서 진행한 특위 위원들이 당해 후보자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을 그대로 정리하여 담은 결과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단순히 경과만을 정리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어서 청문회를 진행하지 않은 다른 의원들이 어떤 근거로 표결을 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의 자료를 전혀 제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상의 이유들을 볼 때 국회는 행정, 사법과 독립된 권력의 한 축으로서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 정체성을 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도 전혀 갖고 있지 않음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러한 국회의 직무유기적 태도는 지난 15대와 비교해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의 경우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켜 놓았으며, 한나라당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왜 해야 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부족함으로 인해 형식적인 진행에 이끌려 가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법관 청문회의 경우 이회창 총재 자신이 대법관 출신이어서 오히려 여당보다 더 형식적으로 임했다는 것을 여기 저기에서 드러내었다.

아울러 인사청문회라는 제도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국민적 정당성 없이 행사되던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을 국민적 검증을 통해 인정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정당과 청문회 특위위원들뿐 아니라 전체 국회의원들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의 청문회 기간 동안 우리는 국회의원회관을 방문하여 약 130여 명의 의원과 보좌진을 접촉하였다. 그들의 일관된 반응은 시민단체가 고생은 하는 것 같은데 부질없는 노력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짜여진 판에서 움직이는데 이런 시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권의 자세와 의식으로 말미암아 국민적 열망을 담은 인사청문회는 완전한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단지 참여민주주의의 활성화와 민주주의의 기본적 토대가 되는 권력간의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는 틀을 도입하게 되었다는 형식적인 차원의 의미만을 남겨 놓았을 뿐이다.

고위 공직자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업무수행 능력, 정치지도자로서의 도덕적 권위, 국민대표자로서의 정치적 역량, 시대상황 변화와 사회집단 현상에 대한 정책 조망력 등을 총체적으로 검증하고, 인선 자체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인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시행된 인사청문회를 끝내면서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방향을 몇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공직후보를 검증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정보 수집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현행 10일로 되어 있는 사전조사 기간을 30일 정도로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해당 정부기관은 성실하고 내실있는 자료를 제공해야 하며, 국회가 요구하는 자료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자료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국세청은 납세, 재산관계, 주식, 증권 등의 자료를 꼼꼼히 챙겨 제출해야 한다. 아울러 이를 거부하거나 부실하게 자료를 제출한 경우에 대해서 국회가 처벌을 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 청문회 기간도 7일 이내로 폭넓게 규정해놓은 뒤, 필요에 따라 일자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문회 특위를 그때 그때 구성함으로 인해 소요되는 낭비적 정쟁과 시간을 없애기 위해 공직후보자별로 소관 상임위를 정해 청문회를 진행하도록 하면 전문성을 보강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청문회 종결 후 경과보고서를 채택하도록 되어 있는 부분을 개선하여 결과보고서를 채택하여 본회의에 권고하도록 해야 한다. 청문회에 참여한 의원들 각자가 공직후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한 뒤, 이것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정리하여 본회의에 권고하여 전체 의원들이 표결에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책임을 담아 내지 못하고 있는 경과보고서 채택은 의회의 권한과 직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임명동의 및 선출안에 대해서도 다른 안건과 같이 전자투표를 통해 공개적으로 표결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이 아닌 문제에 대해서까지 무기명으로 표결에 임한다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처사로 큰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청문회를 종결한 후 공직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또는 선출에 대한 안건은 가능한 한 당론 없이 의원들 각자의 정치적 소신과 입장에 따라 자유투표를 하도록 해야 한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올 가을 헌법재판관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기다리고 있다. 정치권은 철저히 검증된 지도자만이 국민적 신뢰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직시하고 부족한 제도적인 내용을 보완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인사청문회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양세진 참여연대 시민감시국 부장
2000/08/01 00:00 2000/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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