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쌈짓돈으로 전락한 국민혈세
2000/2000년 08월 :
2000/08/01 00:00
정당국고보조금 이대로는 안된다
현행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제3조에서는 “보조금이라 함은 정당의 보호·육성을 위하여 국가가 정당에 지급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말 그대로 국가가 정당발전을 위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액수도 지난해는 약 252억원이 지급되었으며, 선거보조금까지 지급된 1997년과 1998년도에는 각 504억원과 818억원이라는 등 엄청난 규모이다.
이 같은 국고보조금은 각 정당의 정치자금 조달내역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의 경우 여당 프리미엄을 통해 한나라당에 비해 거의 7배 이상 기부금을 모금한 민주당만이 정치자금 중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수준을 보일 뿐,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각 52%와 42%로써 절반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3당 모두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5.4%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형식적인 국고보조금 사용 용도 제한해야
그렇다면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국고보조금이 그 취지대로 ‘정당의 보호와 육성’을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국민세금을 쓴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그 사용내역에서 과연 투명하고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행 국고보조금 제도는 정당의 정치자금 조달을 보다 용이하게 함으로써 부패정치를 미연에 방지하고 정당운영의 안정성을 뒷받침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의 운용실태와 그 사용내역을 들여다보면 마치 ‘눈먼 돈’처럼 지출에 관한 통제 및 검증장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고보조금이 ‘정당의 보호와 육성’이라는 순기능보다는 ‘정당의 사당화와 고사(枯死)’라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제19조는 국고보조금의 용도제한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보조금은 정당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로서 인건비와 사무소 운영비 그리고 정책개발비 등 법률로 규정한 10개 항목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입법취지를 강조한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에 보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용도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법규의 형식만 규제라는 틀을 가질 뿐 실상 그 내용은 이렇다 할 규제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경비사용의 용도를 규정한 개념마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고보조금의 사용용도는 ‘범주의 포괄성’과 ‘개념의 추상성’으로 인해 이미 용도제한의 취지를 상실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주요 정당의 국고보조금 지출내역을 보면 어떤 항목을 보더라도 식비와 인건비가 포함된 것은 기본이고, 자민련의 경우 조직활동비로 사용한 3억7천여 만원 가운데 식비가 무려 약 2억1천여 만원에 달해 조직활동비의 57%이상이 식비로 나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각종 명목의 간담회가 수없이 있으며, 심지어 ‘총재사모님 오찬 간담회’라는 명목으로 국고보조금이 지출되기도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각종 직능단체에 엄청난 돈이 지급되면서도 대부분이 ‘정책개발비’로 처리되는가 하면, 총재가 주는 선물이나 심지어 수재의연금 같은 것도 국고보조금으로 처리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책개발비와 관련해서는 제19조 ②항에 보조금 총액의 100분의 20을 정책개발에 쓰도록 규정하고는 있지만, 정책개발에 관한 구체적인 항목 없이 추상적으로 표현해 놓았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정책개발비라 하여 처리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따라서 별도로 규정해 놓은 정책개발비까지 이 정도라면 국고보조금의 용도규정은 사실상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지출내역 증빙자료도 부실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제19조 ③항은 “정당의 회계책임자는 보조금에 대하여 별도의 계정을 설정하고 다른 정치자금과 구분하여 경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국고보조금에 대한 관리를 강조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게다가 제④항에서는 중앙선관위로 하여금 필요할 경우 보조금 지출을 조사·확인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국고보조금은 바로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지출에 대한 엄격한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 각 정당의 국고보조금 지출내역에 대한 증빙자료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부실자료로 꽉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출내역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대부분 생략되었으며, 그나마도 법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명세서나 간이영수증 심지어 지출결의서 등이 증빙자료로 제출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정당의 국고보조금 지출내역에 대해서 자체 열람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증빙자료 가운데 46.3%가 세법상 인정하기 어려운 증빙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가운데서도 명세서가 22.7%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지출결의서가 8%, 입금표 6.7%, 자체 영수증 4.1% 순이었다. 물론 영수증 등이 없는 경우도 2.9%에 달하는 등 부실규모가 예상외로 컸다. 부실비율을 각 정당별로 보면 한나라당이 77.9%로 가장 높았으며, 민주당이 35.7%, 자민련이 13.9%의 부실비율을 나타냈다. 물론 법정 영수증이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건실하다는 증거는 아니지만, 명목상의 부실비율을 보면 자민련이 비교적 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제24조 ③항은 정당의 회계보고에서 영수증이나 기타 증빙서류의 사본을 첨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서 조항에서 “중앙선관위 규칙이 정하는 영수증 기타 증빙서류를 구비하기 어려운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라고 함으로써 대폭적인 예외사항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출내역에 대한 진위여부나 증빙서류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 등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조사하기에는 제도적으로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행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의 개정방향은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특히 국고보조금과 관련하여 지출과정에서의 엄격한 증빙자료 제출과 회계보고의 신뢰성은 국고보조금제도 운용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이와 함께 용도제한 등과 관련해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국고보조금이 지정한 용도 외에 쓰이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수입 지출의 투명성 확보가 관건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점차 줄여나가야 하며 결국은 폐지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당원을 기본 단위로 하여 정당간 상호경쟁하면서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정당의 올바른 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는 일정한 단계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결코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 전제로 해서 현행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가운데 시급히 개정되어야 할 대표적인 것만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보조금 배분율 : 현행 방식에서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추가하여 Matching Fund로 한다.
보조금 배분방식 : 중앙당과 지구당 그리고 당 정책연구소로 나눠 그 비율을 4:4:2로 한다.
보조금 용도 : 전액 정책개발비로만 쓰도록 한다. 단, 정책개발비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다.
보조금 조사강화 : 보조금 사용과 관련해서 선관위가 철저하게 조사하고 위법사항이 있을 경우 보조금 지급 규모를 줄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전면 중단한다.
증빙자료제출 : 세법상 인정되는 정식 증빙자료만을 인정하며, 예외조항을 삭제한다.
지금처럼 느슨한 법규를 이용하여 국고보조금을 마치 정당의 쌈짓돈처럼 방만하게 쓰거나 지출과 관련된 증빙자료를 불성실하게 제출한다면 더 이상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보호나 육성에 기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고보조금 무용론이 급속하게 대두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가에 재정적 여유가 있어서 그 여분으로 각 정당에 국고보조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대안을 모색하고, 바꿔야 할 때는 바꾸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국고보조금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 참에 새롭게 바꿔서 정당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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