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회복으로 모두가 행복해 지는 WIN-WIN선택을
2000/2000년 08월 :
2000/08/01 00:00
의약분업과 의사폐업
이번 의사집단폐업사태에서 우리 사회가 분명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무소신의 무능력하고 조정력을 상실한 정부였으며, 근거가 불분명한 엘리트 의식과 여전히 소아적(小我的) 입장을 극복하지 못해, 국가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구체적 전망도 제시하지 못한 채,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폐쇄라는 비인도적인 결정마저 내리고 만 의사들의 사회적 미성숙과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대한 ‘전문성’이라는 몸통이 가질 수 있었던 파괴력이었다. 또한, 의사들의 폐업으로부터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켜내기 위해 일정부분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7만 명밖에 안 되는 의사라는 전문가집단에게 상당부문 고전하고 있는 시민, 노동단체들과 여전히 의사라는 전문가 앞에만 서면 늘 작아지는 우리 환자들의 나약한 모습이었다.
의사폐업은 노동자파업과 분명히 다르다
의사폐업이 가지는 전말이 어떠하든 이 시대는 곪을 대로 곪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개혁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의 의료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대안의 의료체계를 모색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확보하여야 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공공성’이라는 가치이다. ‘공(公’)이란 사전적 의미로 ‘여러 사람에 관계되고 여러 사람을 위하는 국가나 사회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의료가 가지는 공적(公的)인 특성은 이러한 ‘다수지향적’ 의미 보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은 개개인의 구매력이나 지식, 그리고 정치적 권력 등과 무관하게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존중받아야 할 가치라는 점에서 ‘공적(公的)’이다. 이번 의사들의 폐업이 노동자들의 파업과 분명한 차이를 가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의료의 ‘공적(公的)’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료의 본질적인 특성인 ‘공공성’이 우리나라에서는 심하게 훼손되어왔다. 이번 의사들의 집단폐업사태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도 이러한 ‘공공성의 훼손’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공적 서비스의 제공이 전적으로 민간부문의 자본에 의해 구축되고, 그 자본의 기전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공공성의 훼손은 또 다른 역사성을 가진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공(公’)은 이른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기치 아래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부도덕한 지배자의 전횡(專橫)의 논리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公)의 오용과 남용’에도 불구하고, ‘공(公)’이야 말로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국가와 정치체계의 궁극적인 지향이자 근간이 되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는 국가보건의료체계에서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으며, 더욱이 모든 국민들이 질병을 치료받고, 건강을 보호 증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공적 지향은 어떠한 이유로도 미루어 질 수 없는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민간의료체계, 공공의료체계로 전환돼야
그러면 의료체계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제는 무엇인가? 그 출발점은 의료를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의료공급자들을 서비스의 판매자로 만들어 버린 사적소유구조의 양과 질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는 이윤에 근거한 민간의 소유체계를 공공성에 기초한 공공의 소유체계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부는 우리나라의 공공보건의료의 양적, 질적 확대를 이뤄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국민들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보건의료서비스들이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손쉽게 건강을 의논할 수 있는 주치의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집 가까운 곳에 언제든지 접근과 이용이 가능한 보건소와 보건지소, 그리고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대폭 그리고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가난한 독거노인들, 장애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문보건사업과 요양병원이 충분히 만들어져야 한다. 대부분 의료의 이용은 동네 의원에서 시작하여 동네의원에서 끝내도록 하여야 한다. 대형병원은 불요불급한 중증환자의 입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서비스들이 상당부분 공공부문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10%에 불과한 공공부문의 비율을 빠른 시간 안에 적어도 30~40%까지 높여야 한다. 기존의 민간 의료기관 역시 원래의 비영리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의사인력 역시 50%이상을 1차 의료인력으로 양성해야 하며, 그 기능의 공공성을 감안하여 그 교육과정의 상당부문이 공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공공성에 충실한 의료인력으로 양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의료의 소유구조를 바꾸어 내는 것이 공공성 확보를 위한 핵심적인 과제라면 의료체계내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책결정에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기전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의료체계내의 ‘투명성’은 우리 의료체계 내에 뿌리깊게 자리 잡아온 비도덕적 행위들의 일소뿐만 아니라, 정부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의 투명성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투명성 확보는 이른바 공(公)을 지배자의 전횡의 논리로 빠지지 않게 하여 ‘공(公)을 공(公)답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실추한 의사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의사폐업사태를 통하여 우리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사결정을 ‘전문가들’에게만 맡기는 것이 위험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과학기술이 민주주의적인 정치 과정과 무관하지 않으며, 전문가들이 늘 명확한 진리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므로 우리는 전문가집단이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변질시키지 않도록 시민들의 견고한 참여의 틀을 구축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넘어야 할 산들
공공성에 충실한 의료체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우선, 보건의료부문의 공공성의 회복이 의료인들의 이해에 상치(相馳)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편견을 넘어서야 한다.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와 의료 공급자들은 뼈를 깎는 자성과 일관된 헌신성들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공공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의 확대’에 접미사처럼 따라붙는 미시적 효율성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을 털어 버려야 한다. 개개 의료서비스의 효율이 아무리 증대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적으로 시장의 이익의 기전 하에 놓일 때, 국가 보건의료의 거시적인 효율성 훼손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의사가 의료의 본질인 공공성에 충실할 때만이 진정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행복한 의사 뒤엔 늘 행복한 국민과 환자들도 함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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