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들어서면서 ‘연대’라는 단어가 화두로 등장했다. 80년대의 암흑기에는 강고한 연합질서가 중심적이었던 반면, 90년대는 연합질서가 해체되면서 다양한 운동단체로 운동내부의 스펙트럼이 변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고 있지만, ‘연대를 위한 연대’를 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단체들이 모여 연대의 틀과 방법론을 두고 논의를 깊이 하는 가운데에도, 참여하고자 하는 주체들 간에 연대의 의미에 대한 명확한 합의도출이 전제된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도 있다. 혹시 우리 사회는 연대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상호 활동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연대

일단은 이런 의문을 품고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연대, 새로운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는 연대의 맹아는 없는지 살펴보자.

첫째로 주목한 것은 중앙의 큰 단위의 단체와 지역의 작은 단체간의 연대이다. 상부와 하위 조직간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과 이점을 공유하는 관계이다. 타 단체가 가지는 결점을 기존의 잣대질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해 나가는 관계를 지향한다. 예로 들자면 녹색연합은 광범위한 생태와 환경문제를 다루지만 서울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장성과 지역 상황이 민감하지 못하다. 녹색연합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리산자연생태보존회’나 ‘백두대간 보존회’의 경우는 현장에서 발견되는 환경문제에 대해 발빠른 대응은 가능하나 언론을 통한 여론화나 운동을 조직화시켜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렇게 비어 있는 부분을 서로가 채울 수 있기 위해서는 활동가간, 조직간 긴밀한 의사소통과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백두대간보존회와 지난 해 동해, 삼척, 양구 지역답사를 공동으로 했습니다. 그분들의 현장에 대한 감과 지역적 상황, 주민들과의 정서적인 교류에 대해서 많이 배웁니다.”

녹색연합 이유진(사업1국) 간사에 따르면 지역을 지키는 지킴이들의 환경감시와 보호 활동을 전해듣고, 녹색연합에서는 자료화하고 타지역에도 알려 여론화를 도모한다. 반면 지역 내 소규모 단체로서는 지역 내에서만 고립되지 않고 운동단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짜임새 있는 구조로 나아가지 않을 때도 있다. 지역문제를 중앙과 지역조직이 함께 풀어갈 때 빚어지는 불협화음 또한 존재해왔다. 재정규모나 조직체계 차원에서 보면 지역단체들은 중앙에 비해 열세이다. 서울에 위치한 대규모의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지역문제에 동참하면서 지역단체들은 자연히 주변부로 소외되기 일쑤라고 한다. 최근에 있었던 매향리 미군기지반대운동이나 새만금살리기운동에 참여했던 한 단체의 활동가에 의하면 중앙의 조직들이 대거 참여함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목소리가 차츰 묻히게 되어 마지막에는 지역조직과 중앙조직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중앙 조직으로서는 명분을 걸고 지역 문제 해결에 참여하면서 자기 단체의 사업성과로서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사건들이다.

연대는 틀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

이렇게 연대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리는 경험은 운동의 토대를 척박하게 만들어버린다. 지역주민들이 그들의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부로 인식하게 될 때, 승리의 경험이 그들의 것으로서 돌려지지 않을 때, 패배의 책임 또한 그들이 져야할 것이 아니었을 때, 지역의 삶터는 주인을 뒷전에 둔채 객들이 모여 물고뜯는 이권다툼의 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저희는 싸움에서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지역에서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승리하는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탄강네트워크’의 이철우 씨는 사업의 성과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지역문제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변화하는 것, 그를 통해서 지역 구도가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설명했다. 99년 11월부터 경기도 철원, 포천, 연천 일대의 주민들은 한탄강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한탄강네트워크가 창립된 것은 8개월 전이지만, 그 이전부터 주민들은 지역문제에 동참했다. 교육부에서 소규모학교통폐합 정책을 발표했을 때 포천군 주민들은 거세게 항의, 연일 이 문제를 두고 모였다. 그가 딸 일완(초5)이가 다니고 있는 중리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주민들의 일치된 노력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통폐합이 철회되어 지금도 전교생 74명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학교에 ‘아이들 오늘 학교 보내지 말자’라고 하면 다들 일심단결이 돼요. 그렇게 승리의 경험이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만든 거죠.”

현재는 야미리 변전소 설치반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92년 한국전력이 운천변전소의 확장 이전 계획으로 시행된 것인데, 주민들은 부지 매입 과정의 의혹을 7년동안 끈질기게 주장해왔다. 단순히 반대만 한 것이 아니라 야미리에 세우되 동네 바깥에다 세우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도 한전측은 공사를 강행해왔다. 7월 7일, 한전측의 공사강행이 이루어졌을 때, 주민들이 나서서 공사를 저지했다. 야미리 변전소 뿐만 아니라 경기도 북부 주민들이 해결해야할 과제는 한탄강 댐건설 반대, 소각장 설치 반대 등 지역을 황폐화시키는 모든 개발문제와 맞물려 있다.

한탄강네트워크는 하나의 지역공동체인 동시에 지역에 있는 단체들의 네트워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연천군 주민들의 지역사랑실천연대, 소각장대책위, 야미리 변전소대책위, 농민회 등의 의사소통기구로서, 이 단체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이 지역의 문제를 외부에 알리고, 지역 현안에 대해서 연대하고 있다. 한탄강네트워크에는 이철우 씨를 포함하여 4명의 주민이 주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두들 경기북부의 토박이로 지역상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으며, 한탄강네트워크 소식지인
2000/08/01 00:00 2000/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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