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마을을 가다‘소쩍새마을의 진실’ 그 5년후
강원도 치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사회복지시설 소쩍새마을.

1989년 한 TV 프로그램은 산골마을에 움막을 짓고 장애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돌보는 한 승려의 아름다운 삶을 집중 조명했다. ‘사랑의 소쩍새마을’이란 이름으로 소개된 후 그곳은 그 아름다운 삶을 도우려는 후원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95년 7월, MBC 은 ‘소쩍새마을의 진실’이란 이름으로 그 ‘아름다운 승려’의 두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성폭행, 후원금 착복…. 가짜승려 일력(정승우)은 그렇게 세상의 인심을 하루아침에 갉아먹었다.

의 ‘소쩍새마을…’ 방영 이후 일력은 구속됐다. 그리고 그는 소쩍새마을을 운영할 조계종 산하 중앙승가대학에 재산 30억 원과 130여 명의 마을 가족을 남겼고, 그 뒤로는 소쩍새마을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보각(조광환) 스님이 소쩍새마을 원장으로 취임한 건 1995년 9월. 지난 5년간 보각 스님은 소쩍새마을 원장을 지내면서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을 설립했고, 승가원 산하에 소쩍새마을을 포함 14개의 사회복지시설을 만들었다. 장애인 아동복지시설인 상락원, 지역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주간보호시설 녹야원, 삼전·한솔 종합사회복지관, 어린이집 4곳, 그룹홈 4곳, 횡성재활농장 등과 매월 6만 5,000부를 발행하는 소쩍새마을신문사도 법인사무국 아래 있다.

이처럼 소쩍새마을 인수를 계기로 시작된 중앙승가대학의 보각 스님이 이끄는 사회복지사업은 지난 5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소쩍새마을을 제외한 승가원 산하 모든 사회복지기관을 인가시설로 만들었고, 1999년 한해만도 20억 9,541만 5,988원의 후원금을 거뒀으며 평균적으로 5만 7,021명의 후원자를 두고 있다.

이런 중에 올초 한 시민단체 인터넷 게시판엔 ‘소쩍새마을 노동탄압’이란 제하의 글이 올라왔다. 소쩍새마을 내의 개혁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단체협상은 물론이고, 원장인 보각 스님은 노조설립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호소문. 일력 사건 이후 잠잠하던 소쩍새마을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한해만도 20억 넘는 후원금 거쳐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시간에 1대씩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치악산 유원지입구인 금대3거리. 20여 분간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진초록 산하 속에 작은 간판이 보인다. ‘소쩍새마을’, 수많은 언론보도 때문인지 그리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일력 시절 금대초등학교 일륜분교를 인수했던 그들의 삶터엔 커다란 운동장을 가로질러 몇개의 컨테이너박스와 조립식 가건물이 ‘ㄱ’자로 들어서 있다. 운동장 주변을 서성이던 소쩍새마을 가족들은 외부인이 눈에 띄면 가장 먼저 달려와 인사한다.

“언니, 언제 왔어? 언니, 이쁘다. 언니, 구두 사와!”

마흔을 넘긴 정인숙 씨(가명)는 정신지체장애인. 그녀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춤솜씨를 보여주고, 노래를 부른다. 식당에서 만난 한 50대 정신지체장애인도 기자에게 “언니, 언제 왔어? 오늘 자고 갈거야?”하고 묻는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늘 사람이 그립던 사람들처럼 방문객에게 살갑게 대한다.

현재 소쩍새마을엔 225명의 정신지체, 지체부자유, 중복장애, 시각장애, 뇌병변 장애, 언어장애인 193명과 정상 아동과 청소년, 노인 82명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3명의 뇌성마비 장애인이 사는 연꽃방엔 고개조차 가누기 힘든 중증장애인들이 한 방을 쓰고 있고, 회복실엔 13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모두들 장애정도가 심해 남자교사 2명이 담당해도 힘에 부친다. 31명의 여성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염화당, 100명의 남성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인욕방, 특수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들 숙소 지혜방엔 7명의 아동이 생활하고 있다. 이밖에 소쩍새마을에서 결혼한 정신지체장애인 부부 세 가구는 따로 방을 만들어 생활하게끔 배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 방에 많게는 100명, 적게는 3명의 사람들이 조립식 가건물에서 몸을 부대끼며 산다.

이들을 돌보는 생활재활교사는 13명. 주당 30시간 가량의 휴가를 제외한 모든 시간동안 그들은 마을에 상주하며 그들과 호흡한다. 그렇지만 1인당 담당해야 할 교사의 태부족으로 그들을 제대로 돌보기 힘든 상황. 지난 10개월간 소쩍새마을에서 근무해온 생활재활교사 임성선 씨(28세). 그는 그가 돌보는 30명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일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30명 모두에게 일일이 신경 써서 깨끗이 씻겨주지 못한다는 것. 시설이 낙후한 것도 문제지만 그는 우선적으로 교사 1인이 맡는 가족 수가 너무 많아 가족 한명 한명에게 좀더 질 높은 사회복지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소쩍새마을 의무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정명화(49세) 씨. 그녀 역시 많은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이 하루 빨리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이주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소쩍새마을은 이미 지어진 지 5년이 흘러감에 따라 시설이 많이 낙후돼 있다. 대부분 조립식 건물이거나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해 사용중인 숙소의 바닥은 두꺼운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덮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서 바닥이 내려앉는 경우가 많아 대대적 보수공사가 필요하다고 소쩍새마을신문 7월 15일자는 전하고 있다.

미인가 시설로 남아 있는 이유

193명의 장애인이 24시간 생활하는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의료기기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고,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소규모 그룹홈이 권장되는 현실에서도 100명이 한꺼번에 수용되어 생활하는 대규모 시설로 남아 있다. 이인재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실제 국가가 운영하는 장애인시설도 대부분 열악하다지만 최소한 장애별로 구분, 각각 필요한 서비스를 따로 받을 수 있도록 해두었다”며 “종합복지라는 이름으로 구분도 하지 않은 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것은 정부에 정식 허가를 받아 설립요건에 맞는 사회복지시설을 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소쩍새마을은 이렇다할 프로그램 없이 여러 종류의 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한 소쩍새마을 복지부장 동진 스님의 입장이다.

“누구든 일단 마을에 입소된 사람에게 나가라 하는 건 불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처음부터 이곳에 있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도 좀 그렇고, 정상 아이들의 경우는 본인들의 의향을 묻지는 않았지만 워낙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본인들이 현재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난 5월 8일 소쩍새마을 민주적 운영 등의 개혁이슈를 걸고 노동조합을 설립한 이상철 노조위원장은 무원칙한 마을가족의 입소절차가 문제라고 말한다. 또 97년 횡성 승가원 종합복지타운의 이전부지 계약 이후로 ‘올해만 참으라’면서 마을시설의 개·보수에 투자하지 않고 있고, 이전계획 또한 유야무야 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상철 노동조합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우선 아무런 원칙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스님을 따라 내방한 한두 명의 사람들이 그날부터 가족으로 살게 되는 입소절차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왜 마을에서 살게 되는지 직원들과 합의한 적도 없고, 정해진 원칙도 없습니다. 얼마전에도 부산에 새로 생긴 불교계 장애아동복지시설로 마을식구 10여명이 갑자기 떠나야했어요. 물론 가족들도 직원들도 왜 그렇게 하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왜 마을을 떠나는지, 또 왜 입소되는지 이유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또 승가원은 승가원의 산파 역을 한 소쩍새마을의 시설 및 운영의 발전보다 그 이외의 다른 사회복지사업을 확장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쩍새마을은 승가원 산하 14개 사회복지시설들 중 유일한 미인가 사회복지시설이다. 지난 95년 승가원 설립 이후 다른 시설들은 모두 인가를 받았는데 유일하게 소쩍새마을만 미인가 시설로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승가원 중앙사무국 총무과장 송봉주 씨에 따르면 인가시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승가원은 서울에서 법인허가를 받고, 소쩍새마을은 원주시에 있는 관계로 소재지 여부와 원주시가 혐오시설인 장애인생활시설을 떠안기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원주시 복지정책과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소쩍새마을은 단 한번도 원주시에 설립인가를 바란다는 서류조차 내민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소쩍새마을 복지부장 동준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시설 자체가 국립공원 내에 있어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부터 이제 좀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고, 또 가족이 있는 사람의 입소도 가능하게 열어두었기 때문에 정부가 요구하는 허가기준과는 차이가 있어서 인가를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 횡성에 땅 20만평 부지를 사놓고 공사완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곧 마을이 횡성으로 이전, 새로운 차원의 복지시설을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실 이상철 씨가 지난 5월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마을의 예결산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고, 정기이사회 보고자료집에 따르면 매년 20억 원의 후원금이 거친다 하는데 마을의 열악한 환경은 쉽사리 개선되지 않으며, 횡성 이전계획은 계속 이월되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해야하는 원장 보각 스님은 이렇다할 답변을 미루고 있고, 기자가 찾은 지난 7월 16일에도 자신은 13일자로 사직서를 냈기 때문에 더이상 소쩍새마을과 관련해 이렇다할 말을 할 처지가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3일 후 승가원 사무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사직서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이사회에 정식안건으로 회부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사회복지시설 운영관련 문제 뿐 아니라 노조설립 이후 웃지 못할 노동조합 불인정 사례가 나타났다. 조합원이던 한 수습 간호사가 조회시간에 직원이 모자라는 만큼 스님들도 교사들을 도와 함께 일하자고 건의했다 ‘말버릇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물론 부당해고 사유가 인정돼 구제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대기발령중이라고 한다. 이상철 위원장의 말이다.

“우선 소쩍새마을은 사회복지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만큼 종교적 예우를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 인정 문제도 종교적 문제로 바라봐 직원들과 마찰을 빚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사회복지시설이니 사랑과 봉사, 희생으로 돌봐야 한다…. 옳다고 생각하지만 마을 의사결정구조의 민주화, 후원금에 의해 마을이 운영되는 만큼 투명한 예결산의 공개, 주1회 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24시간 매어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조건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요구하는 건 미덕은 아닙니다.”

기실 노조측은 이런 운영의 민주화, 투명화의 열쇠가 원장인 보각 스님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각 스님은 좀체 노조측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좀더 원칙적이고 체계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중앙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와 만나 진정한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2000/08/01 00:00 2000/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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