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그는 또 머리를 깎은 상태였다. 내 기억으로는 그가 머리를 기르고 있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하긴 나는 그를 대부분 신문이나 방송, 혹은 집회 현장에서 봐왔는데 그가 그런 매체나 집회현장에 나온다는 것은 곧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이고 그 때마다 그는 대부분 삭발을 했으니까 내가 머리 기른 단병호 위원장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굳이 계기를 찍어서 말하자면 롯데호텔 농성 강제진압사건 이후 다시 불거지고 있는 노정간 갈등 속에서 그는 다시 바빠져 있다.

여의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는 영등포 로터리 붉은 벽돌 건물 6층을 찾아가는데 30분이나 헤맸다. 명색이 민주노총 소속 문화방송 노조원이 이 모양이라니…. 없어졌던 장마전선이 다시 생겨나 북쪽에서 휴전선을 넘기 하루 전, 날은 유난히도 덥고 후텁지근해서 짜증이 겹쳤는데 맞대면한 단 위원장의 웃음이 삭발한 사람답지 않게 푸근해서 다 풀려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첫 질문은 보나마나 뻔한 것이었는데도 ‘뭐 다른 걸로 시작할 수는 없을까’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아무리 싸움판이라지만 한 번쯤은 그저 풀어 놓고 쉴 때도 있는 법, 바로 그 순간을 잡아내고 싶었는데, 결국 그만 두었다. 하긴 아무리 삭발을 다반사로 해대는 양반이라고 해도 그 때마다 절실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걸 묻지 않는다는 건 순서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첫 질문.

최근에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두고 분석이 분분합니다.

“디제이 정부의 노동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이건 일시적인 탄압정국이 아니라 장기간 가져가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몇 가지 예를 보세요. 우선 롯데호텔 경찰력 투입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때 우리는 일단 해산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그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들어왔습니다. 구미의 (주)새한도 심각합니다. 용역깡패들이 설치고 그 뒤엔 경찰이 있었어요. 철거민들의 주거투쟁에도 경찰력, 노점상 문제에도 경찰력입니다. 최근 들어 거의 모든 노동운동에 경찰력으로 과잉대응하고 있단 말입니다. 왜 그런가… 의도적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디제이의 국내 최대 과제는 구조조정입니다. 상반기에는 남북회담이다 뭐다해서 구조조정을 거의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반기에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지요. 그런데 한전, 철도, 체신 등의 민영화나 한통 구조조정 등은 지금 국면에서는 하기 힘들다는 게 정부 판단일 겁니다. 일단 노동세력의 기를 꺾고 일방적으로 가겠다는 수순이지요. 또 하나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후에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보수세력을 어느 정도 달래야 할 겁니다. 그런데 요즘 한미 행정협정 논란이나, 매향리,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등으로 통일문제와 관련된 요구수준은 높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노동탄압은 진보세력을 일정 부분 누르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좀 길었어도 이해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현 상황에 대한 이런 분석은 민주노총 내에서도 사실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을 때 사무실에 있던 다른 사람이 내게 ‘위원장님이 지금이 공안정국이라고 하시던가요?’ 하고 물었던 걸 봐서도 그렇다. 아, 이럴 땐 차라리 군사정부 시절이 좋다. 뭐든 전선이 확실했으니까…. (내가 지금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가?)

그럼 민주노총의 대응은 어떤 겁니까?

“대정부 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사실 디제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정부쪽에서도 민주노총과 대화하겠다는 자세는 보였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소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동의하는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는 정부도 민주노총에게 그런 전제를 요구하면서 대화하자는 입장은 포기한 걸로 보입니다. 남은 건 하반기에 이루어질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막기 위한 대정부 투쟁 뿐입니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어요. 우리도 각오가 돼 있습니다. 산별 대표자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데도 스스로 삭발을 했고 7월 20일 이후에 총집중 투쟁과 동시 다발 투쟁이 벌어지면 지역 대표들까지 삭발투쟁을 하겠다고 합니다.”

대정부 투쟁이라지만 그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가 궁금하군요.

“정권퇴진 투쟁까지는 아직 아닙니다. 우선 이번 롯데호텔 조합원 강제진압이라든가 또 다른 사업장의 경찰난입과 관련해서 디제이 정부에 대한 강력한 규탄의 수준이 되겠지요. 우선 대중적 동력을 최대한 동원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구조조정 문제에 있어서 지금까지처럼 사업장별로 대응하지 않고 산업일반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단 위원장은 인터뷰 도중에 자주 롯데호텔 사태를 입에 올렸다. 그 만큼 그 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롯데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군사정부도 아니고 이른바 국민의 정부에서 지금까지 어떤 농성진압보다도 더 폭력적인 진압작전이 일어난 겁니다. 노동문제 이전에 인권의 문제입니다. 이번에 요구사항도 먼저 경찰력 폭력에 대한 정부의 사과입니다. 경찰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무영 경찰총장도 사퇴해야 합니다. 롯데의 신격호 회장과 박태영 사장은 구속돼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에 구조조정 방법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있어야지요.”

구조조정 방안의 수정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까?

“노사간에 합의 구조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 대우 자동차 예를 봐도 그래요. 아직 최종 결정이 난 건 아니지만 포드가 우선권을 갖게 된 과정도 불명확합니다. 해외에 팔아넘기기 전에 실태를 모두에게 알리고 회생방안을 노사가 함께 생각했어야 합니다. 정부가 해외매각을 미리 정해 놓고 무조건 끼워 맞춰 나가는 방식은 안된다는 겁니다.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그 비효율적 구조에 대한 노사간의 협의가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민영화나 해외매각이 구조조정은 아니란 말입니다.”

민주노총은 아시다시피 올 하반기부터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얘기한 모든 내용들이 그 목적이자 방법론들이다. 얘기를 요즘 비등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로 돌렸다.

IMF사태 이후에 실업률이 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터에 돌아왔다는 데에 있지요. 롯데호텔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여기서 문제가 촉발되지 않았습니까?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느냐도 상당히 중요할텐데요.

“비정규직은 굉장히 늘어났지요. 전체 노동자의 53 퍼센트란 통계도 있어요. 작년에 채용된 사람들 가운데 92 퍼센트가 비정규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300만노동자 가운데 조직된 노동자는 불과 13 퍼센트이고 나머지 가운데 대부분이 비정규직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태 속에서의 노동운동이란 것은 운동의 기본 이념에도 안 맞아요. 노동운동이란 것이 고통받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중상위층 노동자 조직으로 운동하는 건 기본 이념과 맞지 않는단 말입니다. 자칫하면 노동운동이 노동자들로부터도 지탄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노동운동의 전략이 상당부분 비정규직을 위한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한 예로 단체협약 내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방향을 잡았는데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건 아니지요. 롯데 호텔 문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주 5일 근무제 얘기도 좀 해보지요. 이 문제도 올 하반기에는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으로 아는데요.

“주 5일 근무제는 결국 노동시간을 단축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에 쟁점이 있는 것이지요. 이걸 노동쪽이 지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외 임금할증률을 현재 50 퍼센트에서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도 말이 안돼요. 실노동 시간을 줄이는 게 목표인데 그렇게 되면 작업시간이 더 늘게 유도되는 겁니다. 오히려 할증률을 높혀야 취지에 맞지요. 월차 줄이는 것도 반댑니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도 월차란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총휴가 일수로 따지는 게 합리적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총휴가 일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더 적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다. 이런 문제라면 노동계가 시민단체와 연대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이 두 세력이 서로 잘 합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전에 노조 집행부할 때도 다 알아봤다. 두 세력의 속성 상 쉬운 일은 아니니까… 실제로 민주노총 내에도 시민단체와의 연대문제는 긍정적이든 비판적이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위원장의 생각은? 물론 그는 정답을 얘기하고 있다.

“시민운동세력과의 연대는 저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시민운동단체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과정에서 우리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예를 들어 주 5일 근무제도 원칙적으로는 시민단체와 부딪칠 게 없지만 만일 각론으로 들어가면, 즉,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 하는 차원으로 가면 이견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걸 다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건 한국노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원칙이 같을 경우 함께 해야 합니다.”

위원장님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게 말씀하실테구요. 시민단체와 연대하는데 대해서 민주노총 내에 일반적인 의견들은 어떻습니까?

“글쎄… 아마 반반일 것 같은데요. 독자적으로 해야한다는 주장과 사안별로 같이 가자는 주장이….”

역시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지금까지 쾌도난마였던 그가 이 문제에 대해선 계속 중간으로 가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단 얘기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미 사회권 연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언하지 않았습니까? 뭐 그것이 꼭 시민단체와의 연대로써만 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물론 각계 단체와의 연대는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노동 이외의 진보적 단체와의 연대가 중심이 돼야겠지요. 민주노총이 사회의 모든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역량도 문제고 조직안정성을 위해서도 그렇지요. 하지만 공통의 문제, 즉, 사회 민주화나 국가보안법, 한미행정협정 문제 등은 민주노총도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인력동원, 자금동원 등 조직역량이 닿는 데까지는 할 예정입니다. 매향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미군문제는 저희들이 개입한 적이 없거든요. 이번에는 인력도 조직적으로 동원해서 참가했고, 당연히 거기엔 자금도 들어가지요. 이번에 시위 군중 가운데 절반 이상이 노동자였습니다.”

이제 정치 얘기를 할 때가 됐다. 내가 민주노동당 얘기를 꺼내자 마자 그는 “아쉽게 됐다”는 말부터 꺼낸다. 물론 울산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좀더 본질적인 데에 있다. 그도 그걸 인정한다.

“민노당은 지금 아주 애매한 처지예요. 보다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쪽, 그러니까 왼손잡이들과 (웃음) 너무 과도하게 왼쪽으로 가면 안된다는 쪽, 그러니까 오른손잡이들 사이에서 고립화 돼 있는 거지요. 이것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반기 사업계획을 보면 그런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뭐냐하면, 진보진영을 아우르는 재창당과 당의 외연을 확대하는 재창당을 추구한다고 돼있거든요. 앞의 것은 왼손잡이이고 뒤엣 것은 오른손잡이죠. 당의 전략이 확고하게 중심을 잡고 있으면 전술이 유연하게 나올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탭니다.”

글쎄요, 저는 굳이 편을 들자면 오른손잡이 편을 들고 싶은데 선거를 통한 정치참여라면 어차피 교조적인 부분만 강조돼서는 곤란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당의 실질적 토대는 당원입니다. 선거를 의식한다면 명망 있는 사람을 내세우는 게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실제 당의 토대인 당원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당의 가장 굳건한 토대는 왼손잡이들이거든요.”

명망 있는 사람이라고 꼭 오른손잡이는 아니지 않느냐고, 선거를 일부지역의 조직으로만 치르면 결국 잘해야 한 두 사람 밖에 진출할 수 없지 않느냐고 해봤지만 이 부분에서 대화가 더 진척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가 마음대로 얘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진보진영은 하도 의견이 각각인 채로 나뉘어져서 당내 통일성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듣기에 따라서는 좀 거북한 얘기도 했지만, 그는 그냥 웃고 만다.

그건 그렇고, 노동운동을 떠난 단병호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그는 노동운동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라도 있을까?

“14년 동안 해오면서 그만하겠다고 고민한 적은 없었어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요. 장기 수배 속에 있을 때 조합원 대중하고 떨어져서 고립돼 있으니까 그 땐 정말 힘들더군요. 네 번 수배를 당했는데 제일 길었던 기간은 2년이 넘을 때도 있었거든요.”

가족들은 어땠나요? 대개 가족들이 반대해서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던데요.

“저는 그 부분은 다행이에요. 그렇다고 두 손 들어 환영하는 건 아니었지만 심하게 반대하지 않았거든요. 다만 제가 워낙 수배나 감옥생활을 많이 했으니까 애들 엄마가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했지요.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수퍼마켓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분당에서 어느 건설회사가 운영하는 대규모 수퍼에서 한평 정도를 얻어서 나물을 팔고 있습니다.”

따님이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지요? 혹시 운동하겠다고 하면 말리지 않으시겠군요.

“지난 번에 수련회를 갔다가 오더니 사상관련 서적을 잔뜩 얻어 가지고 왔더라구요. 그런데 그 놈 말이 자기는 앞으로 일년 동안은 그냥 지켜보기만 하겠대요. 그 다음에 결정하겠다길래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요. 하지만 일 년 뒤에 아무 것도 안하겠다고 하면 제가 조금 실망할 것 같군요.”(웃음)

민주노총이 들어 있는 영등포 로타리의 붉은 벽돌건물 뒤에는 작지만 아담하게 잘 꾸며놓은 공원이 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 단 위원장을 끌고 그 공원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공원에서 쉬고 있는 단병호’…. 이건 일종의 사진 특종이다. 머리 깎은 단병호, 농성장의 단병호, 끌려가는 단병호…. 순 이런 사진들만 봐왔지 않은가. 그가 진정 쉴 수 있을 때는 언제인가.

사족: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작년에 롯데호텔의 박 사장과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원래는 다른 사람과의 자리였는데 그 사람과 잘 아는 사이인 박 사장이 합석을 한 것이었다. 그 때 그는 롯데호텔 뷔페식당의 이용권을 몇 장 건네면서 나중에 음식 맛에 대한 품평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와 내 후배 몇 명이 배를 불렸다. 단 위원장이 롯데호텔 강경진압에 분개하고 있을 때 내가 자꾸 기가 죽었던 건 그 때문이다. 아아… 자본의 유혹은 그래서 달콤한 것이다. 비록 그 부스러기만 몇 개 흘려줬음에도….
2000/08/01 00:00 2000/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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