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화를 뒤흔든 가난한 사람들의 자활 공동체
2000/2000년 08월 :
2000/08/01 00:00
태국의 공동체통화제도 비아굳춤
이번 호에 소개될 글은 태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NGO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태국의 굳춤(Kud Chum)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정리한 글이다.
태국에 있는 단체인 Committee for Asian Women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활동가가 이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해오다 직접 현지에서 원고를 본지로 보내왔다. <편집자 주>
굳춤(Kud Chum)은 태국의 북동쪽 야소톤 지방(Yasothorn Province), 방콕에서 600km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그맣고 평범한 마을이다. 최근 이 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정부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공동체 통화를 사용함으로써 태국의 통화인 바트화(Baht)를 위협하고, 국가 경제를 불안정하게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현재 위협을 받은 마을 주민들은 공동체 통화의 사용을 잠시 멈추고 태국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태국 정부, 새로운 대안운동 탄압
굳춤이 갑자기 정부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은 공동체 통화제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태국 그리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공동체통화제도(Community Currency System)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부터 마을 주민들끼리의 단결력이 뛰어나고 강한 소속감을 가지던 굳춤의 마을 주민들은 경제위기 이후 농산물의 가격이 폭락하고, 열심히 일해도 두 자리 수의 영농 이자에 압박을 받고,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등 공동체의 와해가 일어나자 이에 따른 대안을 찾으려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태국에 위치하고 있는 국제NGO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대안운동의 하나로서 공동체 통화제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특히, 아시아에서 공동체 통화제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미 공동체 통화제도는 캐나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다른 나라에서 이미 시도된 적이 있고 이 중 몇몇 지방에서는 성공적으로 공동체 통화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대안운동을 위하여 방콕에서 공동체 통화제도의 워크숍을 개최하였고 이때 굳춤에 마을 주민들도 참가, 공동체 통화제도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국제NGO와 마을 주민들은 1999년 9월부터 실행을 위한 참여 학습(Participatory Learning for Action)에 들어갔다. NGO 운동가들과 마을 주민들은 공동체 경제활동과 마을 주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 등을 같이 학습하며 연구한 결과 소득을 늘리는 작업(In-come Generating Activities)을 하는 것보다 공동체 통화제도를 통해 자립을 확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에 국제NGO들은 다른 나라에서의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 통화제도에 대한 자세한 개념과 그 활용에 대한 실례를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실행을 위해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공동체 경제의 특성과 중요성을 연구하게 되었다. 식량안보 그룹은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식량생산을 늘릴 수 있는지 조사하고, 젊은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공동체 밖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소비를 비교하면서 마케팅 전략을 세웠으며 상품 소비에 대한 조사를 할 때 또한 윤리나 환경적인 영향도 고려하였다.
지속적인 작업 끝에 드디어 2000년 3월 29일 마을 주민들은 비아 굳춤(Bis Kud Chum)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비아는 굳춤의 공동체 통화의 이름으로써 조개껍질이란 의미인데 아주 오래 전에 태국과 인접 국가에서는 이 조개껍질을 돈 대신 썼다고 한다. 이 마을에 있는 총 600가구중 120가구가 비아굳춤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정부의 위협으로 사용을 잠시 멈추던 4월 중순까지 250가구가 참여하였다. 이 공동체 통화의 특징은 단지 합의가 이루어진 공동체 마을 주민들끼리만 사용할 수 있고, 이자가 없으며, 국가 통화와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공동체 통화의 의미는 없어진다. 비아굳춤은 교환이나 과일을 비롯한 농산품을 사고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에 쓰여지고 이 지역의 존경받는 스님의 사인으로 비아굳춤은 만들어진다. 비아굳춤이 태국의 여러 신문과 TV에 보도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비아굳춤을 사용하기 전에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사용한 지 2주 남짓만에 비아굳춤의 사용이 1965년에 만들어진 화폐법에 위반되고 비아굳춤을 사용하는 주민은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이유는 바트화의 가치를 위협하고 국가 경제를 어지럽히기 때문인데 사실상 유통되던 비아굳춤의 가치는 단지 미화 500달러에 상당하는 것이어서 국가경제를 위협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비아굳춤은 굳춤이외에서는 사용될 수 없고 바트화와 쉽게 구별되기 때문에 바트의 가치를 위협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속적으로 엉뚱한 논리를 가지고 마을 주민들을 위협했고 결국에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용을 일단 멈추기로 하였다.
비아굳춤과 세계경제체제
비록 비아굳춤을 사용한 시간은 짧았지만 사용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굳춤의 자립도를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비아굳춤을 사용함으로써 국가통화를 저축하고 저축된 돈으로 공동체 외부에서 조달할 물건들을 살 수 있었으며 공동체 안에서 탈곡기 설치, 약초 생산 센터 설립, 그리고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지원으로 공동체 경제를 향상시켰다. 비아의 사용은 경제 위기의 영향에 완충작용을 하여 외부 가격 변동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아의 사용은 마을 주민들에게 기존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과 평가절하 되었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높여 주었다. 예를 들어, 마을 주민들은 돈을 벌어 자녀 교육을 시키고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므로 환전작물을 재배하거나 도시로의 이주를 하였다. 하지만 환전작물은 가격변동과 수요 공급 상황에 따라 이윤이 좌우되었고 도시로의 이주는 도시빈민층으로의 전락을 의미하였다. 비아의 사용은 공동체 안에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환금작물을 재배할 필요가 없고 공동체안에서 자립이 가능하므로 도시로의 이주도 막을 수 있다. 단지 공동체 안에서 생산할 수 없지만 필요한 물품에 대해서만 바트화를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그 손실이 돈으로 바로 환산이 안 되는 환경에 대해서도 공동체 통화 사용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즉 마을 주민들끼리 가치의 재평가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돈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인간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곳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 간의 신뢰와 독립성을 확실히 돈독하게 해주었다.
유엔 개발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인구의 상위와 하위 20%의 임금격차를 비교할 때 30년 전에는 2대 1의 격차였던 것이 지금은 150대 1이다. 225명의 부유층 인사들의 재산을 합하면 전세계 인구 절반의 임금과 동일하고 태국의 소득 격차는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우리는 지금 돈이 돈을 만들어 내는 세상에 살고 있다. 효율성과 높은 이윤이라는 이름아래 이루어지는 경제 자유화의 물결은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 속으로 주변화시켰고 인간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효율성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 자립을 돕는 비아굳춤은 우리 사회에 큰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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