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
2000/2000년 08월 :
2000/08/01 00:00
지역에서부터 정치를 개혁한다
정치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통 관심사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있었던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는 한국의 시민운동을 본뜬 낙선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낙선운동을 추진한 그룹은 여러 개가 있고, 그 중의 하나가 무당파 지방의원들의 그룹인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이다(이 때 ‘무지개’는 다양성을 의미한다).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혁신지자체’의 성장과 쇠퇴, 그리고 시민운동 출신들의 지방의회 참여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구도가 고착화된 이후인 1963년부터 사회.공산당 계열의 혁신계 인사가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되는 경우들이 발생하였다. 이를 ‘혁신지자체’라고 부른다. ‘혁신지자체’의 수나 영향력은 꾸준히 증가하여 1975년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을 포함하여 전체 지자체장의 35%를 혁신계가 장악하기에 이른다.
혁신지자체의 성장 배경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분출되기 시작한 도시공해 문제가 깔려 있었고, 혁신지자체의 장은 당시 성장하고 있던 주민운동과 노조 등의 지지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정책을 통해 공해.도시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정국면으로 들어가면서 혁신지자체는 쇠퇴기로 접어들게 된다. 특히 고도성장시대가 끝나고 국가와 지방 모두 재정압박을 받게 되자 복지 등에 상대적으로 많은 재정을 투여한 ‘혁신지자체’는 재정난까지 겪게 된다. 그에 따라 1980년대 이후에는 혁신계가 잇따라 선거에서 패배하여 ‘혁신지자체’의 시기는 일단락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지자체는 시민 참가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분권화의 촉진, 복지, 환경 우선의 정책추진이라는 성과들을 남겼다.
‘혁신지자체’와는 별도로 시민운동과 연계된 인사들이 지방의회로 진출하는 움직임이 1971년 지방선거 때부터 일어났다. 그리고 1974년 나리타 공항 반대운동과 연계하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전국혁신의원회의’가 출발하게 된다. 그리하여 80년대 이후 배출된 생활협동조합운동을 기반으로 한 여성의원들과 환경운동 출신 지방의원들을 합하여 일본 전국적으로 약 400명 이상의 시민운동 출신 지방의원들이 존재하게 된다.
잇단 부패스캔들로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무너지고 연립정권이 들어선 1993년에 전국혁신의원회의, 환경문제지방의원연맹 등에 참여해 온 무당파 혁신 성향의 지방의원들이 모여 지방의원정책연구회(Local Party Study)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에서는 주로 지역정당(Local Party)의 가능성과 지방분권화, 그리고 지역수준에서의 환경, 인권, 정보공개, 시민자치 정책을 연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8년 2월에 조직을 확대하면서 이는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으로 발전했다.
무지개와 생태 리스트 운동의 기관지인 '무지개와 생태'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에는 현재 137명의 지방의원들이 가입해 있다. 이는 전체 6만 명이 넘는 일본 지방의원의 수에 비하면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 최대야당인 민주당에 소속된 지방의원이 500여명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적다고 할 수도 없는 수이다. 참고로 일본의 지방의원 분포는 공산당 소속 4,000여 명, 민주당 소속 500여 명을 제외하고는 무소속이 많지만 무소속 중의 대다수는 자민당 지지성향의 보수적 지방의원들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은 500명을 목표로 하여 세력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지방의원들은 각 지역에서 시민운동가, 학자들과 함께 지역정당들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이 지향하는 것은 지자체 개혁, 지방분권화, 환경우선의 정책이다. 이들이 지자체개혁을 이야기할 때에는 중앙정치 개혁을 위한 통로로서 지자체개혁을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주민참여를 통한 참여민주주의’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참여민주주의를 지방에서부터 실현해 나가려는 것이다.
지역정당의 최초 시도 - 카나가와 네트워크 운동
‘무지개와 생태 500인 리스트 운동’과는 또 다른 흐름으로 생협클럽들을 기반으로 한 ‘생활중심 정치’ 계열의 지역정당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최초로 지역정당을 표방하며 다수의 지방의원들을 배출해 온 카나가와현의 ‘카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이다. ‘카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은 소속된 지방의원들의 봉급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소속 지방의원들이 두번(한번의 임기가 4년이므로 8년까지만 지방의원을 할 수 있다)까지만 지방의원을 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봉급을 공동 관리하는 이유는 지방의원은 시민의 대리인으로서 의회에 보내진 것이므로 봉급도 오로지 시민의 정치활동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 관리되는 봉급은 선거비용, 의원 활동비, 네트워크의 일상정치 활동비로 쓰인다. 그리고 지방의원을 할 수 있는 횟수를 2회로 제한하는 것은 다른 시민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지방의원이 하나의 직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카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의 출발은 시민들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지방자치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카나가와현의 생협클럽은 1980년 합성세제의 사용억제를 위한 조례를 카나가와현 내에 있는 7개 시의회에 청원하였다. 그러나 22만 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된 이들의 청원은 지방의회에서 심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들은 시민의 대리인을 의회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3년 지방선거에서 카나가와현 내에 있는 카와사키 시의원에 1명을 당선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되어 생협클럽과 다른 사회운동 그룹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1984년 ‘카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을 결성하게 된다. 카나가와 네트워크운동은 일본 최초의 지역정당(local party)으로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여 1995년 지방선거에서는 40명을 지방의회에 진출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조직도 확대되어 1998년 현재 3,200명의 회원과 35개 지부를 가진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카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은 선거참여 이외에도 기관지 발행, ‘시민을 위한 정치학교’ 운영, 지역문제에 대한 미니포럼 개최 등의 일상활동을 통해 시민들을 자치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2002년 지방선거와 시민운동의 모색
총선이 끝난 이후 2002년 지방선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나 모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편향이나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하나는 지방자치를 중앙정치개혁의 수단으로 사고하는 편향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주민자치, 주민참여의 공간으로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지방으로부터의 출발이 중앙정치를 개혁하는 데서 하나의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중앙정치는 중앙정치 나름대로, 지방자치는 지방자치대로 개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또한 2002년 지방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하지만, 정작 지방자치 수준에서 제시되고 있는 정책대안은 부족하다.
지역수준에서 실현 가능한 환경, 복지, 교육, 시민자치, 정보공개 등에 대한 정책대안 없이는 논의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그 외에 시민운동이 지방선거에 어떤 형태로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여러 가지 검토와 모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02년 지방선거는 ‘자치와 참여’를 향한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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