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평화와 인권 연대
개성이 강한 활동가들이 모여 북적거린다는 주위의 여론을 감안한다면 예상외로 사무실은 조용했다. 이유는 두 명의 활동가만이 고즈넉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7월 14일 그날의 사무실 풍경은 그랬다. 문만식 교육팀장 또한 외부에서 일을 보다가, 기자의 방문으로 불가피하게 사무실에 들렀다. 사무실에서 만난 또 한 명의 활동가는 평화운동팀의 서미숙 간사. 그럼 나머지 활동가들은? 항상 연대사업으로 바쁘다. 한 명은 올해 4월부터 구성된 ‘새만금간척사업 즉각 중단을 위한 전북사람들’에 참여, 현장 근무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또 다른 활동가는 연일 매향리에서 주민들과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 활동가는 아셈민간분과 준비회의로 아침에 대구로 떠났다고 한다. 이렇게 4명의 상근 활동가와 1명의 반상근 활동가는 1인 다역으로 연일 바쁘다. 이들이 전북평화와인권연대(공동대표 문규현, 김승환)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이제 20만원짜리는 없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는 1994년 5월 정의평화정보센터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발족하면서 전북지역 최초로 인권소식지인 <평화와 인권>을 창간하고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지역 인권소식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발행하는 일은 멈춤이 없다. 그러나 1996년 8월, 지역에서 운동단체의 열악한 사정으로 <평화와 인권>의 발행이 잠시 중단되었고, 그해 11월에 실무자가 보강되고 사무국 체계가 보강되면서 복간되었다. 정의평화정보센터에서 전북평화와인권연대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1998년 들어서이다.

“올해부터는 20만원짜리는 정말 없애자. 그래서 현재는 30만원, 40만원 정도입니다.” 상근자들의 활동비 말이다. 현재 상근자들이 받는 활동비 액수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근자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데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아직 활동가 중에서 ‘좋아서 하는 일인데…’라며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상근자들의 활동비에 충당한다는 것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돈으로 어찌 평생 활동할 수 있겠느냐며, 재정사업을 통해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재정사업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정부와 자치단체 프로젝트 외에는 여러 모로 방법을 모색했다. 98년에는 수익금 사업으로 운동화, 운동복 판매에 활동가들이 뛰어들었고, 대표인 문규현 신부가 담임하는 서학동 성당에서 삼계탕을 삶아서 팔기도 했다. 삼계탕 장사는 올해 7월 21일, 22일에도 예정되어 있었다. 지난해 경우는 삼계탕을 팔아서 마련한 돈이 400만원이었다. 그리고 지역에서 소액으로 후원하는 사람도 적잖고, 사무실의 경우에는 인권운동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 무료로 임대해주어 사정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했다.

처음부터 돈얘기로 시작해서 그렇긴 하지만, 하고싶었던 말은 다름이 아니라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전북평화인권연대의 왕성한 활동력이다.

지역 내에서 전북평화인권연대는 지명도가 높은 편이다. 아니 지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 전국적으로 활동에 대해 익히 알려져 있다. 지난해까지 전북에서 3회째 인권학교를 개최했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평화·인권 교육으로 사회복지학교, 평화학교, 전주 인권영화제 등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또한 년1회 전북지역의 인권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북지역 인권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많은 연대사업과 자치적인 인권·평화사업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정치권력이나 이익집단의 운동이 아닌 자치·연대 운동과 다양한 상호교류·개방적 연대를 통한 실질적인 인권활동, 평화와 인권의 신장을 위해 연구하고 현장에서 실천하는 전문적 활동가 양성이라는 간략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 맞춰 전북평화와인권연대의 활동가들은 ‘열린 연대’와 ‘현장에서의 실천’이란 원칙 앞에서는 매섭다.

“규모가 크고, 활동에 제약이 많은 단체들과는 달리 저희는 기동성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규모의 문제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항상 저희는 스스로 질문합니다. 기성 운동단체들을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현장성이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가? 실제 현장에 있는 시간은 1시간이면서 언론 플레이나 명사들을 위해서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있지는 않는가? 등의 반성말입니다.”

활동가들, 열린 감수성과 현장성이 생명

이런 원칙 준수로 이들은 조금은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단체로 인식된다. 또한 단체내에서의 역할분담이나 분업체계에 대해서도 원칙이 있었다.

“분업이 효율적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모든 사람의 영역을 제한하지 않고 일을 합니다.”

문만식 교육팀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 단체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전했다. <평화와 인권>도 편집 담당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활동가들이 자신의 현장에서, 자신이 본 것을 취재하고 기사화한다. 보도자료를 남보다 잘 쓸 수 있다고 해서 그이가 계속 그 역할을 담당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다른 활동가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일을 배워갈 기회를 잃게 된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어떤 역할에 강점을 발휘하기 보다는 전인적인 활동가로 자질을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문만식 팀장은 “서울운동을 극복하는 것이 지역운동의 관건”이라고 밝혔다. 원론적이고 치열한 활동가들이 모습만 상상되는가? 그러나 삶의 순간 순간이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 올해 4회째 접어드는 인권영화제는 지역안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하려고 계획을 짰지만 문화적으로 척박한 지역상황으로 무산될 지도 모른다고. 지역에서 출품작이 한 점이라도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지역운동으로 서울과 다른 기획, 중앙과 다른 감수성으로 승부하려는 그들, 사무실의 한켠에 식단표가 보인다. 그날 점심당번은 시장을 보고, 요리를 해 옆사무실 다른 단체와 같이 둘어앉아 식사한다고.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2000/08/01 00:00 2000/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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