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울산동구에서 공룡정당에 한판승
1999/1999년 12월 :
1999/12/01 00:00
민주노동당이 울산 동구에서 승리의 첫 깃발을 꽂았다. 민주노동당 후보인 이영순 씨가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것이다. 지역·보스 정치로 얼룩진 우리나라 척박한 정치 현실에서 진보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울산 동구청장 보궐선거가 진행됐던 10월 25일 오후 5시. 현대중공업 정문이 활짝 열리면서 오토바이 퇴근 부대가 일제히 정문을 나섰다. 정상 퇴근 시간보다 1시간 이른 시각이다. 노조가 회사측과 협의해 퇴근 시간을 앞당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이 시각 퇴근을 재촉하는 오토바이 행렬이 줄을 이었다. 몇 개의 투표소에서는 투표 종료시간인 6시 이후에도 유권자들이 줄지어 늘어선 기현상이 목격됐다.
노동자 퇴근 무렵 투표행렬 줄이어
이날 투표율은 56.2%. 그간 투표율이 30%에 맴돌던 대부분의 보궐선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새벽 6시부터 노동자들의 출근 시간인 7시까지의 투표율이 상당히 높았던 것도 기존의 선거와는 다른 기이한 현상이다. 부재자 투표함을 개봉하기 시작한 지 10분 뒤, 3위에 머물렀던 이 후보가 각 지역 투표함에서 선전하면서 1위를 맹추격하자 주택가와 술집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같이 높은 투표율과 관심이 1만 표 이상의 압도적인 표차로 2위 후보를 따돌리고 울산 동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이영순 후보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울산 동구 유권자는 총 12만 명. 이중 현대 중공업 조합원만도 2만 2,000명이다. 현대자동차는 북구에 위치해 있지만 조합원 중 6∼7,000여 명이 동구 주민이다. 동구 주민중 대공장 노동자만도 3만여 명. 가족을 포함하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민주노총 가족이다.
민주노동당 승리가 이들의 성원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가령 노동자 밀집지역인 창원, 거제 등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87년 이후 울산처럼 민주노조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를 통해 강한 조직적 토대가 형성됐고, 여성, 청년 등의 분야에서 지역운동이 축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지요.” 울산 민주노동당 양준석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이 단합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투쟁의 경력’이 선거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선 후보 공천부터 기존 정당과는 다르게 시작했다. 소위 당비를 내는 지역구 당원들이 직접 이영순씨를 민주노동당 후보로 천거했다. 이 과정에서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들리기도 했으나 민주적 절차에 따라 투표해 당초 이 후보를 반대했던 인사들 대부분이 그 결과에 승복했다. ‘보스 정치’ 현장에선 찾아볼 수 없는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다.
정당명부제 채택시 5석 이상 전망
이번 보궐선거의 법정 선거비용은 6,000여만 원. 이 돈 역시 후원회 등 거창한 행사를 벌이지 않고도 2∼3만 원의 당비를 납부하는 ‘개미군단’의 성원과 서민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이 지역의 노보와 유인물을 발행하는 인쇄소에서는 이영순 후보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천거한 후보임을 알리는 인쇄물들이 윤전기를 타고 거리에서의 선거운동은 자원봉사자들이 도맡았다. 이 지역 최대 유권자를 가진 현대중공업 노조는 노동조합법상 보장된 공민권 행사를 위해 회사측과 협상, 퇴근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급여를 보장받았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보장으로 인한 조직적 지원이 가장 큰 원군이 된 셈이다.
이들이 선거 이슈로 내걸었던 것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국보법 철폐’ ‘민중 생존권 사수’. 기존 정치권과의 정면대결에서 승리한 민주노동당은 현재 한껏 고무돼 있다. 게다가 한길리서치 등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20∼30%대를 구가하고 있고,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진보정치에 대한 갈망은 울산지역에 한정돼 있지 않다.
민주노동당 이상현 대변인은 “이번 선거는 노동자 서민의 집단 투표현상이 정치개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선거였다”며 “정치권의 선거법 협상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채택된다면 선거구에 관계없이 5% 정도 이상 득표가 가능해 5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선거의 승리를 내년 총선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또 지난 대선에서와는 달리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던졌던 진보진영의 ‘사표’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노동당에겐 넘어야할 산이 많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표’로 연결시킬 수 있는 대안 제시 능력을 인정받는 게 관건이다. 또 민주노총을 필두로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고 있는 대중조직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울산 동구청장 이영순 당선자 인터뷰
"서민들이 행정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돕겠다"
당선의 의의를 찾는다면.
“기존 정당에 대한 심판이다. 선거기간 내내 만나는 서민과 노동자의 가슴 속에 이들에 대한 분노가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영남위 사건을 김창현 전 구청장(이영순 당선자의 남편)에 대한 정치탄압으로 규정짓고 있으며, 국보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반증이다. 당선 이후에도 ‘축하한다’는 말보다 ‘당선돼서 고맙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서민들의 쌓인 한을 대신 풀어달라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일해 이에 보답하겠다.”
선거 때 어려움은 없었나.
“타당에서 색깔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끝까지 나를 지지해준 노동자 서민에게 고마울 뿐이다. 학계에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선거를 힘들게 치렀다기 보다는 이들의 아낌없는 성원에 감동하면서 지냈다. 당락을 떠나 서민들의 마음이 선거를 통해 하나로 뭉쳤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다. 어깨가 무겁다.”
주효했던 선거전략은.
“기존 정당들이 흔히 취하던 바람몰이가 아니라 1대 1 설득작업이 효과를 발휘한 것같다. 주민들에게 국보법으로 부당하게 구속된 전 구청장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논조로 선전해나갔다.”
후보 출마 경선 과정에서 이견이 노출되기도 했는 데.
“일부에서 우려했던 것은 전 구청장과 관계된 색깔논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색깔논쟁에 휩싸이면 민노당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나를 후보로 지목했던 사람들은 색깔논쟁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야 민노당의 비전이 생긴다고 전망했다. 후자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선거를 통해 증명됐다. 내년 총선에도 공격적인 방향으로 선거전략을 짜야 한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정권과 야당의 행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그 분노를 담아낼 그릇이 필요하다. 지역주의와 색깔논쟁을 비켜가는 게 아니라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게 승리의 길이다.”
구정에 있어서 중점둘 사안은.
“그간 소외됐던 서민들을 위한 행정에 역점을 둘 것이다. 가령 동구 주민들의 정치의식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들이 행정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제도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주민이 주인되는 행정을 만들기 위해 공약사항이기도 했던 주민감독제와 주민배심원제를 실시하겠다. 전자는 관내 공사를 주민이 직접 감독하고, 공사업체 선정시 주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 이밖에도 반상회의 민주적 운영, 아파트 주민 자치활동 지원 등 주민참여행정의 모범을 창출해내는 데 힘쓸 것이다. 나의 당선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대안을 만들어 가겠다.”
울산 동구청장 보궐선거가 진행됐던 10월 25일 오후 5시. 현대중공업 정문이 활짝 열리면서 오토바이 퇴근 부대가 일제히 정문을 나섰다. 정상 퇴근 시간보다 1시간 이른 시각이다. 노조가 회사측과 협의해 퇴근 시간을 앞당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이 시각 퇴근을 재촉하는 오토바이 행렬이 줄을 이었다. 몇 개의 투표소에서는 투표 종료시간인 6시 이후에도 유권자들이 줄지어 늘어선 기현상이 목격됐다.
노동자 퇴근 무렵 투표행렬 줄이어
이날 투표율은 56.2%. 그간 투표율이 30%에 맴돌던 대부분의 보궐선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새벽 6시부터 노동자들의 출근 시간인 7시까지의 투표율이 상당히 높았던 것도 기존의 선거와는 다른 기이한 현상이다. 부재자 투표함을 개봉하기 시작한 지 10분 뒤, 3위에 머물렀던 이 후보가 각 지역 투표함에서 선전하면서 1위를 맹추격하자 주택가와 술집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같이 높은 투표율과 관심이 1만 표 이상의 압도적인 표차로 2위 후보를 따돌리고 울산 동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이영순 후보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울산 동구 유권자는 총 12만 명. 이중 현대 중공업 조합원만도 2만 2,000명이다. 현대자동차는 북구에 위치해 있지만 조합원 중 6∼7,000여 명이 동구 주민이다. 동구 주민중 대공장 노동자만도 3만여 명. 가족을 포함하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민주노총 가족이다.
민주노동당 승리가 이들의 성원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가령 노동자 밀집지역인 창원, 거제 등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87년 이후 울산처럼 민주노조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를 통해 강한 조직적 토대가 형성됐고, 여성, 청년 등의 분야에서 지역운동이 축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지요.” 울산 민주노동당 양준석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이 단합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투쟁의 경력’이 선거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선 후보 공천부터 기존 정당과는 다르게 시작했다. 소위 당비를 내는 지역구 당원들이 직접 이영순씨를 민주노동당 후보로 천거했다. 이 과정에서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들리기도 했으나 민주적 절차에 따라 투표해 당초 이 후보를 반대했던 인사들 대부분이 그 결과에 승복했다. ‘보스 정치’ 현장에선 찾아볼 수 없는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다.
정당명부제 채택시 5석 이상 전망
이번 보궐선거의 법정 선거비용은 6,000여만 원. 이 돈 역시 후원회 등 거창한 행사를 벌이지 않고도 2∼3만 원의 당비를 납부하는 ‘개미군단’의 성원과 서민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이 지역의 노보와 유인물을 발행하는 인쇄소에서는 이영순 후보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천거한 후보임을 알리는 인쇄물들이 윤전기를 타고 거리에서의 선거운동은 자원봉사자들이 도맡았다. 이 지역 최대 유권자를 가진 현대중공업 노조는 노동조합법상 보장된 공민권 행사를 위해 회사측과 협상, 퇴근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급여를 보장받았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보장으로 인한 조직적 지원이 가장 큰 원군이 된 셈이다.
이들이 선거 이슈로 내걸었던 것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국보법 철폐’ ‘민중 생존권 사수’. 기존 정치권과의 정면대결에서 승리한 민주노동당은 현재 한껏 고무돼 있다. 게다가 한길리서치 등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20∼30%대를 구가하고 있고,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진보정치에 대한 갈망은 울산지역에 한정돼 있지 않다.
민주노동당 이상현 대변인은 “이번 선거는 노동자 서민의 집단 투표현상이 정치개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선거였다”며 “정치권의 선거법 협상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채택된다면 선거구에 관계없이 5% 정도 이상 득표가 가능해 5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선거의 승리를 내년 총선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또 지난 대선에서와는 달리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던졌던 진보진영의 ‘사표’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노동당에겐 넘어야할 산이 많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표’로 연결시킬 수 있는 대안 제시 능력을 인정받는 게 관건이다. 또 민주노총을 필두로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고 있는 대중조직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울산 동구청장 이영순 당선자 인터뷰
"서민들이 행정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돕겠다"
당선의 의의를 찾는다면.
“기존 정당에 대한 심판이다. 선거기간 내내 만나는 서민과 노동자의 가슴 속에 이들에 대한 분노가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영남위 사건을 김창현 전 구청장(이영순 당선자의 남편)에 대한 정치탄압으로 규정짓고 있으며, 국보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반증이다. 당선 이후에도 ‘축하한다’는 말보다 ‘당선돼서 고맙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서민들의 쌓인 한을 대신 풀어달라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일해 이에 보답하겠다.”
선거 때 어려움은 없었나.
“타당에서 색깔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끝까지 나를 지지해준 노동자 서민에게 고마울 뿐이다. 학계에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선거를 힘들게 치렀다기 보다는 이들의 아낌없는 성원에 감동하면서 지냈다. 당락을 떠나 서민들의 마음이 선거를 통해 하나로 뭉쳤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다. 어깨가 무겁다.”
주효했던 선거전략은.
“기존 정당들이 흔히 취하던 바람몰이가 아니라 1대 1 설득작업이 효과를 발휘한 것같다. 주민들에게 국보법으로 부당하게 구속된 전 구청장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논조로 선전해나갔다.”
후보 출마 경선 과정에서 이견이 노출되기도 했는 데.
“일부에서 우려했던 것은 전 구청장과 관계된 색깔논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색깔논쟁에 휩싸이면 민노당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나를 후보로 지목했던 사람들은 색깔논쟁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야 민노당의 비전이 생긴다고 전망했다. 후자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선거를 통해 증명됐다. 내년 총선에도 공격적인 방향으로 선거전략을 짜야 한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정권과 야당의 행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그 분노를 담아낼 그릇이 필요하다. 지역주의와 색깔논쟁을 비켜가는 게 아니라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게 승리의 길이다.”
구정에 있어서 중점둘 사안은.
“그간 소외됐던 서민들을 위한 행정에 역점을 둘 것이다. 가령 동구 주민들의 정치의식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들이 행정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제도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주민이 주인되는 행정을 만들기 위해 공약사항이기도 했던 주민감독제와 주민배심원제를 실시하겠다. 전자는 관내 공사를 주민이 직접 감독하고, 공사업체 선정시 주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 이밖에도 반상회의 민주적 운영, 아파트 주민 자치활동 지원 등 주민참여행정의 모범을 창출해내는 데 힘쓸 것이다. 나의 당선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대안을 만들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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