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묻지않은 빚잔치 또다른 부실 부른다
1999/1999년 12월 :
1999/12/01 00:00
부실금융기관 공적자금 투여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나?
대마불사의 신화. IMF이전 한국경제에는 재벌과 금융기관이라는 두 마리 불사조가 있었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한 대형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웬만해서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정도가 좀 지나쳤다. 자산실사 결과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부실금융사도 예금자들의 집단반발과 지역 내 거래업체 등에 미칠 파장을 고려, 군소 부실 금융기관 하나조차 문닫지 못했던 것이 국제통화기금 이전 우리나라 금융과 금융당국의 현주소였다. 쓰러져야할 기업이 쓰러지지 않고, 없어져야할 금융기관이 남아 있음으로써 한국경제는 서서히 안으로 썩고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금융부실마저 짊어져야 하는 서민들
그러나 IMF체제는 가혹했다. 신화는 깨졌고 환부는 도려졌다. 회생가망이 없는 곳은 퇴출시키고 생존가능성이 있는 곳은 자구노력을 전제로 돈을 지원함으로써 부실기관 금융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IMF 이후 퇴출된 금융기관은 은행, 보험, 종금, 금고, 신협, 증권 등 99년 10월말 현재 187개에 이른다. 금융부실을 도려내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했다.
99년 10월 말 현재 예금보험공사와 성업공사를 통해 무려 64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우부실채권을 떠안고 있는 금융사들에게 16조 원에 달하는 추가비용이 요구된다. 비록 예금보험공사와 성업공사의 채권발행을 통해 조달된 자금이지만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이상 결국은 국민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금융기관의 부실경영 결과를 국민이 대신 부담하는 것이 옳았는가? 이론이 있지만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곪은 경제의 혈맥을 조기치유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큰 피해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 구조조정에 투입된 64조 원의 용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것. 한보사태 이후 금융기관이 떠안은 막대한 부실채권 처리를 위해 성업공사가 총대를 맨 것이다. 97년 11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서 첫 부실채권 매입에 나선 성업공사는 올해 8월까지 21조 원을 투입, 총 50조 원어치의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매입해줬다. 두번째 용도는 금융기관 증자참여와 손실보전이다. 금융기관의 목줄을 죄어오던 BIS자기자본 비율 8% 달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자본금을 대주는 길밖에는 없었다. 단 부실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인력, 점포, 자회사 등을 대폭 줄여 경비지출을 최소화하라는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한편 부실은행을 반강제로 떠안은 우량은행에 대해서도 자산을 초과하는 부채액만큼 정부가 보전해줬다. 공적자금 투입의 마지막 쓰임새는 예금대지급이다. 금융기관 퇴출 과정에서 예금보호가 불가피한 거래고객의 예금 원리금을 지급해야했다. 성업공사가 부실채권을 사들인 돈은 부동산이나 건물 등을 처분하면 언젠가는 건질 수 있고 증자에 투입된 예금보험공사 자금 역시 금융기관 주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식시세에 따라 이익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실금융기관을 대신해 지급한 예금지급액은 해당 금융기관의 부채가 자산보다 많기 때문에 어디서도 돌려 받을 길이 없는 돈이다.
부실기업 경영주 처벌 의지 없어
이 같은 금융부실처리비용은 결국 그 전부가 국민의 세금이다. 따라서 경영에 있어 위법성이나 고의성이 드러난 경우 인사조치 및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금보험공사가 99년 6월 1일부터 17개 종금사를 1차 조사한 결과 부실자산총액 13조 5,334억 원 중 위법, 부당행위로 인한 손실금액은 4조 2,565억 원, 관련 임원은 111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부실자산 중 임직원의 위법, 부당한 행위(법정 동일인 한도를 초과하여 여신을 취급하거나 무담보 매출어음 부당취급, 여신부당취급)로 인한 손실부분은 가압류, 부동산에 대한 가처분,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 회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사가 늦어지고 적극적인 처벌의사가 없음으로 인해 해당 금융사의 임직원들이 재산을 해외로 유출하거나 타인명의로 이전함으로써 회수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횡령이나 배임 등 이미 위법사실이 드러난 일부 투신사의 대주주에 대한 형사처벌도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특히 올해 초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75건의 상장사 감리조사보고서를 감리한 결과 분식회계 사례가 일부에서 사실로 드러났다고 발표했었다. 또한 대우사태와 관련해 대우 워크아웃 계열사의 분식회계와 부실감사가 드러난 회계법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방침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전인 95년부터 98년까지 이들 부실금융사의 외부감사인 현황을 파악한 결과 삼일 26건, 안건 28건, 세동 25건, 산동 19건 등 대형 회계법인이 집중적으로 외부감사업무를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밖에도 청운, 영화, 대주, 안진, 삼덕 회계법인 등도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외부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와 같은 사례를 볼 때 분식회계와 부실감사가 광범위하게 만연하였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외부회계법인에 대한 부실책임을 추궁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번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조성과정부터 투입대상 선정, 투입규모, 사후관리, 회수를 위한 제도적 장치 등 운용전반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부실금융기관을 결정할 경영정상화계획을 평가하는 위원회에 외부감사업무를 맡고 있던 외부회계법인을 포함시킴으로써 이해의 상충이 발생했다. 앞서 적시한 대형 회계법인 대부분이 평가위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출발부터 이미 투명성과 객관성을 결여한 것이다. 기금채권 발행과정에서 발행금리의 하한선을 10%로 설정해 시장금리가 10% 이하로 하락한 이후에도 이 금리를 적용할 수밖에 없어 1조 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이나 종금사 정리시 인수한 자산 가운데 1조 5000억 원 규모가 부실채권으로 분류됨으로써 공적자금의 추가 투입이 불가피한 사례는 철저한 준비와 실사가 부족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서울, 제일은행에 1차 공적자금 지원과 함께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선 다음에도 부실이 증가,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금융사의 사후관리에도 많은 헛점을 보이고 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는 금감원의 협조없이는 자체적으로 부실을 조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손해배상청구 역시 파산 관재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부실관련자의 재산조사를 위해 행정관청, 공공단체에 조회를 하거나 협력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제도상의 미비점이 효율적인 자금회수를 어렵게 하고 있다.
경영주 도덕적 해이 막을 장치 마련돼야
일본의 경우 98년 예금보험법을 개정, 채권회수를 촉진하기 위해 예금보험기구에 채무자 등에 특별조사권과 행정관청 등에 대한 협력의뢰권 등을 부여했다. 예금보험기구와 그 직원은 채무자의 재산이 은폐되어 있거나 특별히 그 재산 실태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경우 그 재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사권 행사에 불응하는 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영업정지 시점부터 파산 종결시까지 예금보험공사가 관리인, 청산인, 파산 관재인 기능을 수행토록 하여 해당 금융기관을 대신해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토록 법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부실책임이 있는 임직원, 대주주의 재산을 신속하게 확보하기 위해 공적자금이 지원되기 전이라도 지원결정만 내려지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예방시스템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보다는 평상시 감독당국과 소액주주, 채권자들이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큰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배상책임을 묻는 건 재산을 미리 빼돌리는 경우가 많아 어느 정도의 손실이 불가피해진다. 또한 책임추궁의 대상을 광범위하게 넓혀야 한다. 금융기관을 경영하고 지도하는 임직원 등의 개인활동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부보예금기관의 임직원, 주요주주, 금융기관 관련자(외부 법률가 등 외부독립계약자 포함)의 위법행위, 고의성 및 과실에 의한 수임자 의무 위반, 안전성 및 건전성 저해행위, 중대한 주의의무태만까지 처벌토록 법제화해야 한다. 이 모든 장치들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책임경영의 단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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